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은 ‘마음’…상차림에 우리네 ‘삶’ 있어" 광주무형문화재 제17호 기능보유자 최영자 박세라 기자·사진=최기남 기자 |
| 2017년 03월 07일(화) 1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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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음식’ 보다 진한 연(連)을 맺은 게 있을까. 귀빠진 날에는 푸짐한 생일상을 받고, 잔칫날에는 떡을 나눠 먹으며 기쁨을 함께한다.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땐 물 한 잔이라도 정성껏 떠 올렸고, 액운을 막는다 하여 붉은 팥으로 죽을 쒀 먹는 날도 있다.
요즘에야, 패스트푸드니 레토르트 식품이니 하는 음식들이 ‘간편식’이란 이름으로 널리 퍼져있지만, 정성껏 차린 ‘따순 밥상’엔 여전히 우리네 삶과 또 혼이 깃들어 있다.
광주는 음식 맛 좋다는 ‘미향’으로도 불린다. 바로 전라도 손맛을 잇는 야무진 명인들을 여럿 둔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최영자 명인은 남도의례음식장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7호 기능보유자다.
광주 명문가로 손꼽히던 탐진 최씨 가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남도 음식을 접하게 됐다.
"아버지가 종손이셨어요. 장손집안이라 대소사가 많았죠. 일이 있을 때 마다 우리 집으로 친척들이 모이시니까, 전통음식을 자주 접하게 된 거죠.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고모가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어요. 정식으로 조리 학원을 다니거나 그런 건 아니고 삶 속에서 터득한 것들이에요."
그때부터 ‘손 야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소질이 있었던 탓인지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하고 수 십 번상을 차려도 힘들다기 보다는 즐겁다는 생각이 앞섰다.
음식에 마음이 이끌려 결혼 후에 고모를 따랐다. 최 명인의 고모는 남도전통음식의 대가로 꼽히는 고 이연채 선생이다. 이연채 선생은 70여 년 간 대표적인 의례음식인 폐백·제사 음식 등의 명맥을 이어온 명인이다. 최 명인은 늘 고모 곁에서 음식 하는 것을 돕고, 배우는 일종의 후계자 역할을 도맡았다.
본격적으로 고모 손맛을 이어 ‘의례음식’을 시작하게 된 건 고모의 손맛을 그리워하던 지인들의 권유 덕이다. 이연채 선생의 뒤를 잇고, 남도의례음식의 명맥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책임의식도 그를 이끌었다.
"자연스럽게 음식의 길로 들어섰죠. 고모님에게 배울 때 혼날 때도, 또 서러울 때도 있었지만 행복하게 했어요. 사람 먹는 것을 다룬다는 게 ‘어둔 맘’으로는 되지 않거든요. 고모님이 정말 깐깐하셨는데, 제가 차린 상 보면 또 흐뭇해 하셨죠. 늘 차린 상을 내놓을 때, 부끄럽지 않게끔 정성을 드리려고 노력하죠."
기나긴 노력 끝에 최 명인은 2002년 12월 남도의례음식 부문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 17호 기능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최 명인이 연구와 계승에 몰두하고 있는 ‘의례음식’이란 개인의 성장과정과 함께 행해지는 인생의 ‘통과의례’ 때 받는 상차림을 말한다.
출산·백일·돌·성년식·혼례·환갑 그리고 제사상까지.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다. 인생의 전환점 마다 받는 한 상이니만큼 그 뜻도 의미도 남다르다.
먼저 출산 전과 후의 상차림도 다르다. 출산 전에는 생쌀과 생미역 그리고 정화수 한 그릇을 차린다. 순산을 기원하는 의미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출산 전 상차림 그대로 쌀밥과 미역국을 끓여 올린다.
100일에는 백설기를 쪄 100명의 사람과 나눠먹고 첫 생일을 맞은 돌에는 떡, 수수경단, 붉은 팥이 차려지고 ‘돌잡이’ 물건이 함께 펼쳐진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혼례상’인데, 혼례상에는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숭어’다.
"숭어는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는 ‘살생’을 하지 않는다고 해요. 혼례상에 숭어가 올라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평화롭게 잘 살라 하는 의미가 담겨있죠. 물고기 중에서도 참 양반이라, 제사상에도 제일 우선으로 올라가는 생선입니다. 그리고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를 올리고, 쌀·목화·팥 세 가지를 함께 차립니다. 쌀은 식을, 목화는 주를 팥은 액운을 막는다는 뜻이 있죠"
의례음식 중 가장 푸진 상은 바로 ‘환갑상’이다. 백일상·돌상·성년상·혼례까지, 지금껏 부모가 자식에게 베푼 상이었다면, 환갑상은 자손들이 부모에게 선사하는 첫 상인 셈이다.
