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 곳곳에는 9명의 ‘훈이오빠’가 달린다. 이들은 옛 전남도청을 지나며, 1980년 5월을 들려주기도 하고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동명동·양림동도 소개한다. 광주의 명물 ‘궁전제과’는 그냥 지나갈 수 없어 꼭 들러 공룡알 빵을 사먹고, 커피 맛있는 곳을 찾아가 아메리카노를 나눠 마신다.
속도가 느려서, 더 천천히 오래오래 음미할 수 있는 자전거에 몸을 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훈이오빠’는 쉽게 설명하자면 광주의 관광자전거다.
흔히 다른 관광지에서처럼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훈이오빠’라는 별칭의 라이더들과 손님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다. 뒷자리에 앉은 관광객들은 라이더들의 가이드 아래, 광주 도심 곳곳을 내달린다. 차로 쌩쌩 지나다닐 때는 차마 보지 못했던 빛고을 광주의 속살들이 눈에 들어온다.
라이더 김광훈(광주에코바이크 사무국장)씨는 "느리게 가는 것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자전거로 여행하는 광주의 매력을 소개한다. ‘훈이오빠’가 세상에 나온 때는 바로 2015년이다. 당시 광주는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앞두고 있었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을 서두르고 있던 시기다. 그때 김 사무국장은 광주를 재미나게 알리기 위한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바람을 쐰다는 말이 있죠. 관광을 하면서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너무나 정신 없는 세상, 분주하고 북적이는 도심 속에서도, 느리게 보다 자세히 여행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했죠. 이에 대한 답은 바로 자전거였어요."
처음엔 자전거를 대여하는 방식으로 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광주는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기 위한 인프라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인력거’와 같은 방식의 세발자전거다.
"광주만의 브랜드로 키워나가고자 했기 때문에 이름부터 많은 고민을 했죠. ‘씽씽이’, ‘씽씽고바이크’ 등 많은 이름들이 거론됐지만 특징이 없어서 거절했어요. 조금 촌스럽더라도 한 번 들으면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1순위였죠. 그러다가 미대오빠, 교회오빠처럼 정스러움을 더해보자 해서 ‘훈이오빠’로 결정했습니다."

‘훈이오빠’는 현재 총 7개 코스가 운영 중이다. 복닥대는 남광주시장, 시민들의 영원한 약속장소 ‘우다방’, 전국 유일의 단관극장 ‘광주극장’, 예술의거리와 대인예술시장, 동명동 카페골목, 양림동 펭귄마을 등 광주의 다채로운 면면을 만날 수 있는 곳들로 짜여졌다. 한 코스를 둘러보는 데 약 30분이 걸린다.
무엇보다 ‘훈이오빠’의 운영 철칙은 바로 ‘느리게, 느리게’다. 김씨가 라이더들을 교육할 때 가장 강조하는 말 또한 이와 같다. 그는 "걸어가는 사람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자전거는 느려야 제 맛이에요. 최대한 천천히 가야해요. 그래야 뒤에 앉은 손님이 자세히 돌아볼 수 있죠. 운전하기에 고되니까 전기를 다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많았어요. 관광 자전거가 빨라지면, 택시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느리게 간다는 것은 곧 깊게 알아간다는 것과 같아요. 느리게 거닐다 보면 보이는 게 있을 거예요.
그것이 하물며 아 이 도시 참 쓰레기가 많네, 불법 주정차 된 차가 많네, 하는 것들이다 하더라도 그것마저도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도시의 진짜 모습이죠. 차타고 슝 지나갔으면 몰랐을 것이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안타까운 면들도 유독 눈에 띈다. 특히 ‘차’로 이동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보면 꼭 도로라는 섬에 갇혀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라 한다.
"한 예로 문화전당은 걸어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에요. 차에서 내려서 문화전당을 쭉 둘러보고, 또 차를 타고 이동하게 되죠. 그러면서 충장로의 속살, 금남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흔적들을 모두 놓치게 돼요. 진짜 본모습들을 못 보는 것이죠. 저는 ‘훈이오빠’가 이 같은 간극들을 해소시켜 나가는 매개체가 됐으면 해요. 가이드 역할을 하는 라이더들이 장소에 깃든 스토리들을 맛깔나게 풀어내는 것도 바로 이를 위해서죠."
1년이면 4500여명이 ‘훈이오빠’를 이용한다. 지난달에는 신랑신부가 ‘웨딩카’ 대신 자전거를 이용해서 도심을 돌아다녔다. 웨딩카라면 받지 못했을 지나가는 시민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았다. 홀로 훌쩍 떠나 온 배낭여행객들도 호기심에 자주오고, 엄마와 딸이 나란히 앉아서 자전거 마실을 즐기기도 했다. 최근에는 SNS에서 입소문이 퍼져, 예약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30분 돌아보는데 5000원이니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어서 어린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다.
남녀노소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니, 김씨는 거의 관광전문가가 다 됐다. 택시기사님들이 골목 민심을 꿰차고 있는 것처럼, 그 또한 마찬가지다. 코스를 반복적으로 돌다 보면 여행객들이 좋아하는 모습, 따분해 하거나 비판하는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우선 웬 축제가 이리 많으냐고들 하세요. 별다른 차별화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축제가 시민들이 보기에도 그리 좋아보지 않나보다 생각해요. 이게 축제인지, 장사인지 모르겠다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분들도 많았고요. 또 광주의 핫플이라고 소개되는 동명동은 ‘훈이오빠’ 이용객들에겐 그닥 인기가 없어요. 우선 불법 주정차 된 차들이 즐비해서, 자전거가 다니기에도 너무 복잡하죠. 그곳은 우리 손님들 뿐 아니라 라이더들도 가장 꺼리는 코스중 하나입니다."
김 사무국장은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에게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란, 자전거 도로가 떡하니 놓여지는 것이 아니다. 인프라에 앞서 중요한 것이 바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시민의식이다.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만의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도시가 노력해야 하는 거예요. 거리가 깨끗해야 하고, 또 안전해야 하고, 조금 느리더라도 자동차 경적을 울리지 않을 마음의 여유와 의식이 필요하죠. 거리에 ‘차’가 아니라 ‘자전거’가 많아진다면 도시에 또 우리 삶에 아주 큰 변화가 일 것입니다."
김 사무국장은 1913송정역 시장은 물론, 전남대·조선대·교육대 등 각 대학교, 중외공원 쪽까지 코스를 확대해 나가는 게 꿈이다. 광주란 도시를 커버하기엔 ‘훈이오빠’ 아홉대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다 각 마을사업으로도 자전거 마실 프로그램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동네 이야기를 제일 잘 알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돼, 마을 골목골목을 소개하는 코스를 개발하는 것이죠. ‘훈이오빠’가 광주란 도시의 큰 틀 속에서의 속살을 내보여주었다면, 마을로 들어간 자전거는 광주 사람들 ‘삶’의 이야기로 채워졌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훈이오빠’로 이루고픈 꿈에 대해 물었다.
그저 ‘메신저’가 됐으면 한다는 단출하면서도 명확한 답이 돌아온다.
"광주를 알리는 메신저가 되고 싶어요. 여행지로서 광주의 현주소는 그다지 밝다고 볼 수 없습니다. 광주가 가진 역사문화자원들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도심 곳곳에 묻혀 있는 매력들을 꺼내어 주지 못해서이죠. 앞으로 도심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발굴, 속속들이 알려주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죠. 물론 자전거 위에서요. 오래 오래 광주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싣고 달려 나가는 ‘훈이오빠’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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