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색 쪽빛, 세상을 물들이다

[남도명인] 자연 쪽염색 ‘한길’ 정관채 장인
대학 때 받은 쪽씨 키워 전통 쪽염색 ‘부활’
재배부터 숙성·발효까지 삼복더위에 작업해
"쪽빛은 지극정성의 빛…'청출어람’ 이뤄지길"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19년 02월 24일(일) 16:40
(2019년 2월호·제69호) 짙고 푸르면서도 붉다. 해수면에 일렁이는 파도 빛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의 하늘색이 바로 ‘쪽빛’이다. 푸르름부터 붉음까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한꺼번에 품고 있어 존귀하고도 오묘하다.
그 좋다는 컴퓨터 그래픽도, 최첨단 기술력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한다는 귀한 색 쪽빛. 오직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는 쪽빛을 내기 위해 평생을 땀 흘려온 이가 있다. 대학시절, 운명처럼 ‘쪽’과 연을 맺은 뒤 40여년 한 길을 걸어 온 염색장 정관채(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씨가 그 주인공이다.
나주시 다시면에 자리한 염색장정관채전수관에서 그를 만났다. 반가이 악수를 건네는 그의 손은 역시 쪽빛이다. 얼핏보면 크게 멍이 든 것도 같아 "손에 든 물은 안 빠지나봐요"
묻자 "쪽빛이 이렇게 좋은 것이다"며 웃는다.
그의 인생에 쪽빛이 들어온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다. 목포대 미대에 다니던 그에게 박복규 교수는 쪽씨 하나를 전해준다. 염료식
물인 ‘쪽’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세상이 자꾸만 편리해지면서 ‘자연의 색’들은 그 모습을 감춰갔던 것이다.
"화학염료가 나오면서 자연염색은 대가 끊겼었죠. 쪽은 한국전쟁 전후로 완전히 이 땅에서 사라졌었어요. 저에게 전달된 쪽씨는
민족문화 복원에 힘썼던 예용해 선생에게 얻은 것이었어요. 한 움큼의 쪽씨였지만 아주 무겁게 느껴졌어요. 조선의 색 ‘쪽빛’을 되살려 보라는, 간단치 않은 과제였음을 알아챘던 것이죠."
그에게 쪽이 전달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로 탯자리 때문이다.
정 장인의 고향인 나주 영산강변은 예부터 쪽을 많이 길렀다. 그의 선친들도 모두 쪽염색을 했다. 강변에서 빨래를 하는 것도 같았던 염색하던 날 풍경이 정 장인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다.
"영산강은 굽이굽이 흐르는 강이라서, 홍수에 아주 취약했어요. 들은 넓은데 허구헌 날 물난리가 나는 통에 어려움을 겪었죠. 그렇게 홍수 나는 곳에 대체작물로 심은 것이 쪽이었어요. 쪽은 줄기마디 마디에 뿌리가 있어서 물에 잠겨도 살아있죠. 나주는 전국에
서 쪽이 가장 많이 생산됐고, 수많은 장인들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한 ‘피’가 흐르는 곳에서 나고 자랐던 저에게 바로 이 쪽이 온 것입니다."
그렇게 쪽씨를 뿌린 것은, 순전히 사명감이었다. 대가 뚝 끊긴걸 재현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맨땅의 헤딩이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는 농부의 아들이었고 또 미술학도였다.
"쪽빛은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색이예요. 고려시대 불경을 필사해 놓은 ‘사경’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종이를
쪽으로 물들였기 때문이죠. 나마저 외면한다면, 조선의 쪽빛은 완전히 사라지겠구나 싶었죠. 어디서도 흉내낼 수 없는 이 쪽빛을 버리는 일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쪽씨를 뿌리면서 결심했어요. 내가 ‘쪽쟁이’의 길을 가야겠다고."
쪽빛을 얻기 위해 우선 할 일은 쪽을 잘 길러내는 일이다. 그는 3월이면 쪽을 심는다. 봄내 길러 6월에 수확한다. 꽃이 피기 전에
수확해야만 좋은 빛을 얻어낼 수 있다 한다. 더위가 시작되는 7월부터가 가장 바쁜 시기다.
