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과 이몽룡을 만날 수 있을 듯한 남원으로 가는 날 아침, 개운치가 않다. 전날 ‘광주오월문학축전 및 한국작가대회’에 참여했다가 전국 문학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늦은 저녁을 했던 식당에 카메라를 흘리고 왔기 때문이다. 문단 선배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흘린 지 그 자체를 모를 뻔 했다. 똑딱이라 불리는 소형 카메라는 늘 필자의 여행길에 함께하는 소중한 동반자다. 여행을 가면 반드시 사진을 찍는 습관이 있어서다. ‘거기 들러 언제 가냐’고 애 엄마가 타박한다. 투덜거리는 필자의 모습에 짜증이 나면서도 장모님의 중재로 본의 아니게 양보를 끌어냈다. 어렵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근 식당에 들러 카메라를 찾아 고속도로로 빠져나갔다. 가끔 여행은 예기치 않은 상황들과 맞닥뜨린다. 남원으로 가는 프롤로그는 식당에 흘린 카메라를 되찾아 떠난 것부터 시작된다. 물론 여행의 에필로그에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지 모른 채 말이다. 어쩌면 여행은 앞뒤가 극적 반전일수록 강렬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지리산 자락 풍경좋은 남원의 외곽지역을 먼저 둘러보고 시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운봉읍 바래봉길에 자리한 허브사이언스파크로 향했다. 허브사이언스파크를 먼저 택한 데는 지리산허브밸리 때문이었다. 지리산허브밸리는 국내 최대 철쭉 군락지인 지리산 바래봉 자락의 해발 600m 지역인 운봉읍 용산리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05년 정부로부터 지리산 웰빙허브 산업특구로 지정받은 곳으로, 남원시가 22만평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허브테마관광지로 조성했다. 허브의 보고라고 보면 될 듯 싶다.

축구장 40개 크기의 허브체험농원과 허브테마파크, 지리산자생식물 환경공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은 아는 사람만 방문할 수 있을 만큼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신기하게 어떻게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까 할 정도였다. 허브의 깊은 내음과 신기한 체험공간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대단히 호기심 어리게 들여다봤다.

특히 허브식물원은 작은 폭포와 동굴이 조성돼 있어 허브 향을 만끽하며 식물원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식물원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흡사 전망대와 미로처럼 꾸며진 연결통로가 지루하지 않도록 돼 있었다. 전망대 또한 식물원을 조망할 수 있어 운치를 더했다. 평소 허브를 다 아는 것처럼 행세했지만 허브의 새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로 손색이 없었다.

이곳저곳 허브체험 현장학습을 한다고 생각하고 자생식물환경공원까지 둘러보며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반나절체험이나 종일체험 및 허브화분만들기와 허브소금만들기 등의 다양한 체험이 진행되지는 않아 눈으로만 살펴봐야 했기에 아쉬웠다. 이곳에서 재배된 허브로 직접 화장품 등을 만들어볼 수 있는 데 그것을 할 수 없어 다음 방문때는 프로그램 운영 여부를 확인하고 방문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와 온갖 꽃들로 화사한 느낌을 주는 원형광장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만끽하며 마지막으로 주황색 지붕의 흰 건물의 유럽식 느낌이 드는 지리산자생식물전시관을 들러 다양하게 전시중인 이 일대 식물들을 접할 수 있었다. 여기서도 아이들은 바깥의 체육시설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아쉬움을 달래고 그곳을 나와 요란한 노랫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지리산 일대 특산품들을 파는 판매부스가 설치돼 있었다. 등산을 하고 하산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허브밸리를 구경한 뒤 덤으로 둘러볼 수 있어 재미를 더했다. 축제장 가면 여지없이 소음처럼 들려오는 트로트 소리만 없었더라면 조용한 여정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그냥 누군가에게는 트로트 소리가 꼭 필요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모두 둘러보고 나오니 벌써 점심이 지나고 있었다. 지리산 특산품과 약초로 반찬을 만들어 내어놓은 한식뷔페로 가서 요기를 달랜 뒤 남원 시내로 이동했다. 남원하면 모두 광한루를 떠올린다. 필자 역시 남원하면 광한루로 인시된다. 숨겨진, 보물같은 곳도 있겠지만 남원 관광 첫 손가락에 꼽히는 광한루를 이번에는 속속들이 들여다볼 셈이었다. 그래서 광한루 인근에 숙소를 잡았다. 아이들까지 한 여정이었기에 켄싱턴 리조트로 정했다. 짐을 풀고 여정을 소화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요천강변을 사이에 두고 리조트와 광한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요천강변 벚꽃길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여름초입이어서 벚꽃 없는 푸른 벚꽃길을 걸으면 강가의 풍경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춘향제 동안 강변에서도 공연은 물론이고 다양한 먹거리와 눈요깃거리를 할 수 있는 부스들이 넘쳐났다. 사람들에 밀려갈 정도로 번잡했으나 잠시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이곳을 빠져 높은 다리를 건너며 요천강변을 조망했다. 마음이 시원해졌다. 다리를 건너 광한루원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제88회 춘향제가 열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춘향제를 구경한 뒤 잔디밭 곳곳에 자리한 설치 작품들을 둘러봤다.

숟가락이나 냄비 뚜껑 등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어서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광한루 인근 재래시장인 남원시공설시장이 자리하고 있으니 가는 길에 추어탕집에서 한 그릇 뚝딱 하고 시장에 둘러보며 남원 인심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광한루 인근은 잘 정비돼 있다. 마치 전주 한옥마을같은 느낌마저 든다. 부정인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잘만 하면 관광으로 뜰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이들과 대동한 여행은 어른의 계획처럼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오히려 리조트에 있는 놀이시설이나 토끼 막사 등을 더 선호한다. 패키지처럼 점을 많이 찍고 오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여행 이틀째 되는 날, 향토박물관과 춘향뎐 영화세트장, 동헌 등 다채로운 공간으로 구성된 춘향테마파크를 살펴봤다. 아이들은 중간에 토끼 사육장과 그네 타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이곳을 둘러본 뒤 백종원도 다녀갔다는 남원 유명 빵집 명문제과로 향했다. 명성답게 길다랗게 줄을 서있는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줄을 보면서 유명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빵집에서 유명하다는 생크림소보르를 비롯해 수제햄빵, 꿀아몬드 등을 오랜 인내 끝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론 광주로 돌아오기 전에 남원교육문화회관 과 남원국민체육센터 내 야외정원 벤치에 앉아 3분2이상 시식을 핑계로 폭풍 흡입했다. 해가 짧은 일정을 정리하고 광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남원의 여운을 채 정리도 하기 전에 피곤한 몸을 이끈 채 우리는 다시 떠나야 했다.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해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재가 발생한 덕에 그날 밤 나주 혁신도시에서 남원을 되새겨야만 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