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제74호=이성오 기자)"아내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7월17일 국회의원실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의원(61, 영암·무안·신안)은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1990년 국회에서 4급 보좌관 생활을 하다 1994년에 그만두고 나올 때만 해도 그는 굳이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보좌관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평탄하고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고 딸을 얻고 나서부터 그는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보좌관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일이 아니었고, 의원의 4년 임기와 진퇴를 함께하는 한시적 직장이었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내고 여의도 생활을 접었다.
광주에 먼저 내려와 정착한 아내와 합류했다. 그리곤 하루가 멀다하고 무등산에 올라 앞날을 구상하며 심신을 추스렸다.
당장에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았고, 교사인 아내가 아파트 대출금에, 아이 학비에 생활비까지 감당하다 못해 결혼폐물을 팔아가며 버티는 중이었다. 더 이상 경제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 광주의 한 중견회사에 입사해 1년 정도 근무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는 중국 진출사업의 성공을 위해 그에게 중국 근무를 권유했다. 그는 숱한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결심을 밝혔고, 지지를 얻었다. 그의 나이 38살이었다.
그로부터 그는 도의원 2번, 군수 3번을 연임했고, 마침내 지난해 국회의원까지 됐다.
돌이켜보면 열정 하나로 도전한 험로의 연속이었다. 첫 도의원 선거는 물론이고, 2002년 군수 선거에 나설 때도 주변에서 무모한 도전이라며 말릴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맨손으로 당내 경선에 뛰어들어 막강한 조직과 높은 인지도의 현역 도의원, 현역 군수를 물리쳤다. 상대 측에서는 ‘이변’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로서는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민심을 얻은 것이다. 보좌관 생활을 하며 지역과 소통했던 지난 5년이 허투루 보낸 것이 아니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늘 승승장구가 아니었다. 지난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경선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지난 2015년 8월 아내는 돌연 교직을 그만뒀다.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는 그를 위해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이다. 이런 아내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는 20대 총선 본선에서 국민의당 바람에 밀려 지고 말았다. 아내는 그에게 ‘처음으로 마음이 우러나와서 치른 선거다. 내가 원해서 했기에 비록 졌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선출직을 하다보니 아내는 물론 부모형제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 남의 말잔치에 안줏거리가 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아버님은 2002년 그의 첫 무안군수 취임식에 그런 연유로 오지 않으셨다. "고을의 어른은 한 사람 뿐이다"며 나타나지 않았고, 돌아가시기 전에는 조의금을 받지말라고 유언 하셨다. 그의 아내는 그가 군수로 재직했던 10년 동안 한 번도 군수실을 찾지 않았다.
서 의원은 "친인척에게 미안하다"며 "선거 때마다 다들 도와줬지만 민원을 들어줄 수가 없어서 더러는 1~2년 동안 말도 안하고 살 정도로 소원해지기도 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도 사람인지라 그 도움의 빚을 갚아주고 싶지만 불법이나 탈법은 할 수 없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는 무려 6차례에 걸친 무안반도(목포시·무안군·신안군) 통합 추진과 관련, 언제나 주민의 의견을 대변해 왔다.
도의원으로서, 군수로서 통합을 반대하는 무안군민의 입장을 앞장서 지켜냈다. 실세 국회의원과 선배 정치인들의 겁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소신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안군을 없애자는 데 맞서 없애지 말자고 한 유일한 정치인이다.
서 의원은 "행정구역 개편 같은 주민과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있는 정책들은 주민들 의사에 맡겨줘야 한다. 선택권을 주민에게 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게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는 "무안반도 통합은 주민이 불편하니까 해주라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실패했고, 나는 그래서 반대했다. 중앙정부는 경제논리이고, 지방은 숫자논리다. 통합이 되면 인구수가 많은 지역에서 대표가 뽑힐 것이고, 다수의 논리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면 소수의 주장은 묻히게 된다. 그런데 누가 목포시청을 무안군으로, 누가 목포역을 일로역으로 이전을 보장하겠느냐"고 했다.
이어 "통합만 해주면 다 해주겠다고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그걸 믿겠느냐. 그래서 마진창(통합 창원시, 경남 마산·진해·창원)이 지금도 삐걱거리는 것이다. 숙성되지 않은 정책에 드라이브 걸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광주군공항 이전도 마찬가지다.
서 의원은 "주무부처인 국방부가 용역하고 마스터플랜을 짜고 주민들에게 홍보해야 한다"며 "광주광역시가 나서니까 안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광주 민간공항을 무안공항으로 이전하는 것도 애초 약속과는 달리 정부와 광주시의 방침이 바뀌면서 무안 군민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광주시가 반대해서 안 옮길 이유도 없었고, 그런 사안도 아니었다. 국방부가 군민의 상처에 덧칠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광주시가 송곳을 뾰족한 끝부터 꼽는 것이 아니라 무딘 중간 자루부터 꼽는 격이기에 아무 것도 안되는 것"이라며 "첨예한 정책일수록 책임있는 기관이 책임있는 근거를 가지고 책임있게 추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에 대한 그의 생각은 간결하고 명쾌하다.
서 의원은 "남들보다 인맥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내세울 만한 스펙도, 전문가적인 기술도, 자본과 학력도 나은 게 없다. 다만 잘할 수 있는 건 내 양심이다. 양심은 가둬놓으면 아무도 알 수 없고, 볼 수 없다. 그걸 보여주는 게 선출직이다"고 밝혔다.
