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은 곧 시대상…‘상차림’의 美 이어 갈 것" 민경숙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 박세라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
| 2017년 08월 31일(목) 1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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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음식이 푸진 곳, 늘 잔칫날 같던 곳에서 그가 자랐다.
한 말의 떡이 필요하면 나눌 몫을 계산해 세말의 쌀을 불려 떡을 쪘고, 아침마다 막걸리를 걸렀다. 밭일·논일 나가는 마을 사람들 누구라도 들러 배를 채웠고 지나는 새 마저도 들어와 무언가를 집어먹었다 하니, 그 후한 인심 말 안 해도 알겠다.
민경숙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이 ‘음식명인’이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화순 여흥 민씨 집안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농사를 지었는데 규모가 커서 쌀이며, 콩이며 늘 곡식이 흔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민 명인의 할아버지는 베풀기 좋아하는 양반이었다. 할아버지는 그의 어머니께 "나 죽어서 제사 잘 지내려 하지 말고, 살았을 때 동네잔치 한 번 더 하자" 했다. 할아버지 생신날은 그야말로 잔치가 벌어졌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마을 사람들이 할아버지 생신날을 기억할 정도였다 한다. 민 명인은 그야말로 ‘음식의 세계’에서 나고 자랐다.
"솜씨가 좋았던 어머니께 음식을 배웠죠. 우리 어머니 생각하면, 늘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계셨던 게 떠올라요. 대소사가 많은 집안이라 힘에 부치셨을 법도 한데 딸 다섯에게 손을 안 벌리셨어요. 저도 음식에 관심이 있으니 도우려고 해도, 시집가서 일 하게 될 것이니 하지 말라고 말리셨죠. 딱 옆에 세워두시고는 지켜보게 하셨어요.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보고 자란 것이 내 평생 삶이 될 줄 몰랐죠."
본격적으로 음식을 배우게 된 것은 결혼하고서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폐백음식 수업을 하는 곳이 나왔다. 오징어를 오려내 솜씨를 내는 것이 민 명인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방송국으로 전화를 해서 수업 받는 곳을 찾아냈다. 당시에 광주는 의례음식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당장, 서울로 음식을 배우러 다녔다.
새벽밥 먹고 서울로 갔는데, 한편으론 허탈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이유는 "강의에서 배우는 레시피가 다 ‘우리 집’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 어깨너머로 익히고, 직접 요리를 하면서 몸소 배웠던 것이 그때 두드러졌다. 음식을 배우러 다니다가, 강의 좀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선생님’이 됐으니 민 명인의 손이 얼마나 야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부대끼며 음식을 배우고 강의를 하면서 ‘폐백 이바지’ 음식에 푹 빠졌다. 전통음식이야 그 종류가 수 가지지만 민 명인은 음식의 꽃은 폐백 이바지 음식을 꼽는다.
"폐백 이바지음식은 손이 정말 많이 가는 만큼 화려하고 정성이 듬뿍 담겨있어요. 뿐 아니라 혼사는 대사잖아요. 사돈 앞에 처음으로 내놓는 음식. 친정엄마가 딸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마음가짐이 음식에 고스란히 얹어져 있죠."
칼로 깎고·가위로 모양내는 게 일인 폐백 이바지는 손재주가 빼어난 그에게 딱 알맞았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자수를 놓아도, "교편 잡은 이래 이렇게 잘하는 학생은 처음 본다"는 칭찬을 들었다.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잘했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2014년 민 명인은 광주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 기능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정성 담은 상차림에다, 야문 손맛까지 더해진 그의 음식이 무형문화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화려한 손재주를 가진 민 명인이지만, "음식은 머리로 하는 것"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음식을 만들 때야말로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레시피가 참 잘 돼있죠? 계량도 쉽게 표현되고요. 레시피 대로 하면 중간 이상은 할겁니다. 하지만 저는 음식을 가르칠 때 레시피 보고 하는 걸 못하게 해요. 레시피를 펼쳐놓고 하는 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완전히 숙지해야하죠. 그 후에 머리가 명령을 내리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옳아요. 그냥 하는 것 하고 생각하면서 하는 것의 결과물은 또 다르죠."
정성이니, 생각이니 해도 음식 맛을 좌우하는 것은 ‘식재료’를 꼽는다. 특히 한국의 전통음식의 깊은 맛은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로 살려내는 것에서 나온다. 때문에 계절에 맞는 제철음식을 먹는 것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 좋은 식재료를 구했다면 음식 맛의 80점은 확보한 셈이다. 여기에다 적당한 ‘간’이 들어간다면 금상첨화일터.
그의 손을 거친 음식들은 ‘남도의 맛’ 그리고 나아가 ‘한국의 맛’을 알리는 데 활약하고 있다. 특히 자신 있다는 백김치는 지난해 6월 광주에서 열린 제7차 아셈(ASEM) 문화장관회의 만찬장에서 이슈가 됐다. 담백하니 맵지 않은데다, 아삭한 식감이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또 그의 주특기는 떡과 술이다. 광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떡 개발을 위해 무등산 수박을 주재료로 한 떡을 선보이기도 했고, 녹두누룩으로 빚은 청주를 내놓아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민 명인은 남도의례음식 무형문화재로서 제 역할에 최선을 다 해왔다. 전통음식을 지키고, 알리고, 전수하는 데 앞장섰다.
