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제71호=고선주 기자) 3월호에서는 지역을 연고로 활동하는 소설가들의 작품집을 소개했다. 4월호에서는 광주전남 시인들의 근래 출간된 시집을 살펴본다. 이들 시인은 시집에 대한 독자들의 외면으로 인한 가독율이 떨어지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시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자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다. 침체 속 다시 시(詩)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꿈꾼다. 최근 오미옥 김청미 염창권 고성만 시인 등이 잇따라 시집을 선보였다. 이들 시집을 집중 정리, 소개한다.
먼저 광주출생 오미옥 시인(순천작가회의 사무국장)이 첫 시집 ‘12월의 버스 정류장’(문학들 刊)을 펴냈다. 시집 뒷표지면(표4)에서 박두규 시인이 밝혔듯 시인은 소박하고 순정(純正)한 사람이다. 때로는 그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의 내면이 보이는 것처럼 그의 마음 씀씀이를 접해본 문단의 인사라면 시편들이 저마다 온기를 품고 있다는 점을 직감했을 터다. 그는 생명과 사물에 늘 따뜻한 눈길을 보낸다. 천성인 듯 싶었다. 집 밖만 나가면 분노할 일들이 널려있는 세상살이인데 그의 시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의 의지들이 넘친다.
그 포용의 의지는 사랑과 가족으로부터 기인한 듯 보인다. 이번 시집에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 대한 서사가 주를 이루지만, 그 시선이 가족에만 국한돼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이 넘실댄다. 그의 시적 언어들은 오감을 통과하는 순간 정감 어린 생명체에 꽂힌다.
‘상강 지난 개울가에’ 눈부신 ‘치맛빛’ 고마리 꽃은 ‘첫날밤도 못 치르고/집 앞 도랑에서/아버지 발아래 잘근잘근’(고마리) 밟히던 어머니와 일체를 이루고, 북두칠성도 그렇다. 시인은 ‘새벽하늘로 올라가신 내 어머니/별을 떠 주시던 국자 하늘가에 걸어 두고/오랜만에 당신이 낳은 아홉 자식들/평상 위에 모여 먹는 저녁 밥상을/가만히 내려다보시네’(북두칠성 어머니)라고 노래한다.
이처럼 그가 노래하는 모든 사물들은 상실과 아픔을 노래할 때에도 사랑의 감정이 포착된다. 아마도 그 근원에는 세상 만물이 모두 측은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대지의 신을 상징하는 모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시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끌어오고 그 아픔을 감싸 안고 있다. 이를테면 동시대의 고통과 감응하면서 그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치환하고 있다. 이는 그만의 독특한 서사 방식으로 풀이된다.
‘손돌바람이 부는 날/어쩌자고 때늦은 사과꽃은 피는가’로 시작하는 시 ‘소설’(小雪)에서 시인은 ‘첫아이 출산하고/백일 지나 덜컥 수태된 생명//죄의식도 없이/핏빛 생명 지우고/스무 해 넘게 살아왔는데//삭풍에 피어/끝끝내 도달하지 못할/내가 버린 생명 같은 꽃 피었다’고 일갈한다. 이 시는 그가 바라보는 생명에 대한 행간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시집은 4부로 구성, 소소한 일상과 물상을 차분한 어조로 형상화한 작품 60여편이 수록됐다.

이어 전남 해남 출생으로 약사 시인인 김청미씨가 삶에 대한 성찰과 가족 및 이웃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첫 시집 ‘청미 처방전’을 천년의시작 시인선으로 출간했다. 1998년 ‘사람의 깊이’에 ‘소생’ 등 5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이번 시집에 일상을 소재로 한 시편들을 수록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시집명칭이 새롭다. 시집 속 시인의 이름은 1998년 이후 21년만에 펴낸 시집에 대한 처방이기도 할 터다. 시집의 처방이 자신의 지난한 삶 여정을 담보하고 있어서다. 그는 오랜 세월의 굽이를 돌고 돌아 곡진한 언어들로 성찬을 차린 듯하다.
