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기억은 곧 삶의 활력이 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게 할 힘이 돼 준다고 생각해요."
김병희 문화기획단 유별라 대표에게 문화기획이란 즐거움 그 자체이다. 신이 나야 제대로 된 판을 벌일 수 있고, 흥을 돋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야말로 문화가 해야 할 제 몫이라 믿는다.
그는 음악을 들려주는 뮤지션으로서도, 또 지역의 매력을 담아내는 축제 감독으로서도 그리고 광주 면면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으로서도 시민들을 만난다. 도맡아 하는 일은 수가지 이지만, 그 목적은 하나다.
"문화기획자가 하는 일은 ‘놀이 판’을 벌이는 일이에요. 그 장 안에서 사람들과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것이죠. 이 같은 놀이판이 깔리는 데 있어 제1의 조건은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음악이든, 축제든, 또 어떤 퍼포먼스를 기획하든지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처음 문화기획에 발을 디딘 곳은 ‘오월길’ 현장이다. 그는 2017년 5월 광주 청년들과 함께 오월길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1980년 5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오월길을 바로 알리는 프로젝트였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기억해야만’ 하는, 또 ‘잊지 않아야’ 하는 광주의 이야기들을 불러내었다. 그해 5월 행사는 막을 내렸지만, 프로젝트를 도맡았던 청년들은 쉬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 맘 맞고 뜻 맞던 조직이 그대로 와해돼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렇게 그 친구들과 함께 ‘유별라’를 만들었어요. 유별라는 ‘Your Special Life’의 앞 글자를 따 지은 이름이에요. 우리 일상에 특별함을 선물한다는 바람을 담았죠. 유별라라는 발음 그대로 ‘유별나다’는 뜻도 틀리지 않아요."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은 김 대표가 가장 바쁜 시기다. 그야말로 축제의 시즌이기 때문. 그는 요즘 막걸리에 푹 빠져있다. 담양 해동주조장을 배경삼아 펼쳐지는 ‘담양해동문화축제’를 준비하고 있어서다. 11월3~4일 열리는 축제에서는 전남 22개 시군의 각양각색 막걸리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시음 뿐 아니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갖는 ‘공감주 콘서트&음악극’, 공간해석 패션쇼인 ‘패션청춘’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가 이끄는 어쿠스틱 밴드 ANB도 음악 공연 무대에서 흥을 돋을 예정이다. 목을 축일 술이 있고, 노래가 있으니, 그가 지향하는 즐거운 축제와 딱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ANB밴드는 이날 밴드의 대표곡 ‘얼음 연못’, ‘달빛이 흐른다’ 등을 비롯해 이선희의 ‘인연’ 등 팬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꼽아 들려줄 예정이다. 무엇보다 이들 연주는 국악기 해금이 밴드 악기들과 어우러지는 지가 매력 포인트다. 지난해 꾸려진 ANB밴드는 어쿠스틱을 주로 하는 팀이지만, 해금이 들어옴으로써 퓨전밴드로 더 많이 소개된다.
"팀명 ANB는 ‘Acoustic And Band’란 뜻을 담았죠. 어쿠스틱을 지향하고 있지만 ‘And’라는 단어를 집어넣음으로써 다채로운 음악을 향한 가능성들을 열어두었습니다. 기타·피아노·드럼 등 밴드 악기 구성에 국악기 해금을맞아들였어요. 해금이 서양악기로 치면 바이올린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 소리가 참 좋아요."
‘깡깡이’ 혹은 ‘깽깽이’란 별칭처럼 해금은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악기다. 꽤 독특한 소리라서 공연이 시작되면 이내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우리 국악기지만, 바이올린보다 더 귀하게 볼 수 있어, 관객들의 반응도 좋다. 재미있는 것은 ANB 밴드 또한 프로젝트 팀이 그대로 연주단체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쿡! 아시아 쿠킹 콘서트’에서 음악 부문을 맡아 진행했다. 아시아 각 나라별 음식을 만들어 낼 때, 그에 걸맞는 음악들을 들려주는 일이었다.
그때 김씨를 주축으로 모인 팀이 ANB 밴드로 창단, 활동을 잇고 있는 것이다.
ANB는 기타 김 대표를 비롯해 서담(작곡 및 퍼커션), 이애실 (재즈피아노), 정은송 (보컬), 문보라 (해금) 등 5명 멤버로 구성된 팀이다. 이들은 광주전남의 숱한 무대에서 팬들을 만나왔다. 지난 여름엔 월드뮤직페스티벌 무대에서, 해금과 재즈 선율의 콜라보를 들려주었고 송정역시장 1주년 기념 행사, 은빛고을거리페스티벌, 세계김치축제 축하공연, 7080충장축제 등에서도 ANB만의 음악을 선사했다.
"해금 자체가 워낙 튀는 음이라서, 어떻게 잘 버무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ANB의 과제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해금과 보컬, 연주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공연을 하면 할수록 팀원들 스스로가 ‘서로 스며 들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있어요. 우리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연주를 하니, 더 재미있죠. 딱히 정해진 연습시간이 없지만, 연습실에 가보면 늘 멤버들이 있는 것을 보면 참 기분이 좋아요."
‘유별라’도, ‘ANB’도 모두 프로젝트 팀이었다가, 고정팀으로 이어지고 있는 걸 전해 듣고는 그에게 "참 좋은 리더십을 가진 모양이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저 "나는 병풍이다"며 웃는다.
"병풍처럼 서 있는 게 제 역할이에요. 사람을 이끄는 리더십 보다는, 그저 머물게 하는 아늑함을 주려고 노력하죠. 사실 이거하자, 저거하자 안을 내고 이끌어 가는 스타일이기 보다는 팀원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오래 함께 가는 팀을 이끌어 가고 싶거든요."
축제 현장에서, 또 음악 공연 무대에 서면서, 광주 문화판에 아쉬운 점도 보이는 그다. 특히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 팽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역사·문화적 가치는 차치한 채 오직 축제 판을 늘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축제라는 게 전통이 있어야하고, 맥락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사실 외국의 유명 축제들은 오래 이어져 왔을 뿐 아니라, 연속성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민족문화말살정책에 따라 많은 문화들이 사라져버렸어요. 이후, 선인들의 문화들을 발전적으로 이어왔어야 하는데, 각 지역에서 경쟁적으로 역사문화자원들을 활용한 콘텐츠들을 내놓다 보니, 차별성 없는 축제들만 우후죽순 생겨났죠. 기획자들이 스스로 ‘과연 나라면 이 축제에 갈 것인가?’에 대한 자신 있는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앞으로 ‘기억’을 선물하는 기획들을 벌이고 싶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기획자로서 욕심나는 일들이 많다. 올곧은 가치와 역사적인 흔적들을 문화로 승화, 오래오래 기억하게 하는 게 그가 할 일이다.
"역사적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 소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들에 그저 우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기억하게 하고 싶어요. 그런 광주의 이야기들을 문화기획으로 선보이고 싶습니다."
문화기획자로서 꿈에 대해 물으니, ‘동네 착한 바보’처럼 살고 싶다는 답이 돌아온다.
"동네 바보는 정처 없이 마을을 떠돌아요. 별 일 없이 돌아다니면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요. 그는 그저 돌아다님으로써 마을에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선물하죠. 그만의 방식으로 동네를 돌봐주는 것입니다. 문화기획도 그래야 한다고 봐요. 무료한 일상에 비타민 같은 것이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장을 깔면서 살고 싶습니다. 삶에 재미가 있어야만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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