또 폐백 이바지 뿐 아니라 출산·백일·돌·환갑·제사상까지 인생의 전환점마다 차리는 의례음식 상차림 연구에도 몰두했다. 그에게 의례음식이란 음식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라 해야 마땅하다는 그의 철학이 엿보인다.
"삶에서 음식이 가장 앞선 것 아닌가요? 제가 음식을 하는 사람이라서 일지 모르겠지만 음식이 가져다주는 즐거움, 밥상머리에서 오고가는 대화들, 음식을 나누면서 얻는 행복감 등 음식은 단순한 식(食) 그 이상이죠. 음식은 한 시대의 문화이자, 시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의례음식이 허례허식으로 치부돼 간소화되는 것이 안타까운 그다. 사회가 변하면서 문화 또한 변하는 것이 이치라지만, 전통 문화의 ‘뿌리’는 살아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옛 조리서들을 읽어보면 조상들의 삶과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어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절기에 맞는 음식을 먹었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음식의 맛을 냈죠. 지금 이 시대에 적용시켜도 손색없는 조리법이에요. 이처럼 전통음식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굉장히 커요. 옛 것만 고집하자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모태는 보호해야 하다는 것이죠."
그의 시각에서 폐백 이바지는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다. ‘음식’을 매개로 또 하나의 연을 맺는 일이기 때문. 그래서 그의 이바지 음식은 ‘완성된 형태’로 전해진다. 이바지 음식은 날 것 그대로 보내는 게 전라도의 특징인데, 식구들이 모여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익힌 상태로 가는 것이다.
"이바지란 단어의 본 뜻은 일에 도움을 주거나 힘을 바쳐 보태는 것을 말하죠. 이바지 음식도 똑같아요. 혼인으로 맺은 새로운 가족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부부가 평화롭게 잘 살라는 메시지도 담겨있거든요."
앞으로도 그는 음식과의 ‘연’을 더 깊이 이어갈 계획이다. 민 명인이 요즘 주목하는 것은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소통하는 일이다. 전통문화가 그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들과의 교류가 과제이기 때문.
"아이들이 일상에서 전통음식을 만들어보고 맛볼 수 있는 장을 열고 싶어요. 전통문화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전통음식에 담겨져 온 한 시대의 가치·정성·문화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죠. 그게 제 꿈이자 짊어져야 할 생의 몫이 아닐까요?"
한 말의 떡이 필요하면 나눌 몫을 계산해 세말의 쌀을 불려 떡을 쪘고, 아침마다 막걸리를 걸렀다. 밭일·논일 나가는 마을 사람들 누구라도 들러 배를 채웠고 지나는 새 마저도 들어와 무언가를 집어먹었다 하니, 그 후한 인심 말 안 해도 알겠다.
민경숙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이 ‘음식명인’이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화순 여흥 민씨 집안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농사를 지었는데 규모가 커서 쌀이며, 콩이며 늘 곡식이 흔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민 명인의 할아버지는 베풀기 좋아하는 양반이었다. 할아버지는 그의 어머니께 "나 죽어서 제사 잘 지내려 하지 말고, 살았을 때 동네잔치 한 번 더 하자" 했다. 할아버지 생신날은 그야말로 잔치가 벌어졌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마을 사람들이 할아버지 생신날을 기억할 정도였다 한다. 민 명인은 그야말로 ‘음식의 세계’에서 나고 자랐다.
"솜씨가 좋았던 어머니께 음식을 배웠죠. 우리 어머니 생각하면, 늘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계셨던 게 떠올라요. 대소사가 많은 집안이라 힘에 부치셨을 법도 한데 딸 다섯에게 손을 안 벌리셨어요. 저도 음식에 관심이 있으니 도우려고 해도, 시집가서 일 하게 될 것이니 하지 말라고 말리셨죠. 딱 옆에 세워두시고는 지켜보게 하셨어요.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보고 자란 것이 내 평생 삶이 될 줄 몰랐죠."
본격적으로 음식을 배우게 된 것은 결혼하고서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폐백음식 수업을 하는 곳이 나왔다. 오징어를 오려내 솜씨를 내는 것이 민 명인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방송국으로 전화를 해서 수업 받는 곳을 찾아냈다. 당시에 광주는 의례음식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당장, 서울로 음식을 배우러 다녔다.
새벽밥 먹고 서울로 갔는데, 한편으론 허탈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이유는 "강의에서 배우는 레시피가 다 ‘우리 집’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 어깨너머로 익히고, 직접 요리를 하면서 몸소 배웠던 것이 그때 두드러졌다. 음식을 배우러 다니다가, 강의 좀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선생님’이 됐으니 민 명인의 손이 얼마나 야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부대끼며 음식을 배우고 강의를 하면서 ‘폐백 이바지’ 음식에 푹 빠졌다. 전통음식이야 그 종류가 수 가지지만 민 명인은 음식의 꽃은 폐백 이바지 음식을 꼽는다.