"쪽풀을 항아리에 넣고 물을 채워요. 이틀을 꼬박 두면 잎과 줄기가 썩으면서 부글부글 넘쳐 흐르죠. 잎은 뭉그러져서 미끌거리
고 냄새도 아주 고약합니다. 이때 물은 파란빛이 아니라 초록이에 요. 이 초록물을 쪽빛으로 만드는 게 바로 석회(굴)입니다."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삼복더위에 ‘고문’과도 같은 작업이 남아있다. 바로 장작에 불을 지펴 굴 껍데기를 가루로 만드는 일이다. 장장 이틀간 불을 떼면 굴 껍데기가 분필가루처럼 고와진다.
가루를 쪽물이 든 항아리에 넣고 30분간 힘차게 저어내면, 서서히 쪽빛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녹색에서, 청록색으로 이내 푸르른 쪽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할 수 밖에 없어요. 이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그 원재료인 쪽보다 더 푸릅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나음을 일컫는 말 ‘청출어람’의 뜻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죠."
초록 잎·줄기에서 푸르른 쪽빛을 빼내는 일이란, 이렇게 고되고 까다로운 일이다. 쪽의 생장 상태, 석회 가루를 넣는 양 등에 따라 그 결과물이 확연히 달라진다. 하나부터 열까지 지극정성을 들이는 이유다.
여기서 끝난게 아니다. 숙성·발효 과정이 남아있다. ‘잿물’을 넣은 후 한 달 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흔히 자연 염색이라고 해서
떠올리는 것, 이를테면 파란 물에 하얀 천을 주물 주물 한 뒤 색을 빼는 체험은 진짜 자연 염색 과정의 10분의 1도 아니었던 것이다.
"진절머리가 날 때가 왜 없겠습니까. 더운 여름에 불 앞에서 해야 하는 작업은 숨이 턱턱 막힐 만큼 고된 일입니다. 그런데 딱 그 시기, 삼복더위 안에 해야 하는 일이예요. 때를 놓치면 물이 다 죽어버려요. 물감을 만들면서 목에서 쓴 내가 세 번은 나야 해(年)가 넘어가요. 저에겐 1년 농사와 같은 것이죠."
실제 고등학교 미술교사인 그의 손은 여느 농사꾼 부럽지 않다.
까이고, 데이고, 손이 성할 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한 과정 끝에 만나는 쪽빛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가슴 뛰게 한
다. 얼른 담갔다 빼면 백색과도 같은 은은한 빛이, 이를 여러 번 반복하면 짙고 푸르른 감청색이 나온다. 화학염료로는 절대로 낼 수 없는 빛이다.
"쪽빛은 여러 물질들이 모여서 이뤄낸 것이라 귀합니다. 이 색도 같고, 저 색도 같고. 보면 볼수록 깊이가 있죠.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것이 자연 염색의 매력이고요. 이 색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옷을 해 입혀서 바라보는 그 행복은, 남들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죠. 무엇보다 이 눈앞의 쪽빛이 천년이 간다고 생각하면 쪽 염색하길 잘했다 싶어요."
정 장인은 쪽빛을 ‘정성의 빛’이라 호명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지극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귀한 쪽빛을 얻을 수 없음을, 40여년 세월 속에서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남은 꿈은 이 귀한 쪽빛에 오랜 생명력을 비추는 일이다.
처음 쪽씨를 받아들었던 그 때의 사명감을 정 장인은 끝내 내려놓지 않은 것이다.
"천년을 잇는 조선의 색, 자연에서 얻어낸 유일무이한 쪽빛을 더 빛나게 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는 전통자연염색을 올곧이 이어갈 후학들이 많이 나와야합니다. 내가 했던 시대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서 쪽빛의 영롱함을 전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초록 잎
에서 나온 그 쪽빛이 더욱 푸른 것처럼. 저를 거뜬히 넘어설 ‘청출어람’이 펼쳐지길 간절히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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