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제81호=정채경 기자)‘담양’을 떠올리면 대나무와 죽녹원, 관방제림, 관방천, 메타세콰이어 숲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떠오른다. 담양은 1980년대까지 죽세공예(竹細工藝)를 꽃피운 대나무의 공장으로, 1990년대 이후에 죽녹원과 관방제림,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등 생태관광지로 알려졌다. 마을 공터와 뒷 산, 도로가 등 어디에 서나 대나무를 만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대나무로 알려져 있던 담양이 ‘예술’이라는 새 옷을 갈아 입고, 자연 풍광과 함께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몇 년 새 담빛예술창고와 메타프로방스, 해동문화예술촌 등 다양한 명소가 줄지어 생겨난 것. 멀지 않은 거리에 형성돼 관광객들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 죽향의 명성을 이어갈 문화아이콘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특히 담빛예술창고는 그 중 가장 먼저 생겨난 곳으로,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에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곡식창고를 예술로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공간 내부에 전국에 하나 밖에 없는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고, 전시장은 현대미술 작품으로 채워지면서 담양의 대표적인 예술 공간으로 거듭 났다.
수 백년 수령을 자랑하는 나무들로 이뤄진 관방제림이 뒤편이 자리하고 있고, 유휴공간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하는 곳이다. 과거의 기억을 지우기 보다 품어 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생하고 있어서다.
담빛예술창고는 본래 양곡창고였다. 1960년대 정부가 수매한 벼와 보리를 보관하는 곳으로 1968년 지어졌다. 그러다 양곡 수매가 중단되고, 2004년 국가수매제가 폐지되면서 활용도가 떨어져 10년 동안 방치됐다. 철거가 될 뻔한 이 공간을 담양군은 예술창고로 리모델링을 결정한다. 건물 높이가 10m 정도로 높고 적색 벽돌로 이뤄져 눈에 잘 띄는데다 인근에 대담미술관과 죽녹원, 관방제림 등 주요 관광지가 있어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2014년 산업단지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탄력을 받아 12억 여원을 투입해 조성됐다. 4500여 ㎡ 부지와 창고 두 동(660㎡)을 카페와 전시관·조각공원 등으로 꾸몄다. 관광객과 담양군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단장한 셈이다.

카페에 설치된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으로 매주 4차례 파이프오르간 연주회를 열고 있으며, 카페 옆 330㎡의 전시 공간에서는 2~3개월마다 실험적 현대시 각예술에 특화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를 비롯해 지역예술인작가장터 등 공간의 정체성과 특성을 잘 살려 지역을 아울러 하루 평균 600여 명, 한 해 17만명이 다녀가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지난 달 10일 오랜만에 담빛예술창고를 찾았다. 건물 두 동이 ‘ㄱ’자 구조로 연결돼 있던 1관 외에 바로 옆 자리에서 2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담빛예술창고 건물 상단에 큼지막하게 ‘남송창고’(南 松倉庫)라고 쓰여져 있어 공간의 본래 쓰임새가 유추된다.
마당에 들어서자 마종일 작가의 구조물 ‘You, The One Standing In The Prosperous Land’와 마주할 수 있다. 담양의 대나무로 표현된 이 작품은 균형과 불균형, 인간의 구조, 유기적인 연결 등 현 시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다양한 색으로 선보여 빨간 벽돌의 건물과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 과거의 흔적을 살리면서 현대적 감각이 더해진 공간이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먼저 왼쪽에 있는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전시장에서는 ‘노무현, 만남의 기억’이라는 타이틀로 사진전문지 포토닷과 공동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사진가 최광호씨가 세 번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만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담은 사진 100여 점이 4개 섹션에 걸쳐 출품됐다. 생전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것들이다.
전시를 본 뒤 2층으로 올라가자 또 다른 전시 공간이 펼쳐진다. 옆 건물로 이어진 통로를 따라가면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계단을 내려가면 카페가 나온다. 많은 관람객들이 카페에서 통유리 밖으로 펼쳐진 그림같은 풍경을 감상하면서 차를 음미하고 있는 모습에서 모처럼 여유가 느껴졌다.
카페 뒷편으로 돌아 나오자 이렌 안톤의 섬유설치작 ‘Intervention Invading Network’도 만날 수 있었다. 신경세포를 모티브로, 무수한 직선들로 이뤄진 작품이 자연 풍경과 어우러져 독특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관방제림이 있어 약 420여 그루의 나무들이 빽빽히 버티고 있었다. 겨울이어서 녹음보다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담양을 감돌아 흐르는 담양천을 둘러싸고 있어 운치있게 다가왔다.

관방제림은 푸조나무(111그루)를 비롯해 팽나무(18그루), 벚나무(9그루), 음나무(1그루), 개서어나무(1그루), 곰의말채, 갈참나무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된 구역에서 자라고 있는 큰 나무는 185그루로, 약 3~400년 전 심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나무들은 1854년 철종 때 황종림 담양부사가 심은 것이라고 한다. 선조들이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든 뒤 나무를 심은 인공림으로, 바람을 막는 기능을 발휘해 자연재해를 막고자 했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한편,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제방을 사이에 두고 그 옆으로는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다. 대나무골의 설화 (說話)를 소재로 한 동물상을 비롯해 담양천과 어울리는 시냇물과 연못, 초가 지붕 정자, 산책로 등이 마련돼 있기도 하다.
담빛예술창고는 자연을 캔버스 삼은 볼거리가 즐비했다. 담빛예술창고 외에도 담양 시내는 옛 죽물시장 뒷길 담빛길 1구간에 건물 17동을 단장해 예술 공방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근 옛 군수 관사는 인문학 공간으로 변모, 담양시장 일대에서는 ‘다미담 예술구 조성 사업’이 한창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함께 문화로 새옷을 갈아입은 공간들이 담빛예술창고처럼 문화아이콘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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