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제69호) 강단 있고 절제된 카리스마로 관객들을 단박에 휘어잡는다. 힘 있는 목소리와 특유의 애절함으로 어떤 대목이건 그의 목소리를 거치기만 하면 그야말로 절절함이 뚝뚝 흐른다. 눈대목에서는 화려한 기교와 탁 트인 고음으로 관객들에게 클라이막스를 선사한다. 그의 무대는 오랜 세월 한 길만 걸어온 ‘고집스러움’을 고스란히 전한다.
최근 소릿길 40년을 맞은 주소연 명창(名唱)의 이야기다. 지난 1월18일 오전 광주문화예술회관 국악당에서 주 명창을 만났다. 밝은 얼굴로 반갑게 맞아준 그는 시원스럽게 쪽진 머리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이기도 한 주 명창은 순천출신으로 11살 때 국악에 입문해 박정례 선생에게 가야금 산조와 가야금병창, 판소리 등을 배운 것을 시작으로 성창렬, 남해성, 한애순, 김영옥, 조상현, 전인삼 명창들로부터 ‘홍보가’와 ‘심청가’, ‘적벽가’ 등을 사사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예술고에 진학하기 위해 순천에서 혼자 광주를 찾은 주 명창은 광주예고를 졸업, 전남대에서 국악을 전공했다. 이후 현 광주시립창극단인 광주시립국극단 상임차석단원 등을 역임하고 그 뒤 목포대 교육대학원을 마쳤다.
‘1992남원춘향제 전국판소리경연대회’ 우수상을 비롯해 ‘1993광주전국판소리경연대회’ 최우수상, ‘1999 제1회 해남 전국판소리경연대회’ 대상, ‘2004 제12회 전국임방울국악제전’ 명창부 대상을 수상했다. 또 ‘2018 제8회 서암전통문화대상’ 전통소리부문 대상을 거머쥐면서 소리 인생의 정점에 다다랐다는 평이다.
온갖 대회에서 상을 휩쓴데다 판소리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사)한국판소리보존회 광주지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어 지역의 굵직한 무대에는 어김없이 오르는 그다. 그래서인지 지역에서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그의 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할 정도로 소리꾼으로는 정평이 나있다.
명창 주소연의 소릿길 40년을 기념하는 자리이자 ‘2018 서암전통문화대상’ 전통소리 부문에 선정된 주 명창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콘서트 ‘소리여! 소리여!’에 그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인 까닭도 이 때문일게다.
그는 인생을 돌아보는 기념공연을 언젠가는 해내겠다 생각했는데 열게 돼 다행이었다면서 엄청난 스타는 아니지만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국악인생을 함축해 보인 무대였다고 말했다.
주 명창은 처음부터 판소리를 한 것은 아니었다며 어떻게 국악의 길로 접어들게 됐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릴 때 언니나 오빠가 무언가 하면 따라하고 싶잖아요. 저도 그랬죠. 언니가 국민(초등)학교에 다닐 때 가야금을 시작했는데, 언니가 하니까 저도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언니가 가야금을 배우는 걸 지켜보고, 가야금을 몰래 한 번 만져보기도 하다가 결국 저도 시켜달라고 부모님을 졸랐어요."
그는 어릴 때 붓글씨를 배웠는데 엉덩이가 들썩들썩해 오래 앉아 있지를 못했다면서 흥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판소리가 적성에 잘 맞는다고 했다.
중학교 때 부터 주말마다 서울로 소리 공부를 하러 다녔고, 방학 때는 독공(獨功)을 하느라 어김없이 산을 찾았다는 전언이다.
소릿길로 발을 내딛기까지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친 적은 없었는지 묻자 반대보다도 곁에서 든든하게 바라봐줘 힘이 됐다고 말했다. 가야금으로 입문해 판소리를 하게 되기까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주 명창은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릴 적에 판소리 학원에 매일 다녔는데 학원에 갔다 오면 어머니가 그날 배운 것을 집에서 꼭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또 판소리를 하려면 담이 세야한다면서 매일 아침 죽도봉(竹島峰)에 올라 소리를 하도록 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명창의 반열에 오른 지금이 있기까지 이러한 무수한 과정이 바탕이 된 것처럼 보였다.
이어 그에게 언제부터 명창으로 불리게 됐는지, 명창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사회 통념상 대체로 대회에 나가 대통령상인 대상을 수상하면 명창이라고 부릅니다. 저도 그때쯤 명창이라 불리게 됐어요. 하지만 대회에서 큰 상을 받았다고 해서, 명창으로 불린다해서 진정한 명창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명창으로 불릴 때 명창의 자격이 있는가는 본인만 아는 것이죠. 저도 누군가 저를 명창이라고 부를 때 소리꾼으로서, 스승으로서 명창이라 불릴 만한 사람인가 항상 고민하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명창이란 존칭이 붙을만한 사람인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는 것이다. 그의 대답에서 소리꾼이자 명창으로서 평소 행실과 마음가짐을 가늠할 수 있었다.
주 명창은 제자들의 이야기를 꺼내자 촉촉해진 눈을 떨구며 ‘서로에게 특별한 믿음과 신뢰가 있는 관계’라면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쳐간 제자들도 많지만 그 중 현재 배우는 제자들이 20여명, 왕래하는 제자들은 50여명 정도라고 덧붙였다.
전공을 살리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제자들과 일반인들까지 합치면 100여명은 거뜬히 넘는다는 전언이다.
그는 판소리를 배우겠다고 찾아와도 인성이 갖춰지지 않거나, 잘못된 점을 고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그대로 돌려보낸다면서 소리꾼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으로 ‘인성’을 꼽았다.
"소리를 들으면 소리꾼이 어떤 성격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어요. ‘올바른 인성’에서 비로소 ‘좋은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먼저 사람이 돼라’고 때로는 엄하게 가르칩니다. 제자를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게 스승의 역할이고, 그래야 좋은 소리를 할 수 있으니까요."
소리에 인성이 자연스럽게 녹아나기에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마지막으로 주 명창은 스스로 특별한 의식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전제한 뒤 판소리 밖에 모르고 살았던 세월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후대를 위해 5·18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판소리를 내놓고 싶다는 바람을 들려줬다.
"제가 6학년 때 5·18이 일어났습니다. 크고 나서는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마음 속 깊은 곳에 ‘부채의식’, ‘책임감’ 같은 게 자리잡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은 판소리가 옛 것 그대로인 줄 알지만 전통예술이 그렇듯 판소리 역시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어요. 판소리의 저변확대와 더불어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5·18민주항쟁을 소재로 바탕소리를 기획해볼 계획입니다. 후대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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