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호·제68호=이성오 기자) 지난해 5·18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장에서 이개호 의원(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임을 위해 행진곡’을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정치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폭풍눈물’이었다.
이 의원에게 5·18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80년 그날, 전남대학생이었던 그는 당시 광주 시내에서 공수부대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끓어오르는 분을 참을 수 없었고, 실신할 만큼 충격이 컸다. 행정고시 1차를 합격한 뒤였다. 그런 참상을 목도하고 나니 ‘2차 시험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하게 됐다. 한 동안 방황했다.
그는 2·3차 시험을 통과해 공직자가 됐지만, 5월이 오면 늘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더구나 5월 항쟁의 중심지였던 전남도청에서 근무했기에 "창밖으로 들리는 시위대의 구호를 외면해야 하는지, 나가서 진상규명을 뜨겁게 외쳐야 하는지 수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기념식장에서 그토록 오열했던 이유를 물으니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이제는 마음껏 부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니 30여 년 묵은 서러움이 차올라 복받치는 감격과 감회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답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민주정권이 들어서 5·18의 한을, 5월 영령에 대한 빚을 갚게 됐다는 안도감은 그를 뜨겁게 했다.
이 의원은 지난 2016년 총선에서 당선(재선)돼 국회에 등원하자마자 1호 법안으로 ‘5·18진상규명특별법’을 발의했다. 법안은 민주당의 20대 국회 첫 당론으로 확정됐고, 여야 협상을 거쳐 지난 2월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의원이 당 지도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해 관철한 것이다. 그는 "(내게) 가장 의미있는 법안이다. 영혼을 바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대선 승리의 불씨, 호남에서 찾다 지난 2016년 8월, 이 의원은 문재인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호남 유력 정치인들 가운데는 처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이었고, 호남에서는 반문(반문재인) 정서가 극심한데다, 4개월 전 총선에서 국민의당 바람이 불어 민주당 기반이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더구나 친문(친문재인) 인사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 의원은 총선 이후 자신에게 질문을 계속해왔다.
‘왜 나는 광주전남 총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을까?’, ‘호남이 민주당을 버린 것일까?’, ‘호남이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내세워 승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답을 깊은 성찰을 통해 구했다.
‘호남은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곳보다 높은 곳이다.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해온 호남사람들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주저앉는 것을 보며 회의와 좌절을 겪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패했을 때는 좌절을 넘어 정치적으로 고립되는 두려움까지 경험했다. 이번 총선 표심에는 그런 것들이 깔려 있다. 호남은 민주당을 버린 게 아니라 매를 든 것이다.
민주당 지지는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진보세력의 지지기반인 광주전남에서 승리의 불씨를 찾을 수 있을까. 진보진영 주자들을 아무리 봐도 문재인 외에는 대안이 없다. 하지만 지금 호남에서는 ‘민주당 = 문재인 = 친문세력’이라는 등식이 형성돼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그런 고민을 안고 광주에서 편집·보도 국장들과 만났더니 "이제 좋든 싫든 민주당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문 정서가 여전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것 같다"는 얘기가 많
았다.
이 의원은 결단을 내리고 8월에 문 대표를 만났다.
문 대표에게 "호남에 가서 직접 호남 사람들을 안아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호남에서 문재인에 대한 지지가 없으면 민주당은 정권교체에 실패한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그의 선택을 탐탁지 않게 여기거나 의아해하는 지역민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문재인 아니면 누가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겠느냐. 아무리 봐도 다른 대안이 없다"며 주변을 설득했다. 대선으로 가는 길에 그는 마치 신들린 것처럼 밤낮없이 뛰고 또 뛰었다.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지 못하면 더 이상 정치를 할 명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장미대선’이 치러졌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호남사람들은 더 이상 홀대받지 않게 됐다. 아니 타 지역에서 시기할 정도로 많은 호남 출신 인사가 정부 요직에 등용되고 있다. 지역 예산은 크게 늘었다.
그의 선택이 옳았다. 만일 그가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 ‘호남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나타났을까.

농민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이 장관

현장에서 발로 뛰는 유능한 공직자
사실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 그의 선견지명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는 유능한 공직자였다. 전국 광역지자체 최연소 기획 계장, 최연소 기획관을 거쳐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한 ‘기획통’이다. 전석홍 전남지사, 강영기 기획관리실장, 강운태 내무부 장관, 허경만 전남지사로부터 배워 실력을 키웠고, 그들의 총애를 받았다. 그의 실력을 믿고 많은 일들이 주어졌고, 그는 어김없이 해냈다. 하지만 그를 단지 책상머리 서생으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른 여섯에 광양부시장이 된 그는 쓰레기매립장 건립에 반대하는 지역주민을 전국 최초로 설득해 해결했다. 님비 현상으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매립장 건립을 그는 주민 참여사업으로 전환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목포부시장 때는 유달산 순환도로 건설을 시민단체들이 심하게 반대했다. 그는 대화를 통해 시민단체와 신뢰를 쌓았고, 시민단체는 그에게 목포시와 자신들의 입장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아달라고 했다. 그는 조정위원장으로서 양자를 설득해 교각과 지지대를 쌓고 그 위로 도로를 놓아 환경훼손을 최소화하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전남도 농정과장 시절에는 우루과이라운드로 농업개방이 이뤄지면서 농민단체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 그는 농민회를 설득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하나씩 차례로 풀었다.