현재 충북 음성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시인의 삶은 작품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마치 그의 일상들은 파노라마 영상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의 시편들은 핍진성을 더하고 있다는 풀이다. 우선 작품들에는 멋스러움이나 감상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일상의 핍진한 서사를 바탕으로 삶과 시가 합일된 세계를 그려내려는 시인의 문학적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은 ‘주머니가 된 여자’를 비롯해 ‘아름다운 원망’, ‘기꺼이, 즐거이’, ‘통증 교환소’ 등 4부로 구성, 62편의 시편이 실렸다.
또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분주한 일상 틈틈이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남 보성 출생 염창권 시인이 시집 ‘마음의 음력’을 발견 시조 ‘선’ 시리즈 세번째권으로 내놓았다.
표제처럼 실제 마음의 음력이 있겠냐마는 다의적인 의미를 포석으로 명명했다고 보아진다. 오로지 자신의 공력으로 펴낸 시집이다. 작품은 물론이고 해설에 관한 것도 그 자신이 맡아 기술했다. 그의 시편들은 볕이 들지않는 내면의 침잠을 내포하고 있다. 양과 음이 조화된 삶 속 미처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네 삶의 온전한 구석이 되고 있는 시간들을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편들은 이런 기조를 근간으로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을 끄집어내고 있다. 시인의 촉각은 존재하는 것들에 모두 반응한다.
‘파산하고 싶은’(탐미적인) 또는 ‘흰 유령이 일어서’(극장에서의 환상) 쯤은 내면의 건너편에서는 흔하게 있는 일들이다. 이처럼 시편들에서는 양이 아닌, 음의 시간들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넘쳐난다. 이를테면 ‘그 짙은 마음의 음지는 물 그늘에 잠겼’(우물로 가는 계단)다고 하는 부문에서 잘 드러난다. 그래도 시적 화자는 ‘누군지도 모를 마음을 다 받아낸’다.
이번 시집은 4부로 구성, 50편의 작품이 실렸다.
이외에 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며 제자들을 키워냈던 전북 부안 출생 고성만 시인이 다섯번째 시집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고요아침 刊)를 발간했다.

시인은 일상 속 창작의욕이 매우 높은 시인 중 한명이다. 시원고들을 가방 안에 늘 넣고 다니며 들여다보고 지인들과 함께 나눌 정도다. 보통 시인들은 분주한 일상에다 시 수준이 트집잡힐까 걱정이 돼 들고 다니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인에게는 한낱 기우에 불과하다. 시인이 마음을 다해 쓴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또 제3자의 시각을 통해 자신의 작품 현주소를 진단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 더 시편들을 면밀하게 읽을 수 있는 여력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시집이 출간되기 전 필자는 그의 원고뭉치를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는 시를 꼭꼭 눌러쓴다는 인상이 들었다. 가볍게 쓰는 법이 없다.
이번 시집은 소리와 사이에의 간극을 예민한 시적 촉수로 살피고 있다. 여기다 소리 안팎의 간극들에 관한 탐구가 두드러진다. 시편 중 ‘사진 찍기 좋은 각도’, ‘목관악기’, ‘저녁 강물소리’, ‘붉은 연못’, ‘숲속의 색소폰’, ‘거리의 악사’, ‘이어폰’ , ‘가슴애피’ 등은 소리의 본질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소리로 소리를 막고 소리로 소리를 잇는’(이어폰) 일이 사는 일일진대 소리는 ‘세상떠난 아내를 돌아’(숲속의 색소폰)오게 하는 만큼 삶의 신호음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시적 화자가 소리 안팎에 주목한데는 ‘우울한 현재 어설픈 미래’(저무는 빛)가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앉아서 소리의 안팎 경계 어디쯤에 앉아 ‘길길이 날뛰는 발길’(이녘)을 잠시 주저앉히고 있는 듯하다.
이 시집은 4부로 구성, 60편의 시편이 실렸다.
이들 시인은 광주전남에서 창작은 물론이고 문단활동을 열심히 병행하는 작가들이다. 시집이라고 성과물을 선보인 만큼 앞으로의 창작적 여정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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