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美 금속에 녹여 "삶을 데우는 ‘온기’ 전하고 싶어요" [남도명인] 유영선 금속공예 명인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19년 04월 28일(일) 1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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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제71호=박세라 객원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셀 수 없는 망치질, 그리고 정성스러운 땜질이 계속돼야 한다. 네모진 금속이 둥근 볼로 모양을 잡아가기까지 끝없는 분투가 필요하다. 흡사 ‘반복 노동’과 같다. 허나 딴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고루 고루 일정한 힘이 가해져야만 태초 둥글었다는 듯 매끄럽게 잘 빠진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금속공예품은 보기엔 화려하나, 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여간 녹록찮다. 반짝이면서도 가볍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고고한 아름다움은 이 같은 고됨의 결과물일 것이다.
지난 3월14일 담양 담빛거리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로 금속공예 명인 유영선씨를 만나러 갔다. 공방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엔, 빨간 외관이 매력적인 ‘해드리움’ 공방이 있다. ‘해가 드리운다’는 뜻을 담았다는 공방 안으로는 반가운 아침햇살이 훅 하고, 쏟아져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진열장에 놓인 유 명인의 작품들이 먼저 눈길을 끈다. 요즘 옻칠에 푹 빠져있다고 하더니, 은 찻잔에다 ‘옻’을 더한 찻잔 세트가 멋스럽다. 그 옆으로는 목걸이·반지·팔찌·브로치 등 여심을 자극하는 액세서리 소품들이 저마다 빛을 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에는 30여년 금속공예 한 길을 걸어온 그의 시간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제가 조선대 미대 85학번이에요. 당시에는 응용미술학과에서 참 다양한 것들을 했죠. 1~2학년 때부터 도자기·금속·목공예·섬유·염색 등을 두루 해보고 3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도록 했어요. 처음 금속공예를 하던 날, 너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바로 ‘아 이게 내 길이다’ 싶었죠."
그를 ‘홀릭’하게 한 것은 금속의 재미난 성질이었다. 금속은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늘어나는 성질을 가졌다. 두드리고 때리고 또 내리치는 과정에서 평면이던 금속은 둥근 그릇도 되고, 오목한 컵 모양이 되기도 했다. 원래 꼼지락 거리면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그에게 딱 맞는 작업이었다.
그 길로, 유 명인은 충장로 5가로 향했다. 당시에도 그곳엔 금은방이 많았는데, 한 곳 한 곳 상점 문을 노크하고 다녔다. 용건은 "저 일 좀 배우게 해주세요"라는 것이었다.
"조대 안에 금속공예를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없었습니다. 가르침은 고사하고 금속공예 작업을 위한 시설이 하나도 안 돼 있던 때였어요. 금은방에 찾아가서 일을 하면서 또 금속과 관련한 전반적인 일들을 배우고자 했던 것이죠. 그때 한 곳에서 광주 귀금속공예 부문 제1호 명장인 고경주 선생님을 소개시켜줬어요. 고 명장님은 옛 구동체육관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저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주며 세공을 가르쳐 주셨죠."
그렇게 금속공예에 발을 디딘 그는 졸업 후, 상경했다. 미처 더 배우지 못한 금속공예에 대한 목마름 탓이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귀금속디자인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그는 ‘지역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잘 만들려고 해도, 제 작품이 자꾸 촌스럽게 느껴지는 거예요. 어떤 ‘벽’에 부딪히는 것만 같았죠. 이를 깨기 위해 진짜 열심히 살았어요. 틈만 나면 박물관, 미술관 등 전시를 보러 다녔고 도서관에서 책도 참 많이 읽었죠. 많이 보아야만 자신만의 것을 내놓을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귀금속디자인 공부에 몰두하던 유씨는 ‘보석’에도 관심을 두게 된다. 보석을 모르고서는 귀금속디자인에 한계가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대학원에는 휴학계를 내고, 미국보석감정연구소(GIA·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에 입학, 보석 감정·감별 전문가 과정과 장신구 디자인 과정을 각각 수료했다.
"금속공예를 알면 알수록 더 넓고 깊은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았어요. 미적 시각을 높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것을 배우면 저것도 배워야 했죠. 덕분에 2년이면 마칠 대학원 과정을 4년에 걸쳐 마치게 됐어요. 그러면서도 늘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자연’과 가까운 디자인이었습니다."
금속공예라고 해서 반짝이고 화려할 것만 같지만 그의 작품은 오히려 담백하다. 복잡하지 않아서 더 오래 시선이 머문다. 금속이 주는 따뜻함이라니 더 신선하다.
그의 초기작 ‘주전자’는 콩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몸체 부분은 콩 한 톨의 모양과 같이 오목하고, 뚜껑은 콩에서 새싹이 발아한 것처럼 묘사됐다.
