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제79호=고선주 기자)국립대만미술관 관람이 흡족돼 다음 여정이 기대됐다. 둘째날인 지난 10월18일에는 디렉터 우다쿤의 안내 아래 타이페이 소재 ‘씨랩’(C-LAB) 현장을 찾았다. 대만당대 문화실험장(Taiwan Contemporary Culture Lab)을 약칭 으로 부르는 이름이 씨랩이다. 씨랩이 갖는 의미는 여럿이 다.
우선 대만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같은 공간이라는 점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지하로 들어갔지만 이곳은 지상으로 개발돼 도시 랜드마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 으로 기대되고 있다. 애초 공군사령부가 있던 자리로 국가 의 중요 지점을 이루는 곳이다. 이곳은 1939년 대만 총독 부 공업연구소가 있던 자리로 공군 사령부가 2013년에 빠져 나가면서 비어 있다가 2018년부터 사전정지 작업 성격 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구역 안에는 총 21개 건물이 자 리하고 있다.
정문 출입구 양쪽 소규모의 경비실(정문 기둥 형식의 소 규모 건물)과 본부, 그리고 강당인 중정당 등 세 건물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공청회를 열어 주민들의 동의를 얻은 만 큼 철거한 뒤 새로운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고 한다. 2020년 개발 공사에 돌입, 2030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국가 부지인데 타이페이 시내에 자리해 땅값이 천정부 지이지만 국가가 소유권을 갖고 있다. 이 소유권을 끝까지 놓지 않고 지금의 문화예술 풍토를 지켜가려 한다는 점에 서 의미가 깊어 보였다.
이곳이 표방하는 목표는 문화허브구축과 대만작가들에 대한 지원, 국제적 소통 공간 기능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변 고층이 즐비해지고 있을 만큼 금싸라기 땅이지만 국가가 팔지 않고 문화예술공간을 구축하는 한편, 보존이 필요한 건축물의 보존까지 책임지는 셈이다. 말하자면 문 화공간을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간혹 문화 재까지 허물어버리는 광주와는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이 미 행정 관청의 주도로 공청회를 통해 주민들의 동의를 마 무리지었다. 여기 전시물 중 국내 작가 정연두의 ‘노이즈 콰르텟’ (Noise Quartet)은 단연 주목을 받았다. 일본 오키나와와 홍콩, 대만 가오슝과 함께 광주 5월을 다루고 있어서다.
민중의 역사가 서린 곳들을 한데 묶었다. 작가의 이 영상 작품에는 5·18광주민중항쟁과 안성례(오월어머니회 설 립자)씨의 증언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타이페이에서 잠 시나마 5월 광주를 마주할 수 있었다. 작품은 30여 점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가며 선보이고 있었다. 아울러 정문 경비실 지하에 전시된 작품 역시 비중있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었다. 홍콩의 미스테리한 건물을 배경 으로 지상에서 살지 못해 경찰에 쫓겨 지하에서 사는 데 AI의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의 영상이다. 홍콩의 미스테리 한 건물은 구룡 빈민가 성채로 1993년 철거되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씨랩에서 나와 대만무역센터로 이동했다. 아트페어인 ‘아트타이페이’(ArtTaipei)가 10월18일 개막해 21일까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트타이페이’는 대만에서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 중 하나다. 박영덕 화랑 등 국내 화랑도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아트페어는 빽빽한 시장 같지가 않 아 좋았다. 전시 구성이 자연스러웠고, 통로가 넓어 답답 하지 않았다. 중화권 아트페어로 일본 성향이 짙어보였다. 그러나 다양한 층위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촉박한 일 정으로 인해 전시장을 채 한바퀴도 돌지 못하고 발길을 돌 려야 해 아쉬움이 큰 곳이다. 아트페어를 서둘러 살피고 점심을 햄버거로 해결한 뒤 타이베이시 유적지인 송산문창원구(松山文創園區)로 이 동했다. 요즘 ‘핫 플레이스’라는 곳이다. 중화권이 대체적으로 규모의 미술이나 재생의 문화공간 구축면에서 꽤나 폼이 나는 경향이 있다, 대만 역시 마찬가지다. 담배공장 이었던 곳을 문화예술단지로 변화시켰다.

송산문창원구와 국립고궁박물원 내부와 전경

1937년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일본 초기 모더니즘 양식의 건축물 로 알려져 있다. 건물의 원형을 살려 오늘의 문화예술 건물로 활용하다 보니 어느 누가 보더라도 근대건축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전시실이나 작업장, 바로크 정원, 플리마켓, 열락 서점, 아트샵, 커피숍 등이 갖춰져 있는 가운데 근대문화와 어울려 제법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기대됐다. 현재 대만 디자인뮤지엄과 송얀갤러리, 유에유에 북스 토어, 카페솔 등이 구비됐고 전시와 공연 관람, 공방 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복도가 넓고 길었으며 창문이 많아 시원 했다. 복도는 입구(口) 자 식으로, 상당한 거리를 이루고 있었다. 넓은 광장도 일품이었다. 오래 걸으면 조금 다리가 아플 수 있다.
성품생활이라는 거대한 백화점과 연계돼 쇼핑을 원활하게 연계해 놓았다. 일제시대 건립된 십여채 의 건물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가운데 2000년대 중반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1년부터는 매년 세계디자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 대만 방문객들의 필수코스인 국립고궁박물원을 둘러봤다. 중국 송대(宋代)와 원대(元代), 명대(明代), 청 대(淸代) 등 네 왕조의 궁정유물을 계승한 것으로, 세계 4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은허(殷墟)의 출토품 을 포함한 청동기, 옥기, 시대별 서화, 도자기, 자수, 문방구, 문헌 등 모두 75만 건이 소장돼 평생을 봐도 다 못볼 정도다. 취옥백채나 양귀비 조각상 등 잠시라도 한눈 팔면 놓칠 유물들이 넘쳐났다.
중국 문화유물의 진품이 모두 대 만에 있다는 말이 실감됐다. 국립고궁박물원이 왜 명성을 얻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이번 여정에서 타이완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는 점은 수확이다. 중국 본토에 비해 아류 쯤으로 여겼던 한때의 선입견 말이다. 어찌됐든 강렬한 문화예술의 인상 때문에 여건이 되면 다시 한번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