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제76호=글·고선주 기자)광주시립미술관 초대전에서 만난 그는 강렬한 인상 그 자체였다. 2014년 10월 그의 전시가 열릴 당시 상록전시관(현 하정웅미술관) 1층 전시공간에 설치된 작품 ‘무제’ 때문이었다. 담양에서 채취한 길이 3m가 넘는 대나무 300개에 먹으로 채색된 한지로 감싸 입체적인 형상으로 설치된 이 작품에서 만물의 응축된 에너지의 표출을 느껴서다.
처음 그를 보는 사람들은 머리카락 없는 모습과 선한 인상으로 인해 예술가라기보다는 인심좋은 옆집 아저씨같은 느낌을 받기 마련이지만 작품들은 전혀 다른 이미지를 안겨준다.
서예로부터 출발해 기본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수묵과 거기에 다양한 소재 및 사유들이 얹혀지면서 그만의 독창적 예술세계가 구축된 셈이다. 이때의 초대전보다 훨씬 이전에 그를 알고 지내왔지만 그는 꾸준한 활동과 노력을 펼쳐가는 예술가다. 이런 그가 독일 미술시장에 진출한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수묵 작품을 선보여온 정광희 작가의 이야기다.
앞서 언급했듯 그에게서 서예를 논할 수 밖에 없는 이면에는 성장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부친으로부터 천자문을 배우면서 서예를 접했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부터 부친 앞에서 천자문을 배우며 붓을 잡았습니다. 그러다가 서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스무살 때부터죠. 저는 미술입문을 서예로 시작했어요."
이런 인연으로 미술에 입문한 그는 서예의 장점으로 활자와 이미지의 두 성격을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아름다운 꽃을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는 사실적 미술 관점은 이제 사양적 개념이 된 것처럼 ‘알 수 없는 미지의 추상세계’가 자리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그가 광주시립미술관이 지난해부터 독일 뮌헨시 문화부 독일문화원과 교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9월과 10월 두달 동안 독일 뮌헨시 문화부 국제레지던시 공간인 빌라 발드베르타에 머물며 작업활동을 펼치게 됐다고 한다.
출국 전 그를 만나 작품세계 등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독일 진출에 앞서 소감을 먼저 밝혔다.
"지난해 한달여 그랜드 아트 투어를 유럽에서 다닐 때 독일 뮌헨에서 2박3일 정도 머문 바 있어 그렇게 낯선 곳은 아닙니다. 아울러 지난해 국제레지던시 참여가 결정됐는데 드디어 출국을 하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출발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또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상상이 행복감을 안겨주는 것 같아요."
그는 작품을 통해 서예 문자를 한지의 주름 속에 감춘다. 관념의 집착에서 탈피한 것으로 인식하는 작가는 이런 접근을 통해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한다. 특히 빼곡한 고대문자에서 민중의 결집력과 동양적 사유를 추출한다. 그의 독창적 작업세계는 이미 중화권에서 관심이 넘친다. 이
미 2013년 북경레지던스 입주작가와 2015년 상해히말라야미술관 레지던스프로그램에 참가한 바 있고, 2013국제현대적수묵전(중국 산동성미술관)과 2014상해신수묵예술대전(상해 히말라야미술관) 및 Rivers(Pier-2 Art center·대만 까오슝) 전시 등 다양한 전시에 참여한 바 있다.
중화권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작품을 출품하는 것은 아니다. 오는 9월 북경 잉크스튜디오 단체전 제안은 거절했다. 상록전시관에서처럼 단독 작품을 펼칠 수없는 한계가 있어서다. 작품의 의미를 온전하게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활동 무대는 주로 중화권에 집중됐다. 그도 그럴 것이 수묵과 서예의 기법을 추구하기 때문이어서 그렇다. 그에게도 독일에서의 활동이 더더욱 기대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 작가는 뮌헨과의 인연부터 들려줬다.

정광희 作‘인생’

"그랜드 아트 투어 당시 2주 정도 독일을 둘러봤죠. 피렌체에서 뮌헨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뮌헨의 청년을 만났는데 호텔까지 직접 안내해주는 등 친절함을 잊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독일미술에 대한 소회를 이어 나갔다. 분명한 것은 독일이 세계적인 거장들을 많이 배출해왔는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세와 태도를 견지할 뿐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자유로움이 있는 토양 및 지원시스템을 꼽았다.
"이번 레지던시 참가를 앞두고 이메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이곳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이고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자꾸 물어오더군요. 미리미리 준비하는 등 지원에 대한 가능성을 높이려고 하는 것을 보고, 예술활동을 하기에 참 매력적인 곳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는 2개월 동안 머무르며 뮌헨의 문화적 장소와 역사적 장소를 찾아 그곳의 정체성과 문화적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한편, 뮌헨 인근을 찾아다니며 독일의 현장과 그 속살을 들여다볼 작정이다. 아울러 그곳에서의 생활과 여행의 일과들을 매일 기록하는 동시에 이 기록된 글들을 다시 한지에 붓으로 옮겨 적을 생각 등 작업 방향을 내비쳤다.
"매일 쓰는 행위를 통해 얻은 결과물로 읽을 수 없거나 해독이 잘 되지 않은 추상작업으로 작품을 할까 합니다.
더불어 한지 위에 먹물이 들어있는 달 항아리를 깨는 ‘나는 어디로 번질까?’ 퍼포먼스를 겸해 설치 작업을 할 계획이구요. 한글의 조형을 살려 큰 붓으로 서예 퍼포먼스와 작업도 할 것입니다."
그는 입주하는 동안 스튜디오의 동료들과 관심이 있는 대상들에게 서예가 갖는 물질적 성질과 정신성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각오다.
독일에서 활동이 추후 국제적인 흐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펼치게 될 작업에 대해 들려줬다.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주제인 ‘인식으로부터의 자유’나 ‘아는 것 잊어버리기’, ‘자아경(自我經)-자아경(自我鏡)’ 등을 지속해 추구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당분간 언어 이전과 이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상상을 할 거구요. 그것을 통해 최종적으로 다 표출하지 못한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
정광희 작가는 올 3월 홍콩 아트바젤에 작품을 출품, 완판하는 성과를 거뒀으며, 오는 11월 중국 최상위 아트페어로 꼽히고 있는 ‘상해 웨스트 번드 아트페어’에 참여할 예정이다.
정 작가는 8월26일 출국해 핀란드에서 머물다 9월2일 독일로 넘어간 뒤 10월25일까지 2개월여간 머무르며 작업을 펼치고, 10월10일부터 23일까지 다국적 작가들이 입촌해 있는 공간인 ‘플랫폼’(PLATFORM)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