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드러머’ 익준씨의 음악 인생史

예술인플러스(드러머 원익준)
고등학교 스쿨밴드로 입문…즉흥성에 매료
드럼 세트와 사물놀이 악기 협업 시도 ‘눈길’
"음악이 가진 힘 믿어…치유 에너지 전하길"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12월 28일(월) 14:52
(2021년 1월호 제92호=글 박세라 기자)
드러머 원익준씨를 만나기 전, 살짝 긴장했음을 고백한다. 드러머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 탓이다. 스킬이 돋보이는 연주로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고, 중간 중간 스틱을 촤르르륵 돌리면서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모습들. 드럼은 밴드의 중심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어, 그룹사운드를 이끌고 또 그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일까. 왠지 강한 기운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할 것만 같은 긴장감이 차올랐다.
아침 일찍 호남신학대학교 음악관에서 그를 만났다. 상상한 대로 눈썹이 찐하고, 건장한 체격의 원씨가 나를 맞는다.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드러머에 가졌던 그간의 편견이 고스란히 깨지고 말았다.
학창시절 그는 록 음악에 흠뻑 취했다. 이 좋은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에, 스쿨밴드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원래는 전자기타를 치고 싶었는데, 기타 자리엔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얼결에 쥔 것이 드럼스틱이었다.
"드럼은 치면 곧바로 그 소리가 저에게 전달됩니다. 그 느낌이 참 좋았어요. 마이크나 또 다른 장비 연결 없이, 스틱을 치면 그대로 반응하는 즉흥성이 멋졌습니다. 크고 묵직한, 드럼이 주는 에너지에 홀딱 반했죠."
스쿨밴드를 시작하고선 드럼을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 학원을 찾아다녔다. 지금에야 실용음악학원이 많지만 1991년 당시에는 학원이 귀했다. 그는 밤이 되면 업소로 변신하는 조금 ‘애매모호한’ 곳에서 첫 드럼을 배웠다. 선생님은 20대 중반의 머리긴 형이었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청년 둘이서, 실력보다는 열정 하나로 뭉쳐 드럼을 치던 시절이었다.
특히 그는 유럽의 록음악을 좋아했다. 본고장인 미국의 록과 유럽의 록이 어떻게 다른 것이냐 묻자, 유럽 스타일은 ‘서사’가 있다고 설명해준다.
"미국의 록과 메탈은 단순하고, 가사도 직설적이에요. 반면 유럽은 ‘아트록’이라고 하는데 록이란 장르를 통해 자연풍광을 그린다든지, 주제가 있는 스토리라인을 드러낸다든지 굉장히 클래식한 특성이 있습니다. 3~5분짜리 곡이 아니라, 한 계절을 20분에 걸쳐 연주하는 등 기승전결이 있는 록이죠."
아트록 음악과 함께 그의 호시절을 함께 보낸 것은 바로 영화다. 원씨는 말하자면 영화광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밤 새워 영화를 볼만큼 좋아했는데, 특히 그는 예술성이 짙은 유럽 영화들을 좋아했다. 대개 평범한 고등학생이 좋아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을 터다. 하지만 그는 "아 분위기 좋다. 영상 죽인다"는 감상평을 내놓을 만큼 남다른 감수성이 있었다. 이때 봤던 영화들은 그의 음악인생에 든든한 밑거름이 돼 준다. 드럼을 치는 사람임에도 부드럽고, 또 따뜻한 음악 색을 지닌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드럼 연주에는 ‘배려’가 물씬 묻어난다. 드럼은 일반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쪽인데 원씨의 연주는 그렇지 않다. 음악의 흐름 속에서 빈 공간을 채우듯 연주하는 게 특징이다. 그는 "내가 박자를 두드릴테니, 나에게 맞추세요"가 아니라, 좋은 연주를 위해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연주자들이 연주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악기의 선율을 살려주고,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것이죠. 때로는 가만히 침묵하기도 하고요. 판소리를 할 때 고수가 ‘얼씨구’, ‘좋다’ 하고 추임새로 흥을 돋는 것처럼, 저는 드럼 스틱을 두드리면서 연주자들에게 에너지를 전하고 있어요."
