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한 청년이 버스킹 공연 기획에 ‘살짝’ 발을 디
뎠다. 뮤지션들을 섭외하고, 무대를 꾸몄다. 어떤 콘셉
트로 공연을 연출할 지도 깊이 고민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물들어 있는 공연을 바라보면서 그는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그저 ‘예술’을 매개로 즐거움을 나누는 것, 이 일련의 과정이 모두 예술적인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김한열 청년문화기획자(문화아지트 에포케 대표)는 그렇게 공연기획에 매료됐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뮤지션들은 저 멀리 있는 사람,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공연기획에 직접 참여하고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뜻이 맞는 뮤지션들과 좋은 공연을 기획하고, 또 재미난 문화행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당시는 그가 전남대 경영학과에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할 때였다. 그런 그가 문화기획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대학의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맡게 된 것이지만, 더 늦지 않게 인생의 적성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그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그가 처음 한 일은 예술가란 뜻의 ‘Artist’에서 ‘A’를 떼 낸 것이다. ‘RTIST’란 공연기획단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또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젊은 문화기획자들이 함께 재미난 공연 기획을 꾸미는 ‘RTIST’는 한 달에 한 번 광주 인디 뮤지션들을 초청해 정기음악공연을 진행했다.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귀했던 뮤지션들에겐 좋은 무대가, 공연에 목말랐던 시민들에겐 재미난 놀이터가 돼 줬다.
청년들이 충실하게 정기공연을 이끌어 가자, 여기저기서 "함께 일하자"는 러브콜도 여럿 들어왔다.
"도중에 ‘도시축제창의학교’라는 교육모임에 참여하게 됐어요. 이후 도시 장소적 특성에 맞는 축제 기획에 관한 공부도 진행했죠. 2015년부터는 전국오월창작가요제 운영팀장으로 제안을 받아 4회째 가요제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참 일 잘한다’는 소문은 또 다른 공연기획을 해 볼 소중한 기회로 돌아왔다. 2016년부터 진행한 ‘달빛통맹 포크콘서트’는 그가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음악회다. 달구벌 프로젝트의 하나로 진행된 콘서트는 양 지역의 포크뮤지션들이 참여하는 음악회이자 우정을 나누는 교류회다. 오는 10월7일에 그가 준비한 세 번째 무대가 공개될 예정이다.
"광주 포크뮤지션들과 대구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모시고 광주 풍암호수공원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펼칩니다. 가을 밤 정취에 어울리는 포크 명곡들은 물론이고, 뮤지션들을 위한 잔치도 준비돼 있어요. 늦은 밤 10시부터 진행되는 밤샘릴레이콘서트는 관객들이 특히 좋아해주는 프로그램으로 꼽혀요. 이 같은 교류 무대를 통해서 각 도시에 숨겨져 있는 포크음악의 참맛을 알리는 게 제 몫이자, 공연기획자로서 제 꿈이에요."
공연기획자로, 또 재미난 문화판을 벌이는 청년으로도 바쁘지만, 그가 뚝심 있게 밀고 가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문화아지트 에포케를 운영하는 일이다. 그는 문화 기획력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공간이라고 본다. 전남대후문에 자리한 ‘에포케’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공연기획단 RTIST로 활동할 때 조그만 실내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기적으로 공연을 열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우선이었거든요. 마침 좋은 공간을 소개받았어요. 지하에 있어 방음 문제도 저절로 해결됐고요. 초기에는 아모틱협동조합과 함께 운영을 하다, 2016년부터는 혼자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에포케에서는 인디뮤지션들의 크고 작은 공연들이 열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청년들이 모여서 상영회도 갖는다. 무엇인가 꼭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이 펼치고픈 콘텐츠들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것 또한 에포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에포케는 ‘판단중지’란 뜻의 철학용어입니다. 지하의 이 음침한 공간에서만큼은 저 위쪽(지상)의 빡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모든 판단을 ‘중지’하는 상태에 이르러 보자는 뜻을 담았어요. 말 그대로 에포케에선 무개념 상태가 되는 것이죠. ‘이게 잘 될까’, ‘실현 가능한 기획인가’, ‘관객이 안 오면 어쩌지’ 하는 고민과 걱정들을 내려놓고 자신이 기획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펼쳐내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묵묵히 응원해주고, 지원해주는 일에 몰두하고 있어요."
그가 에포케 일에 애정을 쏟는 이유가 있다. 문화기획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다. 그 또한 문화기획에 젬병이었던 시절, 인디뮤지션 공연 기획에 참여한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자신이 그런 귀한 기회를 얻었던 만큼, 베풀고 싶은 마음도 있다.
"기획에 있어 이렇다 할 경력도, 경험도 없었지만 이에 동참한다는 것 자체가 큰 동력이 돼줬어요. 이를 계기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처럼 문화기획을 해보고픈 청년들이 이곳 에포케에서 실행했으면 좋겠어요. 이곳은 실패해도 되는 ‘실험 공간’이거든요."
그가 생각하는 문화의 힘은 크다. 지금 당장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할지라도, 이 같은 작은 힘들이 모여서 결국한 사람의 의식을 바꾸고, 나아가 사회를 바꾸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시선으로 볼 때 광주 문화콘텐츠들이 가진 잠재력은 적지 않다. 늘 크고 작은 ‘잔치’들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 양림동을 무대로 펼쳐졌던 ‘1930양림쌀롱’, 가을에 열리는 ‘사운드파크페스티벌’과 같은 굵직한 행사들을 비롯해 ‘심해’라는 EDM기획공연, 타운매거진 기획공연, 바닥프로젝트의 골방음악회, 부드러운 직선의 음악이 있는 밤 등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공연들이 많다.
"이러한 기획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 봐요. 다만 광주에 이런 다양한 공연들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모르는 것은 참 안타까운 현실이죠.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결국 광주라는 도시 속에 인프라가 협소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겠지요. 특히 많은 문화콘텐츠들이 수요자에게 뻗어나가는 것에 있어서 ‘힘’을 받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잠재돼있는 가치들을 깨우기 위해서 따로 또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기획들에 대해 묻자, "더 공부할 일이 남아있다" 전해준다. 자신이 문화기획자라고 소개되는 것조차 아직은 이르다는 게 겸손한 그의 생각이다. 다만 일상에 활력이 되고, 누구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재미난 문화기획을 내보이고 싶다.
"공연기획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면서도, 남들에게도 사랑받는 기획들을 이끌어 가보고 싶죠. 무엇보다 관객과 공연자가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까는 일이 제 역할인 것 같아요.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만 어떤 일들이든지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더불어 에포케에서 빛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청년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습니다. 에포케에서는 누구나 예술가가 되고, 또 누구나 기획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갔으면 해요. 실제로 그것이 실현되는 문화아지트로 자리매김 하길 바라요. 지난 날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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