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동구 운림동 일대에는 지역의 사립미술관이 몰려있다. 무등산을 오르기 위해 이동하다 보면 미술관 5곳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광주시박물관미술관협의회에 따르면 광주시 내 사립미술관 8곳 중 5곳이 운림동에 자리하고 있다. 운림동 일대에 광주에 설립된 사립미술관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는 셈이다. 전국을 통틀어 미술관이 한 지역에 몰려 있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니 흔하지 않은 풍경임에는 틀림없다.
미술관 외에도 광주무형문화재 전승 공간이자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전통문화관, 60여년간 한국 전통차 문화를 일궈온 한국제다 등 까지 자리해 자연·문화·예술 벨트로 손색이 없다.
이런 조건들로 인해 그동안 이 일대는 운림동 미술관 거리나 운림동 예술의 거리, 의재로 문화의 거리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졌다. 지난 2011년에는 운림동 일대에 자리잡은 사립미술관 거리 활성화를 위해 ‘운림동 예술의 거리’로 명명해 투어 가이드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이후 지역 거주민과 예술인이 문화자원 발굴과 콘텐츠 활성화를 위해 ‘무등문화예술발전협의회’를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다.
전통문화관을 운영하는 (재)광주문화재단과 무등산국립공원 사무소 등은 협업과 공동 사업 시너지 효과를 위해 2014년도부터 인근 기관들과 예비모임을 진행해오다 2015년 ‘운림동 문화네트워크 모임’(가칭)을 창설했다. 무등산 기슭의 매력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2015년 6월에는 동구 무등산권 6개 기관이 모여 ‘무등산권문화협의회’를 결성, 자연과 예술을 주제로 한 공동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해 힘을 모으기로 약속했다. 음악회를 비롯한 문화예술행사 등을 선보이는 공동시범프로그램 ‘무등울림’을 운영한 바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기관이 연대하고 이들의 역량이 보태져 운림동 일대의 문화예술 공동체 활동이 다원화 된 것이다.
그러면서 무등산도 변화를 거듭했다. 광주시에서는 2010년에 무등산국립공원 승격 지정을 환경부에 건의했고, 2012년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결정(환경부 고시 제2012-252호)됐다. 2013년에는 우리나라에서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돼 무등산국립공원 공원사무소와 동부사무소가 개소했다. 올해 4월에는 무등산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록됐다.
이런 지역성과 장소성을 기반으로 각 미술관들은 독자적인 특성을 형성해왔다. 그 일례로 미술관 인근 문화예술자원을 발굴해 콘텐츠화에 나선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미술관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우제길 작가의 작품세계와 연계한 우제길미술관의 교육프로그램 진행 모습

먼저 2001년 4월에 문을 연 우제길미술관은 운림동 일대에서 가장 먼저 미술관을 개관한 곳으로 2014년 건축가 승효상씨의 설계로 리모델링돼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현역 화가로 활동 중인 ‘빛의 화가’ 우제길 작가의 이름을 딴 이곳은 우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할 수 있도록 그의 생애 전반에 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전시와 교육 등을 꾸준하게 열고 있다.
우제길미술관 인근에는 2012년 전국 걷기 좋은 길 1위에 선정된 동적골 산책로가 형성돼 있다. 자연친화 공간으로 알려진 동적골 산책로는 학운초등학교 앞 동적교에서 체육쉼터에 이르기까지 무등산 새인봉과 중머리재 등산로의 일부 구간으로 구성됐다. 4년여전 동적골을 무대로 자연미술 활동 ‘초록메시지’를 진행하는 등 주변 지역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이어 2001년 11월 개관한 의재미술관은 전남 진도 출생 의재 허백련(1891∼1977)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의재가 기거했던 ‘춘설헌’과 시서화 동호인 모임인 ‘연진회’ 등 당시 자취를 보존, 계승에도 힘을 쏟았다.
의재미술관은 한국화를 중심으로 현대미술을 아우르며 의재의 회화정신을 예술로 승화하는 데 주력한다. 한국화의 일필휘지와 같은 주요개념 및 남종문인화 등 지역의 미술역사를 재조명해 스토리 발굴에 나선다. 다른 미술관들과는 다르게 이론가가 전시에 투입돼 논문을 발표하는가하면, 디지털 예술과 남종수묵화를 접목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전통 고유의 배채법을 이용해 비단 위에 채색해보는 ‘한국의 미: 경계를 넘어’, 옛 그림의 보존 방법을 체험하는 ‘옛 그림 속에 찾아든 봄’, 의재 선생처럼 무등산을 바라보며 스케치한 그림을 전통 재료를 이용해 그려보는 ‘의재 선생님과 함께 놀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의재미술관 ‘의재선생과 함께 놀다’

또 서양화가 정송규 작가가 2007년 문을 연 무등현대미술관은 지난 2009년 문화마을로 지정된 성촌마을의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이점을 살려 무등산을 포함해 성촌마을을 아우르는 콘텐츠를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 마을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할아버지의 서당이야기’, 성촌마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성촌마을에 달이 뜨다’, ‘예술을 꿈꾸는 마을-자연, 인간 그리고 예술’ 등 예로부터 학자골로 불렸던 성촌마을의 문화자원을 찾아 콘텐츠화했다.
여기다 무등산에 대한 관심을 투영한 ‘무등이야기’전을 열었으며, 이후 환경에 주목하게 되면서 ‘환경미술제’를 꾸준히 열고 있다. 무등현대미술관이 열고 있는 환경미술제는 업사이클링(up-cycling)에 주목한 ‘업사이클링 아트&디자인’,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담은 ‘자연을 거닐다’, ‘플라워무브먼트’ 등이 있다.
2008년부터 운영에 들어간 국윤미술관은 서양화가 국중효 명예교수(목포대)와 조각가 윤영월 전 광주서부교육장(前 광주예술고 교장)관장의 성을 합친 명칭으로 회화와 조각 중심의 작품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교육은 주로 두 관장의 작품과 연계해 진행되며, 무등산을 소재로 한 인문학 강의를 운영하고 이를 작품화하고 있다. 홍림창작스튜디오를 열어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발산마을 연계 프로그램 등 광주지역을 아우르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 올들어 무등현대미술관과 담벼락을 경계로 들어선 드영미술관은 서양화가 김도영 관장이 프랑스어로 젊음을 의미하는 이름을 지어 트렌디한 전시와 청년 작가 발굴에 집중해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주제의 전시를 추구하면서 청년 작가와 실력있는 작가를 발굴하는 데 힘을 쏟는 등 드영만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술계 관계자는 "등산 용품점이나 커피숍, 식당 등 상가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을 때는 미술관들이 도드라졌지만 많은 상가와 점포가 들어서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는 면이 있다"며 "미술관을 포함해 예술시설들이 서로 연계해 특화 거리로 점유율을 높여나갈 수 있는 방안들을 도출해 더이상 예술 특화 거리라는 명칭을 무색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 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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