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제71호=박세라 객원 기자) 그는 아주 친절한 성악가다. 쭉 쭉 뻗어나가는 시원한 창법으로 고음역대를 노래하나, 그의 시선만은 늘 무대 아래쪽을 향한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오 솔레미오’이지만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이문세 ‘붉은노을’,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등 귀에 익숙한 노래들도 셋업리스트에 꼭 챙겨 넣는다. 친숙한 노래들이 성악 발성을 타고 흐르면 관객들의 반응이 확 달라진다. 생소함에서 오는 흥미로움, 낯섦에서 느껴지는 반가움이 무대를 채운다. 대중에게 더 가깝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은 그의 진심이다. 팝페라 가수이자 테너로 활동하고 있는 박현씨 이야기다.
박씨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곧 잘하는 소년이었다. 어머니가 미용실을 하셨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모이면 꼭 그의 작은 무대가 만들어졌다. 동요부터 가요·트로트까지 작은 소년의 뱃심에서 나오는 노랫소리는 여간 짱짱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노래에 흥미를 붙인 박씨는 교회에서 학생부 단원으로 참여해 실력을 키웠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성악에 관심을 갖게 된 날을 그는 똑똑히 기억했다. 박씨는 당시를 "신대륙을 발견한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매일 지나는 등하굣길. 확, 하고 그의 발길을 붙든 것은 학교 앞 작은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였다. 곡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오 솔레미오’. 묵직하면서도 맑고, 높은 음역에서도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깨끗한 음색은 그의 귀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대중가요에 익숙했던 그에게 파바로티의 음성은 ‘판타지’를 경험한 것과 같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음악이 일상에 줄 수 있는 에너지랄까요. 힘을 알아챘던 것 같아요. 우연처럼 들려 온 파바로티의 음성은 ‘아 노래가 이럴 수도 있구나’하는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중학교 때 음악시간에 교과서에서 접했던 파바로티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죠. 그때부터 매일 레코드 가게를 드나들면서 노래를 듣고, 관심 가는 것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죠."
그렇게 디딘 음악의 길에서, 먼저 들게 된 것은 마이크가 아니라 지휘봉이었다. 16년여 간 기독교 합창단 지휘를 맡았고, 실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대한불교조계종, 증심사·향림사 합창단과도 호흡을 맞추었다. 관객에게 등 돌아, 단원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노래하고 싶다"는 욕구가 팡팡 솟았다.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싶었어요. 솔리스트로서 욕심이 있었죠. 그러나 기존 정통 성악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성악도 그 모습 그대로 너무나 매력적인 음악이지만, 남녀노소 관객들이 즐기기는 어렵고, 생소한 음악이죠. 모두가 제 ‘음악’으로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고, 제가 내린 답은 팝페라였습니다."
팝페라는 팝(Pop)과 오페라(Opera)를 합친 말로, 말 그대로 오페라를 팝처럼 부르거나 팝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음악스타일을 말한다. 쉽게 말해 대중화한 오페라다. 그 중에서도 박씨는 오페라를 넘어 대중가요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친숙한 가요들을 클래식화해서 부르는 방식이다.
"조용남이나 김광석, 이승철씨 등 팬층이 두터운 가수들의 노래를 성악 발성으로 부르는 겁니다. 다른 방식으로 노래하다보면, 원곡이 재해석 될 뿐만 아니라 악기의 구성도 달라지기 때문에 새롭고 품격 있는 곡들을 들려드릴 수 있죠."
무엇보다 큰 강점은 관객 호응도다. 연주자들은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공연의 성패를 가르기도 하는데, ‘아는 노래’가 나왔을 땐 관객의 분위기부터 달라진다 한다.
"사실 정통 클래식을 선보였을 때는 관객과의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음악이 생소하기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이해를 돕기 위한 곡 해설도 낯선 용어들인 것은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평상시에 한번쯤 들어본 노래들을 편곡하거나 저만의 스타일로 바꿔 부르면 객석의 기운이 달라진 달까요. ‘성악이 이런 매력이 있구나’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는 팝페라 그룹 ‘빅맨싱어즈’에서 활동하다가, 2년 여전 혼성그룹 ‘뮤탑보이스’를 새롭게 꾸렸다. 박씨가 이끄는 예술단은 크로스오버에 강하다. 팝페라란 장르 자체의 힘이기도 하지만, 그는 전통·퓨전 국악에서부터 현악4중주, 힙합 댄스 팀까지. 다양한 팀과의 협업무대를 보여준다. 관객에게 풍성한 밥상을 차려드리고 픈 박씨의 예술 철학을 읽을 수 있다.
"늘 눈을 낮추려고 노력해요. 관객의 시선과 닿을 수 있도록요. 그럴 듯한 콘서트홀이나 공연장이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노래합니다. 오히려 일반 행사장이나 마당과 같은 곳에서 관객과 만나는 일이 설레어요. 앞으로는 특히 클래식 공연을 접하기 어려운 이웃들이나 도서 지역 등 문화소외계층을 만나러 다닐 생각이에요."
언제 어디서든 최고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테너 박씨에게 목 관리는 필수다. 목은 몸의 컨디션은 물론이고, 그날의 온도, 날씨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 평소 목 관리의 비법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충분한 수면과 수분"이라 일러준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정 전에는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해요. 다음날 목 컨디션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또 목에서 수분을 빼앗아가는 음식들 이를테면 술이나 청량음료, 커피는 즐겨하지 않죠. 노래할 때를 제외하고는 고함을 지르거나 음성을 높이는 일은 거의 없어요. 제 목의 에너지는 그날, 그 시간, 그 무대에서 쏟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그가 공을 들이고 있는 작업이 있다. 바로 동화 명작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뮤지컬화 하는 일이다. 그림 동화이지만 인생의 철학을 담고 있는 ‘어린왕자’ 스토리를 어떻게 재미나게 풀어갈 지가 관건이다. 현재 연극대본은 나와 있고, 본격적인 곡 작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어린왕자를 테마로 한 뮤지컬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최초의 시도가 될 것이죠. 어른동화라고 하는 ‘어린왕자’를 남녀노소가 모두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콘텐츠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매해 보성 대원사에서는 어린왕자를 주제로 한 테마전을 열었었는데, 그곳에 조형물이나 전시 소품들이 남아있어요. 보성군과 협의를 통해 협업 프로젝트로 끌고 가고 싶은 생각이에요. 내년이면 무대를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래하는 팝페라 테너로서의 꿈도 남아있다. 바로 자신 만의 18번, 즉 대표곡을 만드는 것이다.
"바리톤 김동규씨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나 이동원·박인수씨의 ‘향수’처럼, 팝페라 테너 박현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대표곡 하나를 가지고 싶어요. 많은 노래하는 이들의 꿈 일테죠. 올해 좋은 곡을 만들어서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연을 꾸며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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