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제71호=고선주 기자) ‘흐느적이는 마른 억새 소리/바람 따라 부르고 부르다가/하루에도 몇 번 몸을 바꾼다/어둠이 서슬서슬 내린 둔치에서 들리는/농병아리 떼 부스럭이는 소리/물 위로 어룽대는 남평 다리 외등 불빛 위로 오고 가는 차 소리/어둠이 강을 가려도 흐르는 소리는 역력해/낮에는 듣지 못한 속말도 이때쯤이면/나지막하게 들리는 잠을 잊은 밤/외등 성큼 성큼 불빛을 들고/함께 겯고 흘러가는 물결이 있네’
위 시는 ‘밤, 남평대교를 바라보며’의 전문이다. 시 ‘어느 하루’와 함께 시인 자신이 인생작으로 뽑은 이 시의 화자는 드들강을 경계로 넘나들며 살아간다. 도심지에 거주하다 건강이 악화돼 옮겨간 곳이 그곳으로 광주의 끝자락인 신장동이다. 그야말로 강 하나 건너면 나주다. 광주와 나주를 오가면서 번잡한 일상을 다독이며 농심으로 돌아갔다가 매일 퇴근하는 작가가 있다. 그는 일명 ‘도시농부’ 시인으로 불리는 전남 장흥 출생 김황흠씨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근에서 약속이 있어 시내로 나와있다는 그를 지난 3월15일 문화전당 내 라이브러리파크에서 만나 삶과 문학이야기를 나눴다. 오랫동안 보아온 그는 몸이 불편해 말과 걸음걸이가 다소 어눌하지만 참 순수한 사람이다. 기교도 없다. 투박하지만 솔직담백하고 수수하며, 과장이 없다.
김 시인은 애초 컴퓨터 관련 회사에 재직하면서 번잡한 봉선동에 거주하다 난청 등 서른이 넘어 건강 악화 때문에 도심 속 귀농을 감행한다. 이때가 방송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기 전인 1997년 무렵이었다. 도시 농부로 산지 22년째를 맞은 셈이다. 그의 집은 광주에, 그가 매일 출근하는 일터는 나주에 있다. 드들강 하나를 건너면 그의 일터가 나온다. 논과 밭, 하우스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관리를 주로 하는 겨울철을 빼고는 대체적으로 오전에 농토로 출근했다가 오후에는 풀 작업을 한다. 하우스 관리 역시 일손이 많이 들어가 시쓸 틈이 없을 정도로 농사일은 만만치 않다는 전언이다.
그는 시에 대해 1990년 말 작가회의에 아카데미가 개설돼 그곳에서 처음으로 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인은 농촌에서 문학과 거리를 두고 살게 된다. 그러다 2003년 광주전남작가회의 다음카페를 만나고 난 뒤 김규성(글을 낳는 집 세설원 대표) 조진태 시인(5·18기념재단 상임이사) 등의 권유가 큰 몫을 했던 것은 물론이다. 시인은 한때 농촌에서 문학과 거리를 두고 살았지만 시집도, 시화집도 낸 입장에서 심신과 창작 모두에 플러스적이라고 말한다. 도시보다 스트레스가 작아 편안하게 대상을 바라보며 창작한다는 반응이다.
"일을 하는데 애환이 없을 수 없죠. 제 부모님들이 나이가 많아 마음 아릴 일이 적지 않아요. 이런 애환들을 그때그때마다 시로 창작합니다. 이를테면 하우스의 일을 하고 나서 시적 감성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때는 얼른 집으로 가 창작을 합니다."

'숫눈'과 '건너가는 시간'

그가 사는 곳에는 드들강이 자리하고 있다. 아무래도 날마다 보는 강이다보니 시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세권의 작품집을 펴냈다. 시집 2권과 시화집 1권이 그것이다. 두번째 시집 ‘건너가는 시간’과 시화집 ‘풍경과 시가 흐르는 드들강 편지’만 보더라도 그에게 드들강이 갖는 의미를 직감할 수 있었다. 즉 삶의 현장의 이야기를 시와 사진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유독 사진찍는 것을 좋아한다. 늘 밖으로 외출할 시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 이는 시인이 사진에 대해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대목이다. 시로, 사진으로 담아낸 시골은 쇠락해 있어 시인의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더더욱 고연령층 문제에다 빈집이 많이 늘고 있어서다. 그는 이런 풍경들을 시로 쓰면 독자들이 농촌에 더욱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술회한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시인은 시집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시집을 굉장히 많이 읽는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다른 시집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드들강 인근에 사는 만큼 드들강을 보면서 느낀 점 또한 숨기지 않았다. 시화집 ‘드들강 편지’에서 일터이자 자전거 도로이며 산책로이고, 행여 드들강에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밤 새워 지켜보는 순찰구역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생애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드들강에서의 시간을 언급하기도 했다.
"예전 처음 본 드들강과 4대강 사업 이후 본 드들강은 전혀 달라요. 그 다른 모습의 드들강에 대한 시화를 한게 시집 ‘건너가는 시간’이에요.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의미죠. 생태하천을 한답시고 강바닥을 긁어내는 등 공사 이후 파괴됐지만 지금은 많이 복원됐습니다. 이는 인간의 욕망이 파괴시켜버린 자연에의 복원과 화복을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사연이 있는 시편을 소개해달라 하자 시집 ‘건너가는 시간’에 수록된 ‘어느 하루’와 ‘밤, 남평대교를 바라보며’를 언급했다. 이 시편들을 꼽은 이유를 물었다.
"시 ‘어느 하루’가 어머니에 관한 작품인데 자식이 아무리 열심히 효도를 해도 어머니 마음에 가닿지 못하죠. 이런 점 때문에 저는 이 시가 제일 좋아요. 또 시 ‘남평 다리를 바라보며’는 저녁에 가로등을 켜놓으면 물살의 움직임이 보이는데 그게 마치 수많은 촛불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는 시와 사진에 이어 또 하나의 도전을 해볼 요량이다. 그것은 동시집을 펴내는 일이다. 그의 농토에서 파릇파릇 싹이 돋아오르듯 그의 문학의 씨앗도 돋아오르는 중이다.
"기회가 되면 앞선 시집에서 누락된 작품들이 많은데 그게 모두 동시풍이어서 동시집을 내고 싶은 희망이 있어요. 향후 땅(흙)으로 표상되는 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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