"자연적인 소재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입니다. 자연과 가까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을 디자인하죠. 인위적지 않은, 자연적인 느낌이 정말 좋아요. 이것을 ‘금속’이란 것에 녹여냈을 때 더 묘한 매력이 느껴지고요. 제가 담양에 터를 잡게 된 것 또한 그러한 미적 감각을 살려보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죠. 그게 또 인연이 돼 요즘에는 대나무 뿌리를 활용한 소품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어요."
그는 은으로 만든 찻잔에다, 대 뿌리를 접목시켰다. 항균성이 뛰어난 은이지만 열전도율이 높아 손잡이 부분까지 금속으로 만들기는 어려웠는데, 대나무 뿌리로 이를 대체하자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차 도구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은 옻칠 잔’ 또한 마찬가지다. 은을 감싸는 나무에 옻칠을 했고, 여기에 아름다운 색감을 입혀냈다.
그의 작품은 한없이 우아하나, 그 과정은 고되다. 간이 작업 테이블에 놓인 망치·펜치·드라이버·가위 등 크기별로 꽂혀 있는 공구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금속을 수 없이 두드려 오목하게 만들고, 또 끝없는 ‘줄질’(땜질)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손가락 마디 마디 관절이 성한데 없는 것도 바로 이 탓이다. 유 명인이 금속공예의 제1의 덕목으로 ‘끈기’와 ‘인내심’을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임신했을 때 딱 1년만 쉬었어요. 그 외엔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냈죠. 지금도 저는 1년에 한번 ‘전국공예품대전’에 출품합니다. 사람들이 이제 그만 낼 때도 되지 않았느냐 물으시는데,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인다는 것은 제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고, 삶의 원동력이기도 해요. 올해도 5월 대전에 낼 작품을 준비하고 있죠."
유 명인은 여전히 공부 중이다. 올해부터는 민화를 배우러 다니느라 바쁘다.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민화에다, 유리질을 녹여 붙이는 금속공예기법 ‘칠보’를 접목해 볼 생각이다. 그의 귀한 작품들은, 추후 2년여 준비 과정을 거친 후 20여 년 만에 여는 개인전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편안함을 주는, 마음의 여유를 선사하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금속 공예는 아무래도 기능적인 섬세함에서 완성도가 올라가요. 금속이란 재료 자체가 예민한 것이기 때문이죠. 이 ‘기능’에다가 어떤 디자인을 입혀볼까 고민하는 것이 가장 행복해요. 화려하고 복잡한 것 보다는, 작품의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위안과 평안함을 찾을 수 있도록 디자인하죠. 차가운 금속에서 삶을 따뜻하게 데우는 ‘온기’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지난 3월14일 담양 담빛거리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로 금속공예 명인 유영선씨를 만나러 갔다. 공방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엔, 빨간 외관이 매력적인 ‘해드리움’ 공방이 있다. ‘해가 드리운다’는 뜻을 담았다는 공방 안으로는 반가운 아침햇살이 훅 하고, 쏟아져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진열장에 놓인 유 명인의 작품들이 먼저 눈길을 끈다. 요즘 옻칠에 푹 빠져있다고 하더니, 은 찻잔에다 ‘옻’을 더한 찻잔 세트가 멋스럽다. 그 옆으로는 목걸이·반지·팔찌·브로치 등 여심을 자극하는 액세서리 소품들이 저마다 빛을 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에는 30여년 금속공예 한 길을 걸어온 그의 시간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제가 조선대 미대 85학번이에요. 당시에는 응용미술학과에서 참 다양한 것들을 했죠. 1~2학년 때부터 도자기·금속·목공예·섬유·염색 등을 두루 해보고 3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도록 했어요. 처음 금속공예를 하던 날, 너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바로 ‘아 이게 내 길이다’ 싶었죠."
그를 ‘홀릭’하게 한 것은 금속의 재미난 성질이었다. 금속은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늘어나는 성질을 가졌다. 두드리고 때리고 또 내리치는 과정에서 평면이던 금속은 둥근 그릇도 되고, 오목한 컵 모양이 되기도 했다. 원래 꼼지락 거리면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그에게 딱 맞는 작업이었다.
그 길로, 유 명인은 충장로 5가로 향했다. 당시에도 그곳엔 금은방이 많았는데, 한 곳 한 곳 상점 문을 노크하고 다녔다. 용건은 "저 일 좀 배우게 해주세요"라는 것이었다.