원씨는 인디 씬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을 시절 홍대에서 록밴드로 활동했고, 해군 군악대에 들어가 클래식한 연주도 섭렵했다. 제대 후에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 록밴드 드러머로 무대에 섰다. 이어 1998년에는 전국을 강타했던 뮤지컬 ‘난타’의 라이브밴드로 들어가 난타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여기다 태진아·인순이·신효범·BMK 등 대중 뮤지션들과의 작업도 셀 수 없이 했다. 그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배려의 ‘연주기법’은 바로 이 같은 탄탄한 경험에서 싹튼 것이라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해군 군악대에서의 경험은 그의 음악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음악하는 형에게 알음알음 배워온 드럼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된 것. 거기다 뉴질랜드·호주·러시아 등 해외 15개국을 투어하는 연주회에 참여하게 됐는데, 호주의 재즈클럽에서 그는 재즈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렇게 2003년에 캐나다로 건너가 8년간 재즈 공부를 했다.
"재즈의 자유로움이 너무 멋졌어요. 재즈는 혹여 실수를 하더라도 실수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장르입니다. 연주를 하다 무언가가 어긋났다하더라도 그 어긋남에 새로운 리듬과 멜로디를 얹으면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겁니다. 재즈는 드러머에겐 정말로 매력적인 음악이죠. 변화무쌍하고 엇박이 많고요."
원씨는 탄탄한 실력을 기반으로 여러 장르와의 협업을 시도한다. 그가 꾸미는 콜라보 공연은 물리적인 만남이라기보다는 화학적 반응에 가깝다. 원씨는 장르 간의 벽을 허물고 조화로움을 꾀하는 데 주력한다. 지난 12월10일 이영애(가야금병창 무형문화재)씨와의 협업 무대는 그래서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야금산조의 전통을 그대로 존중하면서, 재즈 반주를 곁들이는 방식이었다. 전통에 걸맞게 재즈어법을 손본 것이다.
"콜라보 공연의 성공 키는, 상대 장르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간 협업 무대들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재즈연주자와 국악 명인이 한 무대에 섰는데 각 공연자들이 ‘교집합’에서만 협업이 시도되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전통에 무게를 두고 재즈의 매력을 녹여내는 데 집중했죠."
국악 쪽 공부에 매진해온 그는 한국적 가락을 기반으로 한 재즈 앨범을 준비 중이다. 윤동주 시인을 주제로 한 곡, 동학혁명 당시 상황을 연주로 풀어낸 곡 등 ‘한국적인 재즈’의 맛을 담은 곡들이 담길 예정이다.
최근 그는 드럼 세트와 사물놀이를 합친 새로운 연주방법으로 팬들을 만난다. 북·심벌즈 등 여러 사람이 치는 것을, 스틱을 활용해 혼자 연주하도록 만들어낸 것이 드럼의 특성이라면, 그런 시각에서 원씨는 4명이 함께 치는 사물놀이 또한 독주가 가능하겠다고 봤다. 실제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구각노리’에서 그는 이 연주를 선보여 큰 호응을 받았다.
"드럼세트 곁으로 장구, 꽹과리, 징, 북을 두고 연주를 했죠. 물론 각 연주자가 치는 것만큼 완벽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재즈 선율에 앞서 울리는 꽹과리 소리는 더 없이 이채롭죠. 녹음된 연주 파일이 아니라, 실제 무대에서 라이브로 울리는 것인 만큼 관객들도 재미있어 하고요."
원씨는 음악이 가진 ‘힘’을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음악과 연주가 긍정의 에너지를 분출한다고는 생각 않는다. 밥상에 올라온 음식과 같이 음악 또한 몸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고 단언한다. 앞으로 그가 좋은 음악을 해야 하는 이유다.
"나의 연주가 관객들에게, 또 같이 무대를 꾸미는 연주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질병을 치유하는 게 좋은 연주라고 생각해요. 좋은 음식을 먹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처럼 제 연주를 본 사람들이 긍정적인 힘들을 받아가시기를 바라죠. 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무대에 설 작정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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