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제68호) 그는 최근 담양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17년 동안 광주와 담양을 오가며 창작생활을 하느라 지친 것이다. 체력적으로 지탱하기 어려워 광주시 서구 쌍촌동 생활을 아예 정리하고 담양 수북면 고성리 소재 집필실로 들어갔다. 지난해 10월초 들어갔으니 채 네달이 되지 않았다.
때마침 담양으로 들어간 지 이틀째 되던 날 첫 소설집 ‘공중 도시’ 이후 9년 만에 도서출판 청어에서 소설집 ‘아무도, 아무도 없이’까지 나와 창작적 운대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이 9년만의 출간 역시 담양 집필실이 없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에게 담양 창작실은 ‘소설가 김다경’을 올곧게 아로새기는 출발지이자 소설의 곳간과도 같은 공간으로 읽혔다. 그를 인터뷰하기 전 10여일 전에 ‘아무도, 아무도 없이’를 소개하던 터라 여러 소설적 삶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일었다.
지난 12월7일 북극한파가 갑작스레 휘몰아온 날 오후 하정웅미술관과 상록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를 향해 갔다. 가는 길에 어디 잠깐 들르는 바람에 15여분 정도 늦었다. 그는 간만에 그림 감상에 빠져 있었다. 하정웅미술관에서는 1950년대 일본 리얼리즘 미술의 중요작가로 평가받는 경남 진주 출생 재일작가 조양규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2018.10.16~2019.01.20)가 진행 중이었다. 도착하자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갔더니 낯익은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조양규의 작품들을 유심히 감상하고 있었다. 조양규 회화에 높은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의 얼굴은 밝았다. 전원생활에서 얻는 기쁨이 작지 않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광주와 담양의 두집 살림을 담양 한집으로 합치기 위해 최근 집필실 공간을 넓혔다. 청정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어린 나무를 대거 식재했다. 그런데 지난해 지독한 폭염과 가뭄으로 3분의2에 가까운 나무가 죽어버린데다 이 겨울 지나면 또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죽을 지 안타깝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청정공간은 2∼3년 후를 내다보고 시작한 일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장편소설 구상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출국(2018.12.18~2019.1.11) 전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담양으로의 이주는 하루 이틀전의 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구상됐던 일이다.
"제가 2015년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38일에 걸쳐 800㎞를 걸으면서 너무 행복했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순례길 걸을 당시 였을 거예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우리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냐’라는 인디오 추장의 말이 떠오릅니다. 개구리 울음을 들을 때마다 지금의 이곳에 안착해야 겠다 생각을 했죠."
그는 담양 집필실을 찾는 사람들이 힐링이나 치유를 하고 가기를 바란다. 그는 힐링이나 치유인데 (거창해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 쉬기’가 더 적합할 것이라고 들려준다.
집필실처럼 자신의 소설 역시 독자들이 읽고 난 뒤 치유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희망한다.
그는 창작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등 힐링을 위해 여행을 다녀오기를 선호하는 듯 싶다. 모차르트가 37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생의 3분의2를 여행에 썼던 것처럼 말이다. 모차르트는 대개 여행에서 창작적 영감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여행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한 통로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그는 꾸준하게 영감을 갈구한다. 그가 추구하는 여행이 이를 뒷받침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장편소설 구상을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들어서 다시 말레이시아로 한달 살이를 위해 떠났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사인회 도중 독자와 대화하고 있는 김다경씨

아울러 그는 ‘지금 사는 땅이 섬 같아 생각까지 갇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술회했다. 말레이시아는 이미 그의 소설 ‘그린 망고’에 배경지로 등장한다. 독자들이 관심을 둘만한 신선한 공간을 떠올리다보니 말레이시아를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장편을 쓰고 싶은 그냥 장편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안겨주고, 신선함을 안겨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웬만한 작가들은 ‘소설가 김다경’이라고 하는 존재를 알아보지만 1981∼1982년께 가톨릭문화센터에서 소설가 임철우 선생의 강의를 듣던 무렵만 해도 오늘날 자신이 이런 작가적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그는 교직에 재직하던 무렵 일상에 너무 지치다보니 새로운 출구를 찾았는데 그것은 유년시절부터 마음에 담고 있었던 문학의 복원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이 넘쳤다고 한다.
한번은 초등학교 때 학교가 끝난 줄 모르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퇴근하던 교장 선생님이 ‘누구냐’ 묻고난 뒤 다음날 전체조회 때 강단에서 소개를 했고, 그 일이 있은 뒤 도서관 열쇠는 그의 차지가 됐다. 이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도록 하기 위한 교장 선생님의 배려였다. 이처럼 그는 ‘문학소녀’ 그 자체였다. 중학교 때 장편소설 ‘살얼음을 걷는 소녀’를 읽고 나서 고등학교에 가면 이같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고 밝힌다. 꿈을 키운 매개가 된 셈이다.
늘 문학은 그의 삶 어딘가에 머물렀다. 결혼 전에는 신춘문예도 도전하고 했지만 결혼 후에는 직장과 가정 생활로 인해 문학을 거의 놓다시피했다. 혼자서 책만 읽으면서 괴로워하다가 가톨릭문화센터에 나가게 된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돼 시간은 다소 걸렸지만 1997년 광남일보가 공모했던 ‘광남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이 수상 이후 그에게 유의미한 문학적 일들이 진행된다. 28년 동안 재직했던 초등학교 교사를 사직하고 나온다.
그 뒤 대학원에 진학한다. 문학에 더 집중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늦게 터진 문학이 그에게 밝은 날들만 보장한 것은 아니다. 어두운 일도 함께 온다. 첫 번째 소설집 ‘공중도시’ 출간 이후 우측 손에 류머티스 관절염이 찾아온다. 고통이 너무 심해 글쓰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다섯 번 아프면 1년이 다 갈 정도로 한차례씩 찾아온 고통은 극심했다. 그렇게 해서 장편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5년의 시간을 흘러보냈다.
약을 계속 복용하면서 장편과 창직집을 마무리지어야만 했다. 한편으로는 아픔을 감내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창작을 위한 고투를 벌여온 것이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소설가로 평가받고 싶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볼 때 읽기 쉽고 재미있어야 하고, 치유를 포함한 감동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재미와 감동 속 따뜻함이 살아있는 작품을 집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끄럽지만 망망대해에서 등대불을 찾아가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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