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고선주 기자)계간지와 문학서적 등을 꾸준히 펴내면서 지역 간판 출 판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문학들’의 시인선이 신설돼 출 발한다. 기존 시선과는 별도다. 독자들의 반응이 기대된 다. 그동안 문학들은 ‘시선’ 시리즈를 꾸준하게 펴내면서 독자들의 반응에 답했다. ‘시인선’ 시리즈는 처음부터 기획됐다가 뒤늦게 실천되 는 경우로 단조롭던 시리즈에 더욱 풍성한 내면을 더해줄 전망이다. 이번 문학들의 시인선은 도전이지만 두번째권까지 발 행돼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이번 새롭게 시작된 시인선 의 첫번째권은 전남 담양 출생 고재종 시인의 시집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이어 두번째를 이은 인사는 시인으로도 활동 중인 전남 장흥 출생 원로 한승원 소설가다. 문단의 선 후배지간인 두 시인은 서로의 시집에 발문과 해설을 주고 받으며 그동안 맺어온 오랜 우정을 담담히 표현하고 있어 주목된다. 시집에서 ‘발문과 해설 주고받기’는 신선한 시 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먼저 고 시인은 ‘고요를 시청하다’라는 명칭으로 아홉번 째 시집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시집은 단순한 고요가 아 닌 절대고독의 고요를 노래하고 있다. 요란 속에 가려진 고요이자 고요 속에 숨어 있는 생기의 고요, 곧 실존의 고 요를 조망한다. 실존의 안팎을 넘나드는 삼라만상을 통해 시인은 자신과 세상의 근원을 성찰하고 가야 할 길을 탐구 하고 있는 것이다.

‘초록으로 쓸어 놓은 마당을 낳은 고요는/새암가에 뭉실 뭉실 수국송이로 부푼다/…중략…/삼베올만치나 무수한 고요를 둘러치고 앉은/고금(孤衾)의 시골집 마루’(‘고요를 시청하다’)라고 노래한다. 고 시인의 고요가 범상치 않은 것은 그것이 ‘고금(孤衾, 외로운 이불)의 고요’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 고요는 생의 이순을 지나 ‘송송 구멍이 뚫리는 외로움의 골다공 증과/사괘가 마구 뒤틀리는 고독의 퇴행성관절염과/바람 에 욱신거리는 그리움의 신경통을 앓는’ ‘나는 나일 것도 없다고 할 때가 오리라’(‘침묵에 대하여’)고 예감하는 자의 고요로 풀이된다. 시인이 말하는 고요는 그저 조용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소박한 고요와 과묵한 고요의 한 가운데를 관통했던 어머 니와 아버지의 삶과 만나는 의식이 아닐까 싶다. 더욱 침 잠하는 시적 자아의 상황에 대한 고요의 행위가 시청하는 것으로 구체화돼 나타나고 있다.
이어 한승원 소설가의 일곱번째 시집 ‘꽃에 씌어 산다’ 는 자신이 거주하는 장흥 ‘해산토굴’ 주위의 꽃들과 교감 하면서 삶의 본원적인 힘을 확인하고, 그것을 자신의 에너 지로 체화하기를 꿈꾼다. 그는 ‘나는 왜 꽃을 보면 열여섯 살 소년처럼/소가지가 없고 가슴이 설렐까/나는 왜 꽃을 보면/니체의 차라투스 트라를 닮은/도깨비 한 놈을 옆에 끼고 살고 싶어질까’(‘나 는 왜 꽃을 보면 소가지가 없어질까’)라고 노래한다. 그렇게 노래하는데는 꽃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니체처 럼 살고 싶어지는 것은 꽃이 삶을 추동하는 에로스의 본체 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접신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발기’ 한다. 꽃망울을 터트린 ‘배롱나무의 검은 그림자를/젖빛 유리창에 수묵화 한 폭으로 새겨주는’ ‘물방울관음여신’ (‘한밤의 수묵화’), ‘먼 바다에서 꿈틀거리며 달려온 짙푸른 파도의 굽이굽이에/반짝거리는 비늘너울,/달빛너울 옷 입은 물방울여신’(‘내가 늘 바다에 가는 까닭은’) 등의 시 편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인의 꽃은 시집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가슴이 설레 거나 세상의 중심으로 읽히며 넋이 된다. 또 아릿한 향기 로 다가오거나 하늘로 날아가 별들의 씨앗이 되고, 늙은 시인의 몸이 되며, 가슴을 쿵쾅거리게 한다. 고재종 시인은 한승원 소설가의 시에 대해 "활인검의 시, 투망을 하지 않고 별들을 포획하는 시와 삶의 황홀을 얻기 위해 하늘과 땅,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고 에로스와 진리, 삶과 시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도저한 의지가 ‘달빛 너울 옷 입은 물방울여신’이라는 문학적, 신화적 상징을 만들어 냈다"고 했다. 한승원 소설가는 "고재종 시인의 고요는 문득 숨을 멈 추지 않을 수 없도록 숙연해지게 한다. 삶의 부드러움과
강단과 무거움이 실린 섬세하면서도 견고한 시에는 시인 의 절대고독이 배어 있다"고 평했다. 지역의 문단을 대표하는 두 작가가 펴낸 시인의 시집이 시인선 시리즈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면서 독자들의 시심 (詩心)을 자극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출판기념회를 겸한 포엠토크가 마련돼 지난 11월 15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3에서 성황리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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