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게 써 내려간 글…유언장과 마찬가지죠"

영화 ‘실미도’ 작가 백동호
광주 광산구 송학동서 집필 작업 자전소설 7년만에 발표
금고털이범서 베스트셀러 작가 변신 ‘대도’ 등 소설 인기
"굴복하지 않은 인간정신" 제시…‘세계범죄추리소설’ 계획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16년 10월 26일(수) 17:47
광주 광산 작업실에서 집필중인 소설가 백동호씨
영화 ‘실미도’의 원작자인 소설가 백동호(61)씨가 7년여만에 신작 ‘연두빛바람’(가나북스 刊)으로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백씨는 40만부가 팔렸던 ‘대도’(전 2권)의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의 굴곡진 삶으로 인해 세간에 많은 화제를 뿌렸던 당사자다.
백씨의 전반부 삶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수십억의 금고털이 혐의로 1985년부터 1994년까지 8년6개월을 복역한 범법자 출신으로 점철됐다. 하지만 백씨는 수감 시절 독방에서 3000권을 독파하는 등 잠을 자고 운동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책읽는데 썼다.
이 독서가 훗날 1만여권의 독서로 이어지게 되고 소설가로서의 기본 밑바탕이 됐다. 1994년 출소후에 자신의 출생 비밀과 불우했던 유년시절, 소년원 시절, 교도소시절 등과 함께 금고털이범이 된 사연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대도’ 2권을 펴내 40만권이 판매돼 베스트설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그후 ‘유서’(전 2권)를 펴낸데 이어 1999년 출간한 ‘실미도’(전 2권)가 2003년 영화화돼 국내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명실상부한 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진다.
작가는 줄곧 서울에서 집필활동을 하다가 창작에 더욱 매진하기 위해 광주행을 감행한다. 적당한 거처를 물색하다가 조용하게 지내며 글을 쓸 수 있는 곳으로 광주시 광산구 송학동 봉학마을을 선택한다.
그는 광주행과 송학동을 거주처로 선택한데 대해 "원래 지금 사는 집이 절이었는데 인터넷에서 보니 서까래 등이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이 집을 구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조용하게 칩거하면서 대작을 써 보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이때가 2006년 2월로 현재 광주에 거주한 지 10년을 맞았다. 그의 일상은 농사도 짓고 글도 쓰며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듯 했으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2009년 뇌졸중과 2013년 두개골 함몰 등으로 인해 소설 집필을 할 수가 없었다.
2009년 일제시대 나환자 집단 거주지역인 소록도에서 벌어진 생체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보리밭에 달뜨면’을 펴낸 뒤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느라 도저히 소설 창작 엄두를 낼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보리밭에 달뜨면’은 그가 광주로 거처를 옮긴 이후 펴낸 첫번째 소설이다.
건강 악화로 자그만치 7년 동안 소설 창작이 어려웠다. 그의 건강 회복은 기적이라고 말해질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이번 7년만에 나온 ‘연두빛바람’은 그의 유언장과도 같은 자전적 장편소설로 흉악범들의 생생한 현장스토리를 담아내고 있다.
이 장편을 통해 그는 "각자 타고난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인간이 주어진 환경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으나 타고난 운명을 거역하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 저는 타고난 운명을 거역하고 벌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은 인간정신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그를 지난 7월8일 그의 송학동 자택에서 만나 출간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 등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9년 이후 7년 만에 장편 ‘연두빛 바람’을 출간했는데 소감은요.
사마천은 이미 2천 년 전에 ‘생각해보면 세상일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없다’며 깊은 탄식을 했죠. 뜻대로 되었거나 혹은 뜻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았던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드리는 책이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세상은 살아볼만한 곳이니까요.

이번 장편은 유언장과도 같은 자전적 소설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투병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혼자서는 밥을 먹을 수도 없고 화장실 가는 것조차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에서 의사도 기적이라고 할 만큼 건강을 되찾기까지 힘겨운 재활치료를 했지요. 2층 거실이 저의 손과 발에서 흘린 피로 도배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겨우 걸을 수 있게 되자 이번에는 뜻밖의 사고로 두개골을 절반이나 잘라내는 대수술을 했어요. 뇌수술의 후유증으로 꽤 오랫동안 맑지 못한 정신을 지니게 되었고요. 간간이 제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힘겹게 써 내려간 글이니 유언장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작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데요. 어두운 과거의 단면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습니까?
청년 시절의 저는 세상을 선과 악, 어둠과 밝음으로 구분하지 않고 인간생태계의 한 단면으로 파악했습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싹수가 떡잎부터 벌레 먹은 범죄인생 꿈나무로 태어났지만 동류(사람)를 해치지 않고 먹이만 취하는 외로운 늑대였던 셈이지요. 다양한 인간생태계에서 저의 삶에 당당하고 싶었습니다.

