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제69호) 그와의 인터뷰는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성사됐다. 아침 9시부터 쉴 틈 없이 보내다, 늦은 저녁이 돼서야 짬이 난 것이다. 고된 하루를 보낸 터라 지쳐 있을 법도 한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활기가 돈다.
누군가 억지로 시킨 것이라면, 아무래도 못할 일이다.
"내 삶이 춤이고, 춤이 나의 행복이고, 나의 삶의 에너지"라고 말하는 한국무용가 유라용(호남검무보존회 회장)씨의 이야기다.
유씨는 어렸을 때부터 늘 주목받던 아이였다. 7살 때 아버지가 재직하던 학교 졸업식 행사에 화동으로 섰다. 그때 그는 어렴풋하게나마 무대에 서는 기쁨을 맛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무용선생님들로부터 ‘러브콜’을 여러 차례 받았다. 어여쁜 외모에 남들보다 긴 팔다리 덕분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무용의 길로 들어섰다. 방학 때면 한 달 간 합숙하면서 춤 공부를 했다. 끼 많은 그의 몸짓에 가르침이 더해지자 곧 단 열매가 영글었다. 그는 초·중·고교 예능 꿈나무들이 경쟁하는 ‘학생예능경연대회’에서 꼭두각시 춤으로 무용부문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무용을 배운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이뤄낸 쾌거였다.
"워낙 어려서부터 춤이란 걸 접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 앞에 서고, 멋 내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예쁜 치마를 입고 빙그르르 돌고, 제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였던 것들이 기억나요.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고, 부모님의 열띤 의지로 춤을 시작하게 됐지만 무엇보다 춤을 출 때 정말 행복했어요. 춤 출 때만큼은 나에게 남다른 것이 배어나는 구나, 스스로 느끼곤 했죠."
동명여자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그는 무용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1학년 때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세계무용 콩쿠르에 나가서 ‘화관무’를 춰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금 평생의 연이 된 호남검무 또한 중학교 시절 처음 접했다.
"당시 광주국악원 입구 쪽에 호남검무의 계승자였던 한진옥 선생님의 무용실이 있었어요. 거기서 검무와 화관무를 배웠었죠. 그때는 한 선생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춤을 췄었죠."
그렇게 춤을 사랑했던 그이지만, 춤과 이별했던 시절도 있었다. 집안사정으로 춤 공부를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절망 않고 가야금병창이니, 사물놀이니 하는 전통 예술을 섭렵했다. 국악 장단을 알고 움직이는 유씨의 춤은 이때 이뤄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후, 소싯적 경험을 살려 무용 강습을 나가 춤을 추고 가르쳤지만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어요. 늘 뭔가 부족했죠. 생각해보니 무용을 전공하지 못해서였던 것 같아요. 그 길로 조대 송준영 교수를 찾아가 뒤늦게라도 무용 공부를 잇고 싶다고 털어놨죠. 그렇게 늦깎이로 조선대 한국무용과에서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들어간 학교에서, 그는 호남검무와 찐한 연을 맺게 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던 유씨의 눈에 우연히 들어온 책 하나가 있다. 바로 임순자 선생이 쓴 ‘호남검무’란 책이다. 지은이를 확인한 그는 곧장 광주시청을 통해 임 선생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당차게 전화를 걸어서 "중학교 때 호남검무를 잠깐 췄었는데, 순서를 다시 찾고 싶습니다"고 전한다. 이에 임 선생은 당장 아세아극장 앞에서 만나자고 청한다. 달려 나간 약속장소에는 임순자 선생이 맨발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잊혀져 가던 호남검무를, 전공생인 제가 관심을 보이니 너무나 반가우셨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선생님과 연을 맺었고, 2013년 작고하실 때 까지 함께 했죠. 우연히, 또 운명처럼 호남검무를 만난 겁니다. 한국무용 분야 중 하나로, 스쳐지나갈 뻔 한 검무가 제 춤판에 중심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죠."
스승과 함께 한진옥류 호남검무 계보를 이어왔다. 맥이 끊길 뻔했던 전통을 함께 완성시켜 나가면서 둘은 스승과 제자 그 이상의 끈끈함으로 뭉쳤다. 그러다 2013년 임순자 선생이 갑작스레 세상을 뜨면서 잠시 길을 잃기도 했던 그다.
"그러던 어느 날 이대휴(전 광주국악협회장) 선생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그때 각 학교에서 검무를 가르치고 있던 때였는데 선생님이 그러셔요. ‘가르치지만 말고, 검무보존단체를 만드는 게 어떻느냐’고요. 그 말을 듣는데 머리를 한 대 ‘탁’하고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나는 무용인으로서 왜 이런 생각을 못했나 자책했던 것이죠. 그렇게 2015년 (사)호남검무보존회를 창립하게 됐습니다."
호남검무보존회는 곡성에 터를 두고 있다. 광주가 아닌 곡성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다. 호남검무 원류지가 곡성 옥과인 것이다. 그는 검무가 난 자리에서 초·중·고교 그리고 대학까지 연계 교육을 구상했다. 호남검무가 오래 보존·계승되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 답이 나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유씨는 매일 바쁘다. 주말도 없이 일을 한다. 이유는 진정한 호남검무의 매력을 알리고 싶어서다. 색동 (사)호남검무보존회가 ‘호남검무 전승발전과 전망’을 주제로 연 학술세미나 옷을 입고 추는 탓에 ‘무당들이 추는 춤’이란 오해를 받는다. 그럴 때 마다 그는 ‘우리 것’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오히려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물어보고, 바로 알기위해 노력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그저 속단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제가 갈 곳이 너무 많은 이유예요. 우리의 것을 올바르게 알려주고픈 마음이에요. 저의 재능을 뽐내기 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검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그 가치를 알아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호남검무는 동작이 시원시원하고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활달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춤사위가 묘미다. 특히 허공을 가르는 번쩍이는 칼 놀이는 기백이 넘치면서도 화려해서 좌중을 압도한다. 유씨는 호남검무를 "온 몸으로 호흡하는 춤"이라 설명한다.
"내 전신의 춤이죠. 발끝부터 손가락 끝, 머리끝까지요. 호흡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온 몸이 하나 돼 함께 호흡할 때, 고운 선을 그릴 수 있어요."
유씨는 요즘 호남검무를 활용, 공연콘텐츠 만드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호남검무를 공연콘텐츠로 제작해 올리고픈 욕심이다. 문화전당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예술인들이 저마다의 전통문화를 선보이고 있지만, 정작 한국전통무용을 제대로 선보인 적이 없어 아쉽다는 그다. 호남에서 가장 호남다운 춤으로 광주 시민들은 물론, 세계인들과 호흡하고 싶은 것이다.
"호남검무는 호남의 흥은 물론, 농경문화의 일면을 담고 있는 호남의 춤입니다. 우리 전통의 멋, 고운 선, 기백 넘치는 검무의 매력을 각국에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죠.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잖아요. 전통을 오롯이 담고 있는 호남검무의 맥을 제대로 잇고, 또 선보이고 싶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제가 더 열심히 춤을 춰야 할 이유일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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