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제68호) 내과의 변신은 무죄. 50년이 넘게 사람들의 아픈 몸을 치료하던 내과가 문화예술로 마음을 다독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광주 동구 대인시장 인근에 문을 연 ‘김냇과’가 그곳이다.
‘김냇과’의 전신은 1965년부터 1996년까지 진료를 했던 ‘김내과 의원’이다. 세월이 지나 병원이 문을 닫은 뒤 식당과 노래홀 등으로 바뀌어 영업하던 건물을 박헌택 ㈜영무토건 대표이사가 매입, 리모델링해 현재의 ‘김냇과’가 됐다.
카페와 아트샵을 비롯해 갤러리, 작은 도서관, 호텔 등으로 구성돼 운영 초기 미술 작품의 전시에 주력했던 김냇과가 운영의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공연, 인문학 강좌까지 선보이며 다양한 콘텐츠를 구축, 지역 예술가들은 물론 동네 주민들의 아지트로 자리매김했다.
‘김냇과’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동구선거관리위원회 건너편 골목에 들어서자 세월의 흔적이 깃든 건물들 사이, 3층 높이의 파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에 도착하니 병원을 알리는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일층에 들어서자 넓직한 공간의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벽면은 빈 곳 없이 미술작품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고, 한 켠에는 캘리그라피와 피규어 등 아트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커피 한 잔 하면서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기고 덤으로 예술작품을 맛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김냇과’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한 층당 330㎡(100평) 크기다. 기둥부터 벽돌, 바닥에 깔린 신주까지 원형을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했다. 이곳에서 만난 박헌택 대표이사는 먼저 대인동에 김냇과를 설립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문화에 관심이 많아 반세기 동안 유지돼 온 건물이 갖고 있는 역사성을 부각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던 찰나에 대인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인동은 구도심이다보니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고, 실버세대가 포진해있는 곳이죠. 구도심을 활성화시키는 차원에서 이곳에 터를 잡았어요. 철거하고 대규모로 신축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니까요."
㈜영무토건의 대표이사로서 오랜 세월 건물을 지어온데서 나온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옛 것을 보존하면서 새로움을 더한다는 의미로 ‘김내과’에서 사이시옷을 더해 ‘김냇과’라 이름을 붙였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옛 추억과 현재의 삶을 투영해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박헌택 대표는 지역 예술계와 인연이 많다. 아파트나 건물을 짓는 사업을 해온 그는 견본주택을 오픈할 때 모델하우스와 로비를 지역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미기도 하고 행사 개막 때 축하 화환 대신 현금을 기부받아 견본주택에 전시된 작품을 구입하거나 작가지원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대인예술시장을 거점으로 문화예술기획 활동을 펼쳐온 미테-우그로를 2002년부터 후원하다 메세나(Mecenat)의 하나로 김냇과를 꾸미게 됐다. 김냇과가 안정적 운영을 구가하면서 김냇과 수익금의 일부는 지역 예술가 후원이나 청년 취업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가 기업의 메세나에 대해 남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 박 대표는 김냇과의 지향점에 대해 언급했다.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지만 문화예술플랫폼이니 하는 말들은 어르신들이나 어린이들에게는 너무 어렵잖아요. 그래서 생각해 낸 명칭이 ‘광주의 문화공원’입니다. 공원은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죠.‘김냇과’는 이런 광주의 문화공원이 되길 바랍니다."
이런 그의 마음은 2층에 운영 중인 작은 도서관에서 톡톡히 드러난다. 김냇과가 문을 연 뒤 북카페처럼 운영하다 카페를 이용하지 않아도 누구나 언제든지 책을 볼 수 있도록 작은 도서관으로 등록해 운영 중이다.
작은 도서관에는 미테-우그로가 예술기획 프로젝트를 하면서 기증받았던 예술전문 도서 500여권을 비롯해 소설과 시집 등의 일반도서까지 총 1300여권이 한 쪽 서고를 채우고 있다.
또 2층에는 작은 도서관 외에 이우환부터 장샤오강까지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가득 걸려있었다. 이 밖에도 워크숍·신진 기획자들의 소통 공간·작은 소모임 등이 가능한 미팅룸이 구성돼 있다.
이 공간에서는 미테-우그로 문화기획 프로그램을 비롯해 음악공연과 인문강좌 등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도시락(樂) 콘서트’는 지난 2월 시작해 벌써 10회를 맞았다. 매월 다른 테마로 다채로운 공연을 선사하는 등 퇴근길 직장인들의 따뜻한 안식처가 된다는 평가다.
이어 3층은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이 머무르다 갈 수 있도록 ‘아트호텔’로 개조했다. 온돌방과 침대방이 각각 3곳으로 총 6개로 구성된 객실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화장대와 테이블 등 있을 건 모두 구비하고 있다. 근처 대인시장에서 직접 재료를 구입해와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각 실마다 조리공간도 마련됐다. 객실과 복도에는 광주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걸려 있다.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 광주천 등을 사진으로 포착한 김영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을 판화로 선보인 박구환, 구 도청 공사현장을 유화로 그린 박성완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객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외부인일 가능성이 높아 방과 복도에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광주를 찾는 방문객들이 예술작품을 통해 지역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는 전언이다. 이밖에 옥상에는 루프탑이 마련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김냇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미술전시와 공연, 인문학 강좌 등 장르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발굴하고 운영해왔다. 박 대표는 마지막으로 내년 계획에 대해 언급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문화를 통해 지역의 문화예술생태를 변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죠. 내년에는 공연 전시 강좌 등 각자 이뤄지는 문화행사들을 한데 모아 아트콘서트 형식으로 새롭고 실험적인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입니다. 대인시장과 궁동 예술의 거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문화가 깃든 곳과 인접해있는 만큼 함께 시너지효과를 내 다채로운 콘텐츠가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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