"폐백 이바지음식은 손이 정말 많이 가는 만큼 화려하고 정성이 듬뿍 담겨있어요. 뿐 아니라 혼사는 대사잖아요. 사돈 앞에 처음으로 내놓는 음식. 친정엄마가 딸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마음가짐이 음식에 고스란히 얹어져 있죠."
칼로 깎고·가위로 모양내는 게 일인 폐백 이바지는 손재주가 빼어난 그에게 딱 알맞았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자수를 놓아도, "교편 잡은 이래 이렇게 잘하는 학생은 처음 본다"는 칭찬을 들었다.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잘했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2014년 민 명인은 광주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 기능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정성 담은 상차림에다, 야문 손맛까지 더해진 그의 음식이 무형문화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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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손재주를 가진 민 명인이지만, "음식은 머리로 하는 것"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음식을 만들 때야말로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레시피가 참 잘 돼있죠? 계량도 쉽게 표현되고요. 레시피 대로 하면 중간 이상은 할겁니다. 하지만 저는 음식을 가르칠 때 레시피 보고 하는 걸 못하게 해요. 레시피를 펼쳐놓고 하는 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완전히 숙지해야하죠. 그 후에 머리가 명령을 내리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옳아요. 그냥 하는 것 하고 생각하면서 하는 것의 결과물은 또 다르죠."
정성이니, 생각이니 해도 음식 맛을 좌우하는 것은 ‘식재료’를 꼽는다. 특히 한국의 전통음식의 깊은 맛은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로 살려내는 것에서 나온다. 때문에 계절에 맞는 제철음식을 먹는 것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 좋은 식재료를 구했다면 음식 맛의 80점은 확보한 셈이다. 여기에다 적당한 ‘간’이 들어간다면 금상첨화일터.
그의 손을 거친 음식들은 ‘남도의 맛’ 그리고 나아가 ‘한국의 맛’을 알리는 데 활약하고 있다. 특히 자신 있다는 백김치는 지난해 6월 광주에서 열린 제7차 아셈(ASEM) 문화장관회의 만찬장에서 이슈가 됐다. 담백하니 맵지 않은데다, 아삭한 식감이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또 그의 주특기는 떡과 술이다. 광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떡 개발을 위해 무등산 수박을 주재료로 한 떡을 선보이기도 했고, 녹두누룩으로 빚은 청주를 내놓아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민 명인은 남도의례음식 무형문화재로서 제 역할에 최선을 다 해왔다. 전통음식을 지키고, 알리고, 전수하는 데 앞장섰다.
또 폐백 이바지 뿐 아니라 출산·백일·돌·환갑·제사상까지 인생의 전환점마다 차리는 의례음식 상차림 연구에도 몰두했다. 그에게 의례음식이란 음식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라 해야 마땅하다는 그의 철학이 엿보인다.
"삶에서 음식이 가장 앞선 것 아닌가요? 제가 음식을 하는 사람이라서 일지 모르겠지만 음식이 가져다주는 즐거움, 밥상머리에서 오고가는 대화들, 음식을 나누면서 얻는 행복감 등 음식은 단순한 식(食) 그 이상이죠. 음식은 한 시대의 문화이자, 시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의례음식이 허례허식으로 치부돼 간소화되는 것이 안타까운 그다. 사회가 변하면서 문화 또한 변하는 것이 이치라지만, 전통 문화의 ‘뿌리’는 살아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옛 조리서들을 읽어보면 조상들의 삶과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어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절기에 맞는 음식을 먹었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음식의 맛을 냈죠. 지금 이 시대에 적용시켜도 손색없는 조리법이에요. 이처럼 전통음식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굉장히 커요. 옛 것만 고집하자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모태는 보호해야 하다는 것이죠."
그의 시각에서 폐백 이바지는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다. ‘음식’을 매개로 또 하나의 연을 맺는 일이기 때문. 그래서 그의 이바지 음식은 ‘완성된 형태’로 전해진다. 이바지 음식은 날 것 그대로 보내는 게 전라도의 특징인데, 식구들이 모여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익힌 상태로 가는 것이다.
"이바지란 단어의 본 뜻은 일에 도움을 주거나 힘을 바쳐 보태는 것을 말하죠. 이바지 음식도 똑같아요. 혼인으로 맺은 새로운 가족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부부가 평화롭게 잘 살라는 메시지도 담겨있거든요."
앞으로도 그는 음식과의 ‘연’을 더 깊이 이어갈 계획이다. 민 명인이 요즘 주목하는 것은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소통하는 일이다. 전통문화가 그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들과의 교류가 과제이기 때문.
"아이들이 일상에서 전통음식을 만들어보고 맛볼 수 있는 장을 열고 싶어요. 전통문화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전통음식에 담겨져 온 한 시대의 가치·정성·문화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죠. 그게 제 꿈이자 짊어져야 할 생의 몫이 아닐까요?"
박세라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