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제71호=고선주 기자)그는 아무래도 주종목을 잘못 택한듯 싶다. 보존과 계승,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만만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40여년에 걸쳐 한눈 팔지 않고 외길을 걸어 왔지만 사회적 관심은 낮기만 하다. 오랜 역사에 비해 현시대 너무도 터부시하는 풍경은 안타깝기만 하다. 유구한 역사를 시민대중 사회에서 함께 해왔지만 다분히 기능적 차원에서만 언급되는 경우가 허다해 그의 속을 태운다. 이는 두식연구에 몰두하며 보존과 계승에 힘을 써온 두식(頭飾)연구가 이순 한국미용박물관 관장의 고뇌어린 이야기다.
이 관장은 속된 말로 ‘머리에 미친 사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머리카락에 미친 사람’이다. 그의 삶은 온통 머리카락에 관한 것들뿐이다. 아침을 눈을 떠 잠 들때까지 머리카락에 관한 생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런 그를 만나기 위해 올해 개관 12주년째 접어든 광주 북구 중흥동 소재 한국미용박물관을 찾았다. 한국미용박물관은 전국 유일의 공간이다. 광주에는 전국 유일의 공간이 몇 안된다. 그중 한국미용박물관도 해당된다. 광주문화의 내외연을 알리는데 더없이 좋은 기능을 하고 있다 하겠다. 이 관장이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으면서 개관이 가능했다는 것은 미용계쪽에서 모두 인지하는 내용이다.
몇차례 미용박물관을 방문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1, 2층만을 둘러보고 돌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운좋게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았던 2월8일 오후 모두 둘러볼 수 있었다. 늘 마음에 걸렸었는데 숙제 하나를 해결한 듯해 홀가분했다. 전시장에서 일반 회화 작품은 많이 접했지만 두식 관련 작품들을 이렇게 많이 관람한 적 없었다. 호기어리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작품을 훑어보고 4층 그가 두식을 연구하고 차를 나누며 손님을 맞는 공간으로 올라갔다. 그가 때마침 운영위원인 김재기 교수(전남대 정치외교학과)와 대담 중이었다. 서둘러 대담 자리를 마치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로부터 미용인으로서의 삶을 두루 두루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집안은 머리를 만지는 솜씨가 출중했다. 할머니대부터 일명 머리엄마 혹은 머리어멈이라고 불리었던 ‘수모’를 도맡았다고 한다. 할머니가 마을의 대소사때 얼굴을 단장하고 옷을 화려하게 차려 입게 하는 응장성식(凝粧盛飾)의 역할을 한 셈이다. 그 솜씨가 어머니를 거쳐 이 관장에게까지 고스란히 대물림됐다.
그는 전남 순천여고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으로 인해 서울로 상경, 미용에 입문한다. 일찌기 남자 헤어디자이너가 드물던 시대 그의 오빠가 서울에서 미용실을 운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오빠보다 3년 뒤인 1980년에 상경해 미용과 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는 애초 역사학에 관심이 많았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다 1987년 잠시 오빠의 부재로 광주에 운영 중이던 오빠의 미용실을 책임질 사람이 없어 부친께서 이 관장에게 요청하자 광주로 내려오게 된다. 그는 그 이후 줄곧 광주에 머물며 미용 발전에 집중해왔다.
그는 서울에 머물던 무렵 장안평 골동품 거리를 자주 찾아갔다. 미용골동품들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때 수집한 것들은 미용박물관의 아카이브 구성을 짜임새있게 할 수 있었던 자신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없다. 그뿐이 아니다. 그가 수집했기 때문에 그 귀중한 미용관련 골동품들이 온전하게 보존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29년 영친왕 부인인 이방자 여사(영왕비 여사)의 왕비관 1점이 남아 있었으나 많이 훼손돼 있던 것을 2002년 일일이 실측해 완벽하게 복원한 것도 그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단오날 ‘월자장’ 공개행사 시연

그가 관장을 맡아 운영 중인 한국미용박물관은 자신의 서른셋, 넷 쯤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 보면 그가 뼛쏙까지 미용인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사실 그가 박물관을 개관하고 운영하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대수머리라고 하는 대수관(大首冠) 때문이었다. 복식연구자는 많으나 두식연구자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미용 관련 용어도 상당 부문 그의 손을 거쳤다. 대례 때 왕은 면류관을, 왕비는 대수관을 착용한다. 국혼 때 썼던 왕비관으로 이해하면 된다. 머리카락으로 만든 황후 머리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이 대수관이 등장하게 된 사연을 그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임진왜란 후 경복궁이 전소되면서 중국은 황비가 주취구적관(珠翠九翟冠)을 썼고, 조선은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을 쓰게 해 사대의 예를 강요했다. 임진왜란으로 관이 불타 소실되면서 선조가 대수관을 만들게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대수관마저 소실돼 버렸다고 한다. 이방자 여사가 썼던 대수관이 국립고궁박물관에 훼손된 채 유일하게 현존하던 것을 이 관장이 복원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를 주제로 공부에 진력해 석사학위로 제출하기도 했다.