"조대 안에 금속공예를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없었습니다. 가르침은 고사하고 금속공예 작업을 위한 시설이 하나도 안 돼 있던 때였어요. 금은방에 찾아가서 일을 하면서 또 금속과 관련한 전반적인 일들을 배우고자 했던 것이죠. 그때 한 곳에서 광주 귀금속공예 부문 제1호 명장인 고경주 선생님을 소개시켜줬어요. 고 명장님은 옛 구동체육관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저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주며 세공을 가르쳐 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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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금속공예에 발을 디딘 그는 졸업 후, 상경했다. 미처 더 배우지 못한 금속공예에 대한 목마름 탓이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귀금속디자인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그는 ‘지역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잘 만들려고 해도, 제 작품이 자꾸 촌스럽게 느껴지는 거예요. 어떤 ‘벽’에 부딪히는 것만 같았죠. 이를 깨기 위해 진짜 열심히 살았어요. 틈만 나면 박물관, 미술관 등 전시를 보러 다녔고 도서관에서 책도 참 많이 읽었죠. 많이 보아야만 자신만의 것을 내놓을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귀금속디자인 공부에 몰두하던 유씨는 ‘보석’에도 관심을 두게 된다. 보석을 모르고서는 귀금속디자인에 한계가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대학원에는 휴학계를 내고, 미국보석감정연구소(GIA·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에 입학, 보석 감정·감별 전문가 과정과 장신구 디자인 과정을 각각 수료했다.
"금속공예를 알면 알수록 더 넓고 깊은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았어요. 미적 시각을 높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것을 배우면 저것도 배워야 했죠. 덕분에 2년이면 마칠 대학원 과정을 4년에 걸쳐 마치게 됐어요. 그러면서도 늘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자연’과 가까운 디자인이었습니다."
금속공예라고 해서 반짝이고 화려할 것만 같지만 그의 작품은 오히려 담백하다. 복잡하지 않아서 더 오래 시선이 머문다. 금속이 주는 따뜻함이라니 더 신선하다.
그의 초기작 ‘주전자’는 콩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몸체 부분은 콩 한 톨의 모양과 같이 오목하고, 뚜껑은 콩에서 새싹이 발아한 것처럼 묘사됐다.
"자연적인 소재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입니다. 자연과 가까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을 디자인하죠. 인위적지 않은, 자연적인 느낌이 정말 좋아요. 이것을 ‘금속’이란 것에 녹여냈을 때 더 묘한 매력이 느껴지고요. 제가 담양에 터를 잡게 된 것 또한 그러한 미적 감각을 살려보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죠. 그게 또 인연이 돼 요즘에는 대나무 뿌리를 활용한 소품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어요."
그는 은으로 만든 찻잔에다, 대 뿌리를 접목시켰다. 항균성이 뛰어난 은이지만 열전도율이 높아 손잡이 부분까지 금속으로 만들기는 어려웠는데, 대나무 뿌리로 이를 대체하자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차 도구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은 옻칠 잔’ 또한 마찬가지다. 은을 감싸는 나무에 옻칠을 했고, 여기에 아름다운 색감을 입혀냈다.
그의 작품은 한없이 우아하나, 그 과정은 고되다. 간이 작업 테이블에 놓인 망치·펜치·드라이버·가위 등 크기별로 꽂혀 있는 공구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금속을 수 없이 두드려 오목하게 만들고, 또 끝없는 ‘줄질’(땜질)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손가락 마디 마디 관절이 성한데 없는 것도 바로 이 탓이다. 유 명인이 금속공예의 제1의 덕목으로 ‘끈기’와 ‘인내심’을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임신했을 때 딱 1년만 쉬었어요. 그 외엔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냈죠. 지금도 저는 1년에 한번 ‘전국공예품대전’에 출품합니다. 사람들이 이제 그만 낼 때도 되지 않았느냐 물으시는데,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인다는 것은 제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고, 삶의 원동력이기도 해요. 올해도 5월 대전에 낼 작품을 준비하고 있죠."
유 명인은 여전히 공부 중이다. 올해부터는 민화를 배우러 다니느라 바쁘다.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민화에다, 유리질을 녹여 붙이는 금속공예기법 ‘칠보’를 접목해 볼 생각이다. 그의 귀한 작품들은, 추후 2년여 준비 과정을 거친 후 20여 년 만에 여는 개인전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편안함을 주는, 마음의 여유를 선사하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금속 공예는 아무래도 기능적인 섬세함에서 완성도가 올라가요. 금속이란 재료 자체가 예민한 것이기 때문이죠. 이 ‘기능’에다가 어떤 디자인을 입혀볼까 고민하는 것이 가장 행복해요. 화려하고 복잡한 것 보다는, 작품의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위안과 평안함을 찾을 수 있도록 디자인하죠. 차가운 금속에서 삶을 따뜻하게 데우는 ‘온기’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