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제78호=고선주 기자)유년 시절 설날은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어 기쁜날이었다. 그때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참으로 가난했다. 1970년대 이야기다.
먹을 것이 궁했던 시절이었다. 모두들 없이 살았지만 명절은 빠뜨리지 않고 꼬박 꼬박 챙겼다. 조상님들에 제사를 지내야 해서다. 지금이야 제사를 건너뛰는 집들도 많았지만 그때는 사회 분위기가 전통을 고수 하는 편이었다.
그때도 변치않은 것은 세뱃돈이었다. 지금보다 액수는 형편없었지만 세뱃돈을 받으면 요긴하게 쓸 수 있어 좋았다. 작은 액수인 50원이나 100원 안팎의 돈이 전부였다.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했다. 5원짜리 과자도, 연필도 있었으니 50원, 100원은 어린 마음에 그리 작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왜 그리 궁색맞게 살았는지 모른다. 그 궁색맞은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순위에서 10 위와 세계 무역순위 6위에 오를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이제 우리는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50원이 어떤 나라에서는 비상사태로까지 연결될 만큼 작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온다. 우리와는 반대편에 자리한 칠레에서는 정부가 수도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을 800페소(1320원)에서 830페소(1370원)로 30페소(약 50원)가량 인상 한 것이 계기가 돼 국민들의 빈부격차에 대한 시위로 번졌다.
한달여 간의 시위로 20명이 숨지고, 1000여 명이 부상당했을 정도로 격렬했 다. 애초 예정됐던 APEC 정상회의도 포기했다.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국가 시스템이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표면에서 드러난 것은 지하철 요금 인상 50원이지만 그 뒤에 가려진 빈 부격차와 사회 불평등,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높은 생활 물가 등의 문제가 촉발한 것이다.
오랫동안 묵은 문제가 터진 셈이다. 50원이 큰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모순된 시스템과 결합하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사례다.
우리 사회 역시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칠레의 전철 을 밟지 말라는 법 없다. 국가와 사회구성원 모 두가 이를 숨기려하지 말고, 수면 위로 꺼내 치 유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