대수관을 만든 사람을 조선시대 때 월자장(가체장)이라 불렀고, 이들은 거두미와 어유미 등까지 만들었다고 하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미용박물관에는 월자장이 19세기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에 모두 나오고 있다는 전시물이 부착돼 있어 월자장에 대한 이해를 꾀할 수 있다. 천민들이 쓰던 공방 용어들이 학자들에 의해 한문과 한글로 새겨졌으나 공방용어가 없는 것들 또한 많아 누락된 용어들의 정립이 시급하다는 점도 내비쳤다. 여기다 가체가 중인들이 사는 기와집 10채 값보다 더 비싼데다 사람머리보다 무겁다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해 영·정조때 가체금지령까지 발동됐고 그 대안으로 족두리이나 화관 등이 활용됐다. 그러나 이것들이 가체보다 더 비싸지자 두차례에 걸쳐 가체금지령을 발동됐다는 역사 배경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처럼 그는 머리와 관련해 다양한 방면에서 두식연구에 주력해왔다. 그에게도 그동안의 보람을 밝혀달라 부탁했다.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것에 눈을 뜨게 됐고, 전통미용에 대한 것을 실질적으로 현대미용에 다 응용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인들의 헤어스타일이 다양한데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이 무엇인가를 따져 아름다운 것의 뿌리를 널리 알리고 그것으로 여러 사람들을 변화시켜 일상을 활기차게 해준다는 것이 보람이죠."
이렇게 늘 보람만 있을 것 같은 그에게도 미용 관련 가슴 아픈 일들은 의외로 많다. 일본의 두식문화가 마치 우리 것처럼 변용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1895년 11월17일 일제의 단발령에 의해 고종의 상투마저 잘리는 등 우리의 스타일이 모두 잘려버린데다 일본의 두식문화가 정착돼 버렸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단발령으로 당시 1000여명이 자결한 것 역시 우리의 두식문화가 얼마만큼 중요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일제와 6·25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머리가 현대화됐는데 내막인즉 우리의 전통이 왜곡되고 말살됐다는 것과 궤를 함께 한다.
더욱이 복식에 비해 더디기만 한 두식의 현시대 인식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지적했다.
"복식고증전 같은 데 가보면 머리 없는 마네킹이 많습니다. 더 늦기 전에 복식연구자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했으면 해요. 복식은 계승과 연구성취가 높지만 두식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생각이에요."
우리의 찬연한 두식문화가 K뷰티로 연결됐다고 하는 것도 언급했다.
"옛날 머리형태가 사극이나 축제 등에 많아 나왔어요. 그러나 제대로 복원해 시연되지 못해 마음이 아프죠. 복원이나 재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지만 올바르게 고증하고 보존하려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통머리의 원형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그는 옛날에는 60년 이상의 머리카락이 많았으며 판매되기도 했을 뿐 아니라 신라 때는 머리카락 질이 좋아 수출까지 됐다는 설명이다. 요즘은 대개 인조사로 재현해 안타까운 반응도 숨기지 않았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물었다.
"현재 미용박물관이 좁아 교육과 체험 등을 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지금보다 넓은 공간에서 구현하고 싶습니다. ‘한국전통복합멀티적인 공간’ 말이죠. 이 공간에서는 한민족의 머리를 모두 체험하고 뷰티는 물론이고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을 한데 아우르는 의미인 ‘뷰티 웰니스’(beauty wellness) 공간을 구축하는 게 제 꿈입니다. 아울러 두식관련 문화재와 관련, 두식종목이 지정돼 제대로 계승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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