이처럼 의례음식은 음식 이상의 가치라 녹아있다. 삶의 가치·옛 선인들의 풍습·예법 등이 고루 갖춰진 상차림이다.
"의례음식을 누군가는 허례허식으로, 불필요한 의식이라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것은 전통이에요. 그리고 마음이고요. 자신의 처지에 맞게 가장 정성껏 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상을 차리는 것은 의식이지만, 그 상 안에 무엇을 담느냐는 정성과 차린이들의 마음이거든요."
정성 다음으로 중요한 게 ‘솜씨’라 한다. 같은 재료로, 똑같이 조리해도 음식 맛이 각각 다른 것은 바로 ‘손맛’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최 명인의 ‘손맛’은 알아줬다. 누룩을 빚어 반죽을 치댈 때도, 꼭 최 명인이 담당했다. 반죽을 발로 꾹 꾹 누르면 되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한다.
"아무것도 아닌 듯 하지만 타고난 솜씨가 중요하죠. 누룩을 반죽하는데 솜씨 없는 사람이 하면 ‘꼬랑내 나 못 먹는다’ 했어요. 제가 하면 술맛이 좋다하고요. 옛말에 손이 따뜻한 사람이 음식을 맛있게 잘한다 했는데, 제 손 좀 만져 봐요. 참 따숩죠?"
타고난 손맛에 싱싱한 재료만 고집한다 하니, 그 맛 안 봐도 짐작이 간다. 실제 최 명인이 손맛 다음으로 쳐주는 것이 식재료다. 남도가 음식 맛 좋기로 유명한 이유가 바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나는 싱싱한 식재료 덕분이라는 게 명인의 생각이다.
"우리 전라도는 바다도 가깝지, 강도 좋지, 산도 좋지 모든 식재료가 싱싱할 수 밖에 없어요. 재료가 좋아야 음식 맛이 제대로 나오거든요. 음식이란 게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재료가 없으면 제 맛이 안 나거든요. 꼭 싱싱한 식재료로 만들어야, 건강에도 좋고 맛도 으뜸이죠."
이처럼 남도의 좋은 음식 맛이 후대에 기리기리 남는 것이 최 명인의 바람이다. 그가 농성동에 남도의례음식연구소를 설립, 사라져가는 의례음식의 명맥을 잇는 것도 바로 이를 위해서다.
특히 최 명인의 야무진 손맛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는 딸 이은경씨도 어머니와 한 길을 걷고 있다. 이 씨는 최 명인의 애제자 중에서도 애제자다. 어려서부터 늘 어머니를 도우며 의례음식을 배워온 그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지나 다름 아니다.
"의례음식이 오죽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어려서부터 엄마를 많이 도와줬어요. 자식들 중에서도 가장 손이 야물었고요. 결국 제 뒤를 이어 이수가자 되더니, 지금은 저를 넘어선 것 같아요. 타고난 손맛에다 젊으니까 감각도 뛰어나고요. 사라져가는 의례음식을 딸이 이어받았으니, 저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쁘죠."
최영자, 이은경 모녀가 농성동 연구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하는 요리 강좌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의례음식이라 하여 어렵고 까다로울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모녀는 실생활에 필요한 요리법은 물론, 전통음식에 깃들어 있는 다양한 스토리를 풀어내어 수강생들의 만족도도 높다.
특히 어떤 탁월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자세를 공유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음식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믿음에서다.
"의례음식이 존재했다는 것은 음식에서 ‘예(禮)’를 찾았다는 겁니다. 중요한 행사에서 예를 다해 음식을 올리고, 이를 나눠 먹으며 감사함을 전했던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음식 또한 마찬가지죠. 좋은 것이 있으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맛보고, 기쁨을 함께하고요. 음식은 영양분을 흡수하고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가치가 담겨있습니다. 음식을 차리고, 상에 둘러 앉아 먹는다는 것은 결국 행복이거든요. 음식을 통해 전해져 오는 가치가 대대손손 이어지는 게 저의 남은 꿈입니다."
