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작은 책방들이 ‘유쾌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대형서점과 온라인 책 시장의 기세에 눌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이들이 열심히 ‘제 살 길’을 찾고 있는 것.
광주에는 벌써 10곳이 넘는 작은 책방들이 ‘성업 중’이다. 처음에는 청년들 중심으로 독립출판물 책방이 유행처럼 생겨났다. 기존 출판물 시장에서는 책이란 지위를 부여받지 못했던 독립출판물들이 서고에 내걸려 독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출판의 자유’를 외치며 대형서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판매, 젊은 세대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서점 지기가 추천한 책들을 판매하는 큐레이션 책방이 그 바통을 잇는 모양새다.
큐레이션 책방은 서점이 단순히 책을 진열·판매하는 것을 넘어 ‘편집한다’는 개념을 갖는다. 어떤 책을 판매할지, 책방 주인이 정해놓고 서고를 꾸린다. 일찍이 북 큐레이션을 선보인 동네책방 ‘숨’, 1913송정역시장의 ‘인생가게’, 인문사회과학 책방 ‘심가네박씨’, ‘책과생활’ 을 비롯해 독립출판물 서점에서 최근 전공을 바꾼 ‘파종모종’ 등이 있다.
이 같은 동네책방에는 책과 함께 하룻밤을 묵는 ‘북 스테이’(Book Stay)가 운영되는가 하면, 문학에 대한 이야길 나누는 독서모임이 책방에서 벌어지고, 인문학 강좌도 열린다. 요즘에는 퇴근 후 치맥이 아닌 ‘책맥 한 잔’ 할 수 있도록 책과 맥주를 함께 파는 책방도 여럿이다. 책방이 동네 사랑방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그 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책벌레들이 사랑하는 곳
동네책방 ‘숨’은 책벌레들의 쉼터다.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책을 읽거나 다락방에서 책과 함께 차분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어서다. 책방 사방 벽면에는 500여 종의 책들로 빼곡하다.
대부분 전라도 문화, 생태·환경, 마을·교육·공동체 등 주제의 책들로 바로 책방지기 안석·이진숙 부부가 엄선한 추천도서들이다. 책들은 ‘전라도 이야기’ ‘세월호’ ‘추천도서’ 등 각 분야별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라도 이야기 섹션에는 전라도 작가들의 대표작들과 추천도서 등이 꽂혀 있다. 선물하고 싶은 분을 생각하며 미리 책을 구입해 놓는 ‘책 미리내’ 코너도 인상적이다.
봉선동 책방 ‘공백’은 일상에 ‘공백’이 필요할 때 찾는 곳이다. 있는 듯 없는 듯 한 이곳은 30대인 두 지기들의 시간과 삶에 공백을 주고 싶어서 시작됐다. 책과 커피를 팔고 작은 전시도 연다. 책방지기의 취향에 맞춘 에세이 위주의 출판물들을 다루며 엽서와 기념품도 판매한다. 크림이 듬뿍 올라간 공백커피는 이곳의 대표 메뉴다.
트렌디 한 인테리어로 눈길을 빼앗는 곳은 ‘메이드 인 아날로그’다. 이곳은 도서, 문구, 식물류, 커피를 판매하는 편집숍이기도 하고,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책방지기의 스튜디오이기도 하다. 1층에는 여행, 라이프스타일 잡지·추천 도서·디자인 문구류 코너가 있고, 2층에는 예술·문학·인문학 도서가 있다. 2층에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큰 테이블을 두었다.
송정역시장에 자리한 ‘인생가게’는 책맥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책방엔 시·소설·수필처럼 흔한 분류가 아니라, 저마다 인생의 고민들로 책을 꽂아둔 것이 특징이다. 매월 책방 지기들이 선정하는 ‘블라인드 도서’가 색다르다. 블라인드 도서는 책의 내용을 유추해 볼 만한 ‘키워드’ 몇 가지를 보고 구매하는 것으로,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다. 서고 너머에는 담양에서 공수해 온 대나무 맥주가 지친 당신의 하루를 위로한다.

-책으로 소통하는 ‘문학 살롱’
동명동에 자리한 ‘심가네박씨’는 배움의 기쁨을 전하는 인문사회과학 책방이다. 이곳엔 누군가의 삶에 울림이 됐던 책을 소개한다.
문학·철학·사회과학·예술·광주전남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가득이다. 월·수·금요일에는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인문학 강좌 ‘인문지행’이 운영된다. 책으로 ‘연’을 맺어가는 교류의 장이자, 문화공간이다. 사색이 필요하다면 ‘심가네 박씨’에 발걸음 해보자.
‘소년의 서’는 지난날 금서로 취급됐던 ‘지하의 베스트셀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1985년 초판 이후 32년 만에 개정판으로 나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비롯해 ‘7080년대 공연금지 희곡선집’ 등 희귀본도 눈에 띈다. 책방지기 임인자씨가 갖고 있던 책 그리고 기부 받은 책들 1000여권이 책방을 채웠다.
‘타인의 책 지음책방’은 책방지기 부부의 꿈이 들어찬 곳이다. 이곳엔 부부가 25년 넘게 모은 6000여 권의 책들이 가득하다. 읽고 싶을 때 바로 찾아볼 수 있도록 그림책, 전시도록, 순수문학, 과학, 철학 등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메인공간인 1.5층에는 시집, 만화책 등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다. 마을도서관에서 출발한 이곳은 책방지기가 선정한 한 권의 책만 판매하고 나머지는 열람용이다. 커피·뱅쇼·맥주·슬로푸드 등 마실 것과 먹을 것도 함께 즐길 수 있다.
‘검은책방 흰책방’은 문학으로 진솔하게 소통하는 문학 살롱이다. 이곳에서는 시와 소설을 중심으로 인문학·철학·예술 관련 책을 다룬다. 예비 문학인들과 교류하는 독서모임이 열리고, 작가들과의 낭독회도 진행한다.
원래 독립 출판 서적을 판매하는 셀렉트숍이자, 독립출판사였던 파종모종은 최근 큐레이션 책방으로 변신했다. 광주에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책방이 늘어난 데 따른 전략적 대응으로, 파종모종에서는 이제 광주를 주제로 한 책, 광주 작가들의 책, 식물과 관련한 책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파종모종에서 운영하는 ‘북클래스’는 출판물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인쇄까지 독립출판의 실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나만의 책’을 출판해보고 싶은 예비 작가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책방 지기는 "책마저 자본화 되면서 서점만의 ‘특색’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어졌다"며 "동네 작은 책방들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책방의 매력은 바로 ‘다름’이다. 저마다 콘셉트와 진열하는 책들의 분야도 완전히 다르다. 메인 서고의 책 제목만 꼽아보는 것만으로도 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책방마다 ‘베스트셀러’가 다름은 당연할 터.
편의성이나 가격경쟁력 부분에선 ‘자본의 힘’을 이겨볼 재랑은 없겠으나, 저마다 차별화된 공간 구성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골목 골목의 우리 동네 책방으로 마실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