분쟁을 해결하는 그의 묘책은 ‘소통’이었다. 농민회든, 시민단체든, 지역민결사체든 혼자서 직접 찾아갔다. 공무원이 한 번도 오지 않았던 곳에 왔다며 놀라는 건 상대방이었다. 거기서 그들의 의견을 기꺼이 듣고 진솔한 얘기를 나눴다.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았고, 그 신뢰를 통해 문제를 순차적으로 풀었다. 그는 분쟁 현장에서 이해 당사자들과 소통하며 충돌을 조정할 줄 아는 리더였다.
탁월한 기획력에다 소통의 리더십과 중재 역량까지…, 그에게 특별한 디엔에이(DNA)가 있는 것일까. 4남 1녀의 맏이로 자라면서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며 무거운 책임감에 늘 절제해 온 삶에서 길러진 것인지도 모른다. "일이 생기면 해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 탓도 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어떤 문제든 직접 부딪쳐 해결하는 적극성이다.
오죽하면 지난 2011년 공직을 마치며 펴낸 책 제목을 ‘나는 일꾼이다’라고 붙였을까.
어려서부터 사업가나 정치가를 꿈꿨다. 초등학교 때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고 중학교 때는 정치가였으며, 고등학교 때는 다시 사업가가 되고 싶었고, 정치를 본격적으로 꿈꾼 것은 공직자로서 과장 무렵이었다.
"돈을 많이 버는 꿈도, 정치가가 되는 꿈도 ‘세상을 구하겠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이 아니라 좋은 세상을 만드는 ‘빛과 소금’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을 물으니 "항산(恒産)에서 항심(恒心)이 나온다"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맹자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 살아갈 만한 일정한 재산이 없으면 도덕심도 없다)이라고 했다. 다분히 실학적이고, 실용적이다.
그는 선거 때마다 ‘가슴 따뜻한 정치,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슬로건으로 내건다. 보좌진들은 제발 슬로건을 바꾸자고 하지만 그는 바꿀 생각이 없다. 이번 인터뷰 얼마 전에 그는 문 대통령에게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를 했다. 업무보고 주제도 ‘따뜻한 농정, 더불어 잘사는 농촌 농업’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청년농업인 육성’이다. 이 장관은 지난 11월9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농식품 정책콘서트’에서 "청년 농업인이 있는 한 우리 농촌과 농업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며 "내 정책의 1번은 청년 농업인 육성"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와 분권에 통달한 정치인
정치 입문은 순탄치 않았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담양·곡성·구례 지역구 출마를 위해 준비 중이던 그는 갑자기 지역구가 공중 분해되는 일을 겪었다. 고향인 담양은 인근 장성과 함께 영광·함평과 묶이고, 곡성은 순천으로, 구례는 광양으로 묶였다. 그를 일으켜 준 사람은 이낙연 국무총리다. 2014년 전남도지사 선거를 준비하던 이낙연 의원(담양·함평·영광·장성)이 자신의 지역구 출마를 권유했다. 2014년 보궐선거에서 금
배지를 달았다.
그는 지방자치와 분권에 대해 잘 아는 정치인이다.
30년 공직생활에서 중앙과 지방을 오가며 자치를 기획하고 경험했으며, 자치제도를 설계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에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일하며 새 정부의 ‘100대 실천정책과제’를 마련했고, 지난해에는 문재인 정부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위원장을 맡아 ‘100대 국정과제’를 마련했다.
호남이 정치적 소외와 경제적 낙후를 극복할 대안을 물었다. 그는 "지역 발언권과 관련한 문제"라며 "호남이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 유력 정치인을 만들어내야 한다. 호남인들의 그런 자각과 호남 정치인들의 권력의지가 함께 뒷받침 돼야 한다. 그런 의욕이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호남은 갈수록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람을 키워내는 ‘사람 중심의 정치’가 호남에서 하루빨리 뿌리내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산을 좋아한다. 특히 지리산을 좋아해 30번 정도 종주를 했다. 이유를 물으니 "주로 혼자서 간다. 산에 가면 나만의 사색의 공간이 펼쳐진다"고 했다. 정치하고서는 못 갔다. ‘산중사색집’을 펴냈고. ‘산중사색집2’ 원고를 써 놓았다. 하지만 고위공직자로서 책을 발간하는 일이 부담이 돼 펴내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롤 모델은 백범 김구 선생이다. 권모술수보다는 매사 정직하게 임하고 때가 아니면 접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좌우명은 ‘대공심 대공심’(大空心 大公心 ; 원불교 경산 종법사의 법문). 그는 "크게 대의를 생각하는 마음이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풀었다.
새해 호남 정가에서 예상되는 정계개편 움직임에 대해 이 의원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합치고자 하는 필요성을 갖고 있다. 호남이 한목소리를 낸다는 측면에서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며 "그러나 ‘과연 어떻게 되느냐’는 유권자의 의사, 지역민의 여론이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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