△최영자 명인은
-제1회 남도음식대축제 폐백음식 강의
-YWCA 광주여성인력개발센터 강의
-남도음식 재현 전시회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 지정
-한국전통음식연구소 페백음식 출강
-서울세계음식박람회 ‘남도통과의례상차림’ 출품 지도?금상?장관상 수상
-한국전통음식관광협회 우수지도자상 수상
-호남대학교 조리과학과 전통음식 출강
-남도향토음식박물관 전통음식 강좌 출강
요즘에야, 패스트푸드니 레토르트 식품이니 하는 음식들이 ‘간편식’이란 이름으로 널리 퍼져있지만, 정성껏 차린 ‘따순 밥상’엔 여전히 우리네 삶과 또 혼이 깃들어 있다.
광주는 음식 맛 좋다는 ‘미향’으로도 불린다. 바로 전라도 손맛을 잇는 야무진 명인들을 여럿 둔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최영자 명인은 남도의례음식장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7호 기능보유자다.
광주 명문가로 손꼽히던 탐진 최씨 가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남도 음식을 접하게 됐다.
"아버지가 종손이셨어요. 장손집안이라 대소사가 많았죠. 일이 있을 때 마다 우리 집으로 친척들이 모이시니까, 전통음식을 자주 접하게 된 거죠.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고모가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어요. 정식으로 조리 학원을 다니거나 그런 건 아니고 삶 속에서 터득한 것들이에요."
그때부터 ‘손 야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소질이 있었던 탓인지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하고 수 십 번상을 차려도 힘들다기 보다는 즐겁다는 생각이 앞섰다.
음식에 마음이 이끌려 결혼 후에 고모를 따랐다. 최 명인의 고모는 남도전통음식의 대가로 꼽히는 고 이연채 선생이다. 이연채 선생은 70여 년 간 대표적인 의례음식인 폐백·제사 음식 등의 명맥을 이어온 명인이다. 최 명인은 늘 고모 곁에서 음식 하는 것을 돕고, 배우는 일종의 후계자 역할을 도맡았다.
본격적으로 고모 손맛을 이어 ‘의례음식’을 시작하게 된 건 고모의 손맛을 그리워하던 지인들의 권유 덕이다. 이연채 선생의 뒤를 잇고, 남도의례음식의 명맥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책임의식도 그를 이끌었다.
"자연스럽게 음식의 길로 들어섰죠. 고모님에게 배울 때 혼날 때도, 또 서러울 때도 있었지만 행복하게 했어요. 사람 먹는 것을 다룬다는 게 ‘어둔 맘’으로는 되지 않거든요. 고모님이 정말 깐깐하셨는데, 제가 차린 상 보면 또 흐뭇해 하셨죠. 늘 차린 상을 내놓을 때, 부끄럽지 않게끔 정성을 드리려고 노력하죠."
기나긴 노력 끝에 최 명인은 2002년 12월 남도의례음식 부문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 17호 기능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최 명인이 연구와 계승에 몰두하고 있는 ‘의례음식’이란 개인의 성장과정과 함께 행해지는 인생의 ‘통과의례’ 때 받는 상차림을 말한다.
출산·백일·돌·성년식·혼례·환갑 그리고 제사상까지.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다. 인생의 전환점 마다 받는 한 상이니만큼 그 뜻도 의미도 남다르다.
먼저 출산 전과 후의 상차림도 다르다. 출산 전에는 생쌀과 생미역 그리고 정화수 한 그릇을 차린다. 순산을 기원하는 의미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출산 전 상차림 그대로 쌀밥과 미역국을 끓여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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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에는 백설기를 쪄 100명의 사람과 나눠먹고 첫 생일을 맞은 돌에는 떡, 수수경단, 붉은 팥이 차려지고 ‘돌잡이’ 물건이 함께 펼쳐진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혼례상’인데, 혼례상에는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숭어’다.
"숭어는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는 ‘살생’을 하지 않는다고 해요. 혼례상에 숭어가 올라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평화롭게 잘 살라 하는 의미가 담겨있죠. 물고기 중에서도 참 양반이라, 제사상에도 제일 우선으로 올라가는 생선입니다. 그리고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를 올리고, 쌀·목화·팥 세 가지를 함께 차립니다. 쌀은 식을, 목화는 주를 팥은 액운을 막는다는 뜻이 있죠"
의례음식 중 가장 푸진 상은 바로 ‘환갑상’이다. 백일상·돌상·성년상·혼례까지, 지금껏 부모가 자식에게 베푼 상이었다면, 환갑상은 자손들이 부모에게 선사하는 첫 상인 셈이다.
