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호 제77호=고선주 기자)전남 영광군 불갑면과 함평군 해보면 경계에 있는 불갑산의 자락이 깊은 골짜기를 이루는 곳에 자리한 산골미술관이 낙후된 농촌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함평군 해보면 산내리 376번지에 자리한 잠월미술관이 그곳으로, 2006년 개관해 올해 14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미술관은 광주 수완고 미술교사로 재직중인 김광옥씨가 사비를 들여 개관됐다. 애초 잠월미술관은 교사화가로 활동을 해온 김광옥 관장이 교직을 퇴직한 뒤 미술관을 통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립한 전라남도 제4호 미술관이다.
산내리 청춘학당 등의 전시 및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MBC 무한도전, KBS 인 간극장, KBC 산내리 청춘학당 등 모든 매스컴을 통해 시골미술관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특히 한글을 모르는 동네 할머니들을 위해 4년간 한글을 가르쳐 할머니들이 직접 쓴 글을 가지고, 시집을 만들어 드리는 등 봉사활동에도 전념을 했다. 또 바쁜 시간 틈틈이 전공인 한국화를 작업해 개인전 및 일본, 라오스 등의 국제교류전과 그룹전에 참여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도심지 미술관 이나 갤러리들보다 더욱 알차게 운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잠월미술관 전경

미술관은 대지 960평, 건평 100평, 텃밭 10평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일대 유일한 미술관으로 산내리 주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문화공간이 됐다. 전시만 여는 게 아니라 문화프로그램 운영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교육까지 담당 하는 등 꼭 필요한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김 관장은 미술전공자인 부인 냉이 임혜숙씨와의 부부전 ‘냉이와 현동의 화중유시’전을 잠월과 경남 남해에서 열었을 만큼 미술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외진 곳에 자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의 대 표적 문화명소로 굳건하게 뿌리내린데는 김 관장의 미술관을 위한 헌신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 다. 미술관을 열기 위해 은행대출까지 기꺼이 껴안은 것은 김 관장의 미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그만큼 강해서다. 그때의 대출금은 현재까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김 관장은 후회하지 않는다. 산내리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어서다. 주민들에게 미술관은 든든한 문화적 뒷배지만, 미술관에 주민들은 든든한 지지자들이다. 주민들은 관람객이자 작가, 그리고 수강생 및 소비자다. 미술 관과 주민들은 이제 공존하는 관계가 됐다. 주민들의 지지를 빠르게 확보한데는 미술관이 스스로 문턱을 낮추며 주민들 속으로 뛰어들어간 게 크다.
미술관에는 10평 규모의 텃밭이 있다. 이 텃밭은 농촌 주민들과 더 끈끈하게 이어주는 매개가 되고 있다. 주민들은 스스럼없이 드나든다. 배추 농사를 지어 150포기 정도 를 김장해 전시오픈식 때 나눠먹는 등 서로 어울리며 오붓한 정을 나누고 있다. 미술관 안에서 작품 이야기가 아닌, 모종 등 농사관련 이야기가 들려와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이유다.
이런 김 관장은 늘 분주하다. 학교 수업하랴, 창작하랴, 미술관 관리하랴 등의 일상에도 불구, 화업 42년만에 자 신의 작품집인 단행본을 최근 펴내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선보인 작품집은 시와 그림이 수록된 ‘현동 화중유 시’(玄童 畵中有詩)로, 화업 42년만에 펴냈다. 표제인 ‘현 동’은 자신의 호이고, ‘화중유시’는 중국 송나라 소동파의 글에서 차용했다. 소동파가 남종화의 시조인 왕유의 작품 을 접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한 말이라고 전해진다. ‘그림을 보면 시가 떠오르고, 시를 읽으면 그림이 떠오른 다’(畵中有詩 詩中有畵)라는 문장에서 따온 것이다.
‘현동 화중유시’라는 타이틀로 출판을 기념한 제11회 개 인 전시가 2호부터 200호까지 30여 점이 출품된 가운데 지 난 8월1일 개막해 10월5일까지 진행된다. 단행본은 9월21일 오후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배포됐다. 이번 단행본은 3∼4년전부터 미술관을 알리는 등 또 다 른 소통의 취지로 페이스북에 그림과 시를 올린 것이 계기 가 됐다. 원고량을 정해두고 쓴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마다 생각나는 대로 써서 올린 것이 한권의 책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림 100점과 시 100편이 수록됐다.

그의 책 101 쪽에는 ‘그 어느 날 그리움을 찾아서/떠나온 여행길//…중 략…// 멀리서 보이는 오막살이 한 채/그 속에는 따스함 이 가득 하겠지/군고구마 익어가는/구수한 냄새와 함께/ 산골짜기에는 하얀 눈과 함께/겨울이 익어 가겠지’(겨울 이야기)라고 그림과 시가 수록돼 있다. 그의 그림과 시편 들은 차분한 어조로 노래하는 한편, 섬세한 서정과 감수성 짙은 내면을 엿볼 수 있다.
"화가가 책이라니 처음에는 실감이 안났어요. 제가 일 을 잘 저지릅니다. 겁없이 저지르고 나니 두려움이 생기더군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제 책을 좋아해 주니 까 더욱 열심히 작업을 해야겠구나 마음을 다잡았죠."
전시에 대한 소감도 잊지 않았다. 첫 전시때와는 완전 다른데 그때는 굉장히 서툴렀고, 지금은 그 서투름이 많이 좋아졌지만 초심은 같다고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9월16일 오후 그는 전주에 출타 중 이었다. 그에게 물었더니 대학 때 은사였던 목정 방의걸 선생(前 전남대 교수)에게 책도 출간돼 인사도 할겸해서 방문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관장은 집안 형편으로 인해 남들과 달리 7년 늦게 전 남대 미술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만큼 젊은 학생들과 경 쟁을 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로 발령받아 교사생활 을 1년 남짓 하다가 광주로 내려와 현재까지 34년 동안 재 직하고 있으며, 2020년 8월 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설명이 다.
대학 때 만났던 선생이 목정이다. 목정은 김 관장에게 교사로서의 길과 화가로서의 길을 가는데 있어 귀감이 되는 말씀을 통해 은연 중에 올바른 교육자와 확고한 작가적 의식을 심어줬다는 술회다. 연진미술원 제1기로 화가 박문종 백현호씨 등과 동기간이라고 밝힌 그는 교직에 재직하면서 느낀 소회와 계획을 잊지 않았다.
"미술대학에 가려고 하는 학생들은 많이 있어요. 저는 고등학교까지의 미술은 상식적 수준이지만 대학 때부터 는 전문영역으로 봅니다. 근데 대개 졸업 후 생계가 다급 하니까 창작을 접습니다. 그런 반면에 날밤 세워가며 창작 과 우울한 사회를 고민하던 우리 시대와는 다르게 요즘 젊은 작가들은 근성이 없는 것 같아 그점은 안타깝죠. 퇴직 후에는 여행을 다니며 그동안 못 그린 그림을 실컷 그려 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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