지역예술을 알려면 그 지역의 비평을 봐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비평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근거있는 논리를 세우고 설득력있게 전개해가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그만큼 비평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비평이 발달할수록 창작의 이론적 토대는 굳건해지기 마련이다. 이 지역 미술비평 역시 아직은 미흡하기 이를 데 없다.

접근이 어려운 비평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아예 비평만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전시현장에서의 경험과 함께 하는 비평 등 그 형태는 무수히 많다. 굳이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일반의 시각으로 비평을 들여다보자면 아무래도 큐레이팅 경험이 충분하게 스며든 전시평이 쉽게 이해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더 선호되는 게 사실이다.

지역에도 대학과 미술관 안팎에 몇몇의 비평가들이 자리하고 있다. 독립큐레이터를 하면서 비평활동을 하는 미술인들 말이다. 젊은 비평가로 꾸준하게 자기실력을 쌓아오면서 지역미술계에서 보폭을 넓혀온 미술평론가 김병헌씨 이야기다.

그는 40대로 젊고 치밀한 평론에 정성을 들이는 듯 하다. 젊다보니 조금 더 무게감을 갖춰가야 하는 것이 그의 숙제이겠지만 필자가 만난 그는 너무도 신중하다. 말 한마디 함부로 뱉는 법이 없다. 아마 이런 신중한 성격이 그를 비평의 길로 이끈 것은 아닌지 추정해본다.

그의 미술비평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에 별 취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대학진학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불운까지 겹쳤다. 고교 졸업 후 얼마 안 있다 부친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더욱 어려운 세상과 마주친다. 방황이 시작되기 전 그는 군 입대를 선택한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는가 했더니 군 복무 중 다시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서 수술하게 됐고 그로 인해 그는 의가사 제대를 해 사회로 돌아온다.

미래에 대한 분명한 설계가 없는 채 사회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차(茶)연구가였던 모친의 영향으로 예술의 거리에서 전통찻집을 운영하다 조선대학교에 미술이론과가 개설된다는 것을 듣고, 1997년 입시준비를 해 그 이듬해인 1998년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물론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미술공부로 이끈 것이지만.

1992학번인 그가 1998학번이 된 이유다. 또래들보다 6살 아래 동기들과 함께 학부시절을 보낸다. 이때 박정기 교수가 조선대로 부임해 오면서 스터디 일원으로 참가, 영어원서 등 각종 관련서적들을 탐독하면서 공부에 재미를 붙인다. 그는 이때의 공부가 대학원 석사, 박사를 쭉 이어가게 된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박사학위를 수여받고도 박정기 교수 수업 청강생으로 참여해 수강을 들을 만큼 그는 열성적으로 학구열을 불태웠다. 이후 광주여대에서 강의를 한 뒤 2010년 금남로분관 전시운영팀장을 맡으면서 큐레이팅의 길에 들어선다. 금남로분관에 이어 2012년 무등현대미술관 학예실장과 미디어아트페스티벌 큐레이터, 의재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고, 조선대 출강에 이어 현재 전남대에 출강하고 있다. 그는 이런 경험들이 자신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지난해 북경 798예술특구 소재 작자갤러리에서 대화 모습

“금남로분관과 무등현대미술관, 의재미술관에서의 큐레이팅 경험은 저 혼자의 역량으로는 부족한 부분들이 많은 데 이것들을 훨씬 수월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미술관에 있게 되면 아무래도 여러 작가와 연계도 쉬워지는 등 혼자 할 수 없는 것들을 경함할 수 있어 유익했죠. 책으로만 하는 비평은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도 절감했구요. 이론과 실제 사이에 분명히 간극(틈)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술관에 머물면서 겪었던 이런 경험들이 이 간격을 좁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그는 이처럼 다양한 전시체험을 기반으로 한 평론의 조건을 하나 하나 갖춰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그에게 다시 큐레이팅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중국 북경 송좡예술특구에 머물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양화가 정성준씨의 큐레이팅을 맡게 되면서 해외 큐레이팅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런 그가 밝히는 비평은 분명한 자신만의 철학이 바탕에 스며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비평의 전반을 직감할 수 있다.

“미술이론의 종착점이 비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평은 이론적 기반이 전제돼야 하구요. 거기다 작가도, 작품도 알아야 하죠. 이론적 기반이 없고, 작가나 작품을 모른다면 비평을 할 수가 없어요. 이런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이 비평이라고 보면 됩니다. 미술사와 미학, 작품, 작가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비평이죠.”

그가 말하는 비평의 행간을 유심히 따져보면 이론 정리의 과정을 줄곧 진행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모더니즘을 총정리하는데 주력했다는 전언이다. 최근 하정웅미술관에서 만난 그는 늘 습관처럼 이론에 관한 정리가 몸에 밴듯 보였다. 비평과 관련해 많은 말들을 나열하지 않는다. 10여년을 지켜봐왔지만 꼭 필요한 말들만 골라 하는 스타일이 오히려 생경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론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비평에 대해 솔직하게 들려준다. 늘 노력하며 사는 그도 때로는 비평의 위기를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미국의 미술비평가이자 철학자인 아서 단토 (Arthur C. Danto·컬럼비아대학교 명예교수)의 견해들을 참조해 돌파구를 모색하곤 한다. 비평의 조건을 세우는 작업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데도 여지없이 아서 단토의 이론들을 훌륭한 교재로 삼는다. 그는 그렇게 해서 비평의 골격을 선명하게 정립해간다.

“저는 비평의 조건을 어떤 것에 관한 작품이냐, 이것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로 생각합니다. 전자는 내용이고, 후자는 형식으로 이해하면 되죠. 전자와 후자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진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저는 신예작가 등 잘 모르는 작가에 대해 평론 요청이 들어오면 그 작가를 직접 만나 해석을 시도하는 편이죠. 이런 통로가 닫혀있을 때는 힘들 수 밖에 없어요. 이런 것이 되지 않을 때 저는 글을 안 쓰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는 올해 다시 큐레이팅 작업에 최선을 다할 작정이다. 해외 큐레이팅 두 차례가 그를 시험대에 올릴 것으로 보인다. 3월17일부터 한달간 중국 북경 798예술특구 소재 작자갤러리에서의 한·중작가 전시와 오는 8월4일부터 9월6일까지 서양화가 정성준씨의 작자갤러리 개인전 큐레이팅을 각각 진행하기 때문이다. 또 이 전시를 계기로 중국작가를 광주에 소개하기 위해 한중작가 전시를 위한 장소도 물색 중이다. 이와함께 북경대 초청강연을 제안받은 만큼 이 스케줄도 소화할 예정이다.

올해 스케줄을 들려주던 그에게 ‘어떤 평론과 평론가로 평가받고 싶냐’고 묻자 ‘이해 폭이 넓은 평론과 평론가’라는 답을 내놓는다.

“오늘날 평론은 기준이 없어요.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라는 믿음입니다. 정말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제 자신에게 늘 질문하곤 합니다. 어떤 작품이든 제대로 된 해석을 하는 평론가가 되고 싶구요. 일반인들이 제 평론을 읽고 그 작품에 대해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저는 이런 역할을 기대하고 있어요.”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