이런 양심에 관한 언급은 정약용의 ‘공렴’(公廉)사상과 연결돼 있다. 공직자인 목민관의 공정하고 청렴한 자세를 강조한 것으로, 이는 목민심서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그런 그가 대학졸업 후 박석무 전 의원과 인연을 맺어 선거를 돕게 되고, 국회 보좌관 생활을 경험하게 된 것은 우연 아닌 우연이다. 다산연구소 이사장인 박 전 의원은 다산에 관한 심도깊은 연구로 책을 펴내기도 한 국내에서 손꼽히는 다산 전문가다.
가훈은 ‘신뢰받는 사람이 되자’이다. 늘 신뢰받는 사람이 되려면 항상 남에게 희생하고 베풀어야 하며 자신의 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늘 자신에게 철저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어찌보면 그가 선출직으로 롱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의 양심을 걸고 신뢰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삶이랄까. 그는 "정치인에게 청렴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자신이 유권자들로부터 신뢰받는 것은 더 중요하다"고 강변한다.
그는 늘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 무슨 일이 발생하면 지체없이 현장으로 달려간다. 사재아재(事在我在). ‘일이 있는 곳에 내가 있다’고 그 스스로 정한 좌우명이다. 그는 "현장에 가서 하나를 얻으려 하면 백을 얻게 된다"며 "거기서 듣는 욕은 정치인으로서 기본이다. 정치인은 늘 욕먹는 직업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58년 개띠, 대표적인 베이비붐 세대다. 무안 현경면에서 3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지지리도 가난했고, 유년시절 불의의 사고로 학업이 남들보다 뒤처졌으며, 고교를 세 곳이나 바꿔다닌 우여곡절은 그를 비바람 속에 잘 여 문벼처럼 단단하고 알차게 했다. 서민의 삶을 이해하고, 어려운 약자들을 배려하며, 자신을 늘 상대보다 낮추는 겸양은 그를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든 손꼽는 그만의 최고 스펙이다.
국회의원으로서 1호 공약은 지역구 내 단체장들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다. 그가 단체장을 10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대다수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홀대(忽待)다. 단체장이 부처를 방문해도 사무관부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 좀처럼 일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국회의원에게는 다르다.
그래서 그는 비록 국회의원이 독립된 헌법기관이지만 행정중개소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했다. 지역구내 단체장들이 정부 부처 방문하려는데 시간을 내달라고 하면 기꺼이 함께한다. 그는 "그게 바로 내가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요즘 그의 머릿속은 온통 양파, 마늘, 소금 가격 폭락에 대한 대책 마련으로 가득 차 있다. 농어촌 복지를 어떻게 증진시킬 건지도 고민거리다. 게다가 늘 불편한 섬으로 오가는 길을 어떻게 편리하면서 값싸게 할 것인가도….
그는 기회가 나는 대로 농가들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며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 원내부대표인 그는 당 정책회의에서 세 번의 발언 기회를 모두 이런 얘기로 채웠다.
그랬더니 일부 의원이 "왜 농업 얘기만 하느냐"고 했다.
그는 그 의원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얘기를 하라고 지역 주민들이 날 뽑은 겁니다"라고. 그는 대안이 나올 때까지 메시지를 계속해서 낼 생각이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이런 데도 지역에 가면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아내에게 의심 받는다. "철저하게 못하고 대충 넘기는 것 아니냐"고. 남의 속도 모르고….
그는 한편으로 갈수록 인구가 줄어들어 지역 소멸로 이어지는 걸 예방할 농촌 회생 대책을 찾고 있다. 해결 방향은 농촌을 아기 낳기 좋은 환경, 먹고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농업기반 사회인 시골에서 행정과 협동조합의 협치를 대안으로 구상 중이다.
행정기관과 함께 각 행정단위마다 들어선 것이 농업·축산업·수산업·임업 협동조합이다. 그런데 하는 일이 겹치는 게 많다. 군민이 조합원이고, 조합원이 군민이다. 행정과 복지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누리려면 협동조합과 군이 아주 긴밀한 협치를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고, 예산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구상을 토대로 밑그림을 그리고,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큰 그림을 그려내고 싶다"고 언급한다.
기업도시를 추진했던 이유를 물으니 "한국농업의 현주소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다"고 답한다. "어느 누구도 농업·농촌 문제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피해만 가려한다. 정부는 세계시장 개방으로 농업에 피해가 닥칠 게 분명한 데도 가리려고만 한다"고.
해법을 찾는 중에 ‘먹고 사는 방법을 바꾸는 것’임을 알게 됐다. 1차 산업으로 국한돼 있는 주민 생업의 패턴을 다양화해야 한다. 요즘 말로 고치면 농업기반 사회가 산업화 사회와 어우러져 4, 5차 융복합을 이뤄내는 일이다. 그래서 제조업, 서비스업을 가져올 기업도시를 유치하는 사업에 뛰어들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정부로부터 지정을 받았다.
온 열정을 다 바쳤지만 성사 직전에 닥친 세계금융위기의 여파와 정부의 무관심으로 실패한 것이다. 물론 자신의 불비도 있다.
하지만 그는 실패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 실패를 반면교사 삼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 의원은 오는 9일 충북 영동의 ‘향부숙’에서 지자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단체장의 실패와 공무원의 성공?’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다. 지난해 11월 같은 주제의 강연은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하긴 그보다 더 생생하고 진실하게 실패의 교훈을 전달해 줄 강사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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