‘흉악범 스토커’와 ‘황용주’, ‘악연’ 등 4부로 이야기가 구성됐던데요.
주로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어릴 때 헤어진 일란성쌍둥이 형 황용주의 삶을 그렸습니다. 우리 쌍둥이 형제는 전혀 다른 환경과 장소에서 성장했으면서도 놀라울 만치 일치하는 것이 많았어요. 얼굴과 체형이 닮은 것은 일란성쌍둥이로서 당연하지만 팔자걸음, 활자로 된 것은 무엇이든 읽어치우는 독서습관, 여러 개의 전과, 아마추어 바둑고수,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다친 시기는 다르지만 턱 밑의 흉터까지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같은 색깔의 티셔츠와 같은 모양의 안경을 끼고 있었지요. 자신의 또 다른 존재, 거울을 보는 느낌, 정말 아무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면도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두빛 바람’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처럼 운명을 막을 갑옷은 없고, 속담에 팔자도망은 독 속에 숨어도 안 된다고 했지요. 하지만 인간은 주어진 환경을 개척할 수는 있습니다. 인생의 최우선적 가치는 성공이나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행복입니다. 시골장터 이발소 주인이 하루에 느끼는 소박한 기쁨, 행복의 질과 양은 재벌이나 대통령에 비해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아요. 인생을 보다 많이 느끼고 사랑을 나누며 재미있게 살다가 죽을 때 주변사람들에게 내 행복에 동참해 주어서 감사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가장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거주하고 있는 ‘봉학마을’도 소설로 형상화됐는데 무슨 내용인지요.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절반은 농부, 절반은 소설가로 살아가는 내용이죠. 좋은 사람을 상당히 여러 명 알게 되었고, 텃세를 부리는 사람도 한두 명을 만나 겪게 되는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는 농촌마을의 일상생활입니다.

두 개의 극명한 삶을 살아왔잖아요. 범법자였던 과거의 삶과 작가로서의 새 삶을 살고 있는 현재의 삶 말이죠. 후자의 삶을 위해 은둔적 공간을 찾다가 서울에서 낯선 광주로 이주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삶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새 삶은 이미 30년 전에 시작한 것이니 과거는 이미 아득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지요. ‘연두빛 바람’에 제가 은둔생활을 하게 된 구절이 나와 있습니다. ‘하늘아래 헛되지 않은 것이 없거늘 내 무엇을 더 바라고 꽤 번잡한 도시에서 살겠는가. 바람 불어서 파도 잔잔한 때 없고 하늘 울어서 비 아니 오는 날 없는 것. 고요한 마음의 정원을 가꾸어야 할 소설가로서 바람 불고 하늘 우는 일이 지천으로 깔린 도시는 더 이상 싫다.’
이곳에서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현재는 매우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영화사상 중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실미도’의 원작자로 유명하신데요. 본인에게 ‘실미도’는 어떤 의미입니까.
수십 년 동안 묻혀 있던 사건을 취재할 때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고 다닌다는 정보기관의 경고와 협박을 받았고, 전화도청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은행계좌 추적도 있었고요. 저는 실미도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 그곳이 군사통제구역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건현장을 꼭 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비 내리는 가을 밤 몰래 숨어들어가다가 바위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고비도 넘겼어요.
그렇게 완성된 소설 속의 실미도 기간병은 영화에서보다 훨씬 잔혹하게 훈련병들을 대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100억 이상을 투자하는데 생존해 있는 기간병들의 반발로 상영에 지장이 생길까 봐 소설처럼 적나라하게 묘사하지 못하더군요. 저로서는 훈련병의 억울한 원혼을 후련하게 달래주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첫 자전적 장편소설 ‘대도’ 역시 40만부가 판매됐을 만큼 큰 반향을 얻었는데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저는 소설을 쓰기 전 2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는 쉬운 말을 사용하며 나만의 문학적 표현과 묘사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쓴 관념적 현학적인 문구나 단어는 쉬운 말로 고치거나 아예 삭제했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정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부끄럽고 손가락질을 받을 짓을 했더라도 자전소설이 정직하지 못하다면 독자는 눈치를 챌 것이며 공감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제가 전과자로서 개심(改心)은 했지만 나오지도 않는 참회의 눈물을 소설 속에 억지로 삽입시키지 않았던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혼자 넘어진 아이는 울지 않죠. 고아인 주인공은 양자로 들어간 집에서 끔찍한 아동학대를 받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숱하게 넘어졌지만 좌절하지 않았고, 씩씩하게 일어서며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밝은 세상에 나오는 모습이 어느 정도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소설에 인용된 상말 속담 중에는 ‘화투와 개는 뒤가 잘 붙어야 하고, 싸움과 소설은 시작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똑같은 사실이라도 어느 것을 먼저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달라집니다.
저는 부산 사하경찰서 강력반형사들에게 체포되어 잔인한 고문을 당하는 장면으로 소설을 시작했죠. 독자들은 똑똑하고 신사적(?) 범죄자(금고털이)이며, 지지리도 더러운 운명을 타고난 주인공이 부당한 고문으로 철저하게 부서지는 모습에 측은지심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독자)는 소설의 주인공보다 훨씬 좋은 환경을 타고 났다는 안도감과 우월감은 처음부터 심정적으로 주인공과 같은 편을 만들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결국 작가 자신의 삶과 환경에 대한 기록적 성격이 짙은 작품들이다보니 지금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이 두렵고 어두운 세계의 내용이 많이 드러나는데요. 작품 분위기에 변화를 시도해볼 생각은 없습니까?
공동묘지에 가면 밤마다 귀신들이 모여서 서로 자신의 사연부터 들어보라며 싸운다고 합니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만리장성이고, 삼국지 열권이지요. 저는 자전적 얘기 외에 가진 것이 없고, 힘이 없어 부당한 권력에 속절없이 죽음을 당해야 했던 의붓국민, 좁쌀인생들의 억울한 영혼을 달래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신다면요.
거창한 욕심이지만 ‘세계범죄추리소설’에 명작으로 꼽힐 만큼의 훌륭한 소설을 한편 남기고 싶습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기를 희망합니까?
‘축복받지 못한 생명으로 태어났으나 마침내 행복했던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전라도인 admin@jldin.co.kr
이 기사는 전라도인 홈페이지(http://www.jldin.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