이처럼 의례음식은 음식 이상의 가치라 녹아있다. 삶의 가치·옛 선인들의 풍습·예법 등이 고루 갖춰진 상차림이다.
"의례음식을 누군가는 허례허식으로, 불필요한 의식이라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것은 전통이에요. 그리고 마음이고요. 자신의 처지에 맞게 가장 정성껏 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상을 차리는 것은 의식이지만, 그 상 안에 무엇을 담느냐는 정성과 차린이들의 마음이거든요."
정성 다음으로 중요한 게 ‘솜씨’라 한다. 같은 재료로, 똑같이 조리해도 음식 맛이 각각 다른 것은 바로 ‘손맛’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최 명인의 ‘손맛’은 알아줬다. 누룩을 빚어 반죽을 치댈 때도, 꼭 최 명인이 담당했다. 반죽을 발로 꾹 꾹 누르면 되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한다.
"아무것도 아닌 듯 하지만 타고난 솜씨가 중요하죠. 누룩을 반죽하는데 솜씨 없는 사람이 하면 ‘꼬랑내 나 못 먹는다’ 했어요. 제가 하면 술맛이 좋다하고요. 옛말에 손이 따뜻한 사람이 음식을 맛있게 잘한다 했는데, 제 손 좀 만져 봐요. 참 따숩죠?"
타고난 손맛에 싱싱한 재료만 고집한다 하니, 그 맛 안 봐도 짐작이 간다. 실제 최 명인이 손맛 다음으로 쳐주는 것이 식재료다. 남도가 음식 맛 좋기로 유명한 이유가 바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나는 싱싱한 식재료 덕분이라는 게 명인의 생각이다.
"우리 전라도는 바다도 가깝지, 강도 좋지, 산도 좋지 모든 식재료가 싱싱할 수 밖에 없어요. 재료가 좋아야 음식 맛이 제대로 나오거든요. 음식이란 게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재료가 없으면 제 맛이 안 나거든요. 꼭 싱싱한 식재료로 만들어야, 건강에도 좋고 맛도 으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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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남도의 좋은 음식 맛이 후대에 기리기리 남는 것이 최 명인의 바람이다. 그가 농성동에 남도의례음식연구소를 설립, 사라져가는 의례음식의 명맥을 잇는 것도 바로 이를 위해서다.
특히 최 명인의 야무진 손맛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는 딸 이은경씨도 어머니와 한 길을 걷고 있다. 이 씨는 최 명인의 애제자 중에서도 애제자다. 어려서부터 늘 어머니를 도우며 의례음식을 배워온 그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지나 다름 아니다.
"의례음식이 오죽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어려서부터 엄마를 많이 도와줬어요. 자식들 중에서도 가장 손이 야물었고요. 결국 제 뒤를 이어 이수가자 되더니, 지금은 저를 넘어선 것 같아요. 타고난 손맛에다 젊으니까 감각도 뛰어나고요. 사라져가는 의례음식을 딸이 이어받았으니, 저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쁘죠."
최영자, 이은경 모녀가 농성동 연구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하는 요리 강좌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의례음식이라 하여 어렵고 까다로울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모녀는 실생활에 필요한 요리법은 물론, 전통음식에 깃들어 있는 다양한 스토리를 풀어내어 수강생들의 만족도도 높다.
특히 어떤 탁월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자세를 공유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음식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믿음에서다.
"의례음식이 존재했다는 것은 음식에서 ‘예(禮)’를 찾았다는 겁니다. 중요한 행사에서 예를 다해 음식을 올리고, 이를 나눠 먹으며 감사함을 전했던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음식 또한 마찬가지죠. 좋은 것이 있으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맛보고, 기쁨을 함께하고요. 음식은 영양분을 흡수하고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가치가 담겨있습니다. 음식을 차리고, 상에 둘러 앉아 먹는다는 것은 결국 행복이거든요. 음식을 통해 전해져 오는 가치가 대대손손 이어지는 게 저의 남은 꿈입니다."
△최영자 명인은
-제1회 남도음식대축제 폐백음식 강의
-YWCA 광주여성인력개발센터 강의
-남도음식 재현 전시회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 지정
-한국전통음식연구소 페백음식 출강
-서울세계음식박람회 ‘남도통과의례상차림’ 출품 지도?금상?장관상 수상
-한국전통음식관광협회 우수지도자상 수상
-호남대학교 조리과학과 전통음식 출강
-남도향토음식박물관 전통음식 강좌 출강
박세라 기자·사진=최기남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