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제70호=고선주 기자) 시 ‘둥근 길’은 문귀숙씨의 ‘2016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당시 그는 심사위원인 김준태 시인으로부터 ‘시를 밀어올리는, 끌고 가는 힘(에너지) 그리고 시적 에너지가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시적 구조가 탄탄해 기억에 남아있던 작품이다. 그가 등단 3년만에 신춘문예 당선작 ‘둥근 길’을 표제로 한 첫 시집를 펴냈다고 해서 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근황을 들어보기 위해 2월15일 오후 그를 찾아갔다. 그의 직장은 오월영령이 잠든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다. 2011년부터 인턴, 기간제, 무기계약직을 거쳐 보훈처 공무직으로 재직중이다. 우연일지는 모르지만 그는 2009년 ‘5·18문학상’ 동화부문에 당선 이력이 있었다. 그래서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민주묘지에 근무한다는 것이 그리 낯설어 보이지는 않았다. 방문하던 날 그는 어린이 체험학습관에서 근무 중이었다.
그는 인터뷰 중 첫 시집에 5·18의 막중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폐가 될까 걱정이 돼 시집에는 단 한편의 관련시를 넣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의 말이 십분 이해갔다. 너무 잘 알면 그것을 손대기가 더 어려운 법 아닌가. 더욱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비춰보면 그의 말이 더더욱 납득됐다.
첫 시집 출간의 여운 뒤끝이었지만 그는 차분했다. 인터뷰 하는 내내 그는 차분히 자신의 시적 전개에 대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는 현재 올 봄 계간 ‘문학들’에 발표할 작품부터 들려줬다. 버려진 고양이에 관한 것과 편의점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버려진 고양이에 관한 것은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중 일부 사리사욕으로 키우는 사람들이나 장난감 취급하듯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비롯됐다. 버려진 고양이가 버려진 기억을 지우고 야생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주인의 기억까지 지워야 하는 고양이를 그리고 있다. 야생을 회복해 무사히 돌아갔으면 하는 시적 화자의 시각이 담겨있다. 또 편의점에 관한 시는 시급이 낮지만 그래도 그 자리를 계속 채워가는 알바생들이 살아가는 공간 편의점의 풍경을 형상화해 했다는 것이다.

둥근 길
허풍빌라에서 내린,
수백억 상속녀가 떨어뜨리고 간
셀 수 없는 동그라미의 말들
깔깔 거리다 휘청거리며 사라졌다
꽃뱀의 뱃속 같은 골목을 후진으로
나오는 오늘 일진은 구부러진 끗발이다
금요일을 발광하는 네온사인을 비켜선
흐린 그림자 하나, 번쩍 손을 들었다
뒷자리에 앉자마자 웅얼거리는 목소리
백미러로 읽어야 하는 목적지가
번져 읽을 수 없다
붉은 신호등 하나를 넘으며 자정의 경계를 넘었다
어떤 넋두리도 용납되는 할증의 시간
갈림길 마다 좌회전을 외치며 더 흐려진 그림자
젖은 넋두리에 수몰된 길을
재탐색하라고 내비가 얼굴을 붉힌다
붉은 기운이 부족한 사납금만큼 미터를 올리고
대낮처럼 환한 불면의 광장을 지나
늙은 벚꽃나무가 떨어뜨리는 흐린 시간을
지나 돌고 돌아도 이어지는 길
더 이상 택시로는 갈 수 없는 길
내비가 멈췄다
그림자의 손가락 끝에 만월이 걸렸다.

전국방송작가 팸 투어 시 국립 5·18민주묘지 안내 모습

이처럼 그는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며 시쓰기를 끌어간다. 휴무일이라고 해도 집에서의 시쓰기 집중이 어려운 만큼 인근 일곡도서관으로 가 하루 종일 그곳에서 독서를 하고 사색을 가다듬으면서 창작을 한다. 도서관은 그에게 시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게 하는 공간이자 유일하게 내면 으로 떠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주 5일 근무인데 주말 쉬면 평일 근무하고, 주말 근무하면 평일에 쉬죠. 도서관에 가는 것은 주로 평일 쉴 때예요. 쉬는 날 이틀 중 하루는 도서관에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하루 동안은 문학과 지낼 수 있어 너무 좋더군요."
앞서 언급했지만 운문 외에 산문과도 꽤 인연이 깊다. 동화를 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다 틈틈이 산문을 읽는 습관까지 가지고 있어 그의 독서는 굳이 운문에 갇혀 있지는 않아 보였다. 그는 시공부하다 지칠 때마다, 또는 시작품에 몰입한 뒤 잠시 소설로 여행을 떠난다. 그를 찾았던 날도 요즘 읽는 책으로 산문을 읽고 있다고 했다. 시집을 펴낸 뒤끝이라 새로운 문학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그만의 방식으로 이해됐다. 조선 최고의 여성시인 허난설헌의 일생을 기리고 있는 이진의 장편소설 ‘하늘 꽃 한 송이, 너는’을 읽고 있다고 소개했다.
문학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치열한 독서를 하겠다고 했던 시집 출간 이후 이뤄진 인터뷰에서 밝힌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 그의 첫 시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익히 출간소식을 전한 바 있지만 ‘문학들’ 시선 마흔아홉번째권으로 나온 그의 첫 시집에는 10여년전 창작했던 작품에서부터 근래 작업한 작품에 이르기까지를 망라해 54편의 시가 수록됐다. 소소한 일상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곳곳에 박혀져 있는 게 특징의 하나였다.
그 일상들은 시간을 통해 표현되어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의 등단작이 된 신춘문예 당선작에서도 ‘흐린 시간’이 나온다. 현시대 세상살이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읽혔다. 촉촉하게 감성에 젖은 삶이 아닌 매마른 문명의 그늘을 드리우는 시간, 그리고 인스턴트화되고 물욕화된 시간까지 아우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됐다.
시간에 대한 깊은 사유들이 농밀하게 드리우고 있는 이면에는 움직임이 작은 것들이 놓여져 있다. 이에 대해 움직임이 큰 표현보다는 움직임이 작은 표현들을 선호한다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제가 바라보는 시선은 소소하고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것들, 그리고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죠."
시인은 다시 ‘둥근 길’에 대해 설명했다. 둥근 길은 ‘만월’이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서 다다르는 곳이 둥근 길이고, 만월같은 세상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다음 펴낼 두번째 시집과 앞으로 어떤 시인으로 평가받고 싶은가라고 묻자 독서와 사투리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제 휴대전화 메인화면에 ‘반복 독서’가 새겨져 있는데 그만큼 책을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문학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치열한 독서를 할까 합니다. 이번 첫 시집으로 모든 것을 비워냈으니 독서를 통해 이를 완벽하게 채워넣고 나서 두번째 작품집을 펴내고 싶죠. 또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고향 진도에 관한 언어를 시로 되살려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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