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주 편집장·문화특집부장

(2020년 7월호 제86호=고선주 기자)오늘날 제일 고생하는 신체 기관 중 하나는 귀일 것이다. 온갖 더러운 소리와 기계음들이 단 하루도 쉼없이 꽂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감염된 듯하다. 한층 더 사나워진 말들이 넘쳐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물질에 경도돼 수양과는 담을 쌓고 사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볼 일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옛 중국고사에 ‘허유세이’(許由洗耳)라는 성어가 있다. 굳이 풀이하자면 ‘더러운 말을 듣고 귀를 씻는다’는 의미다. 쉽게는 ‘허유가 귀를 씻다’이다. 허유는 중국상고시대(신화시대)에 태평성대를 펼쳤던 요 임금 때 숨어사는 선비로 알려져 있다.
허유의 절개와 지조를 들은 요 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이어받을 것을 제안했으나 허유는 수양하기 위해 은둔하는 것이지, 벼슬을 탐해서 은둔하는 것이 아니라며 거절한다. 이후 허유는 이런 제안이 자신의 귀를 더렵혔다고 생각해 냇가에 가서 귀를 씻는다. 이게 훗날 ‘허유세이’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이 ‘허유세이’로만 끝났다면 조금 심심했을 지 모른다. 허유도 대단하지만, 소부라는 인물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소부는 한술 더 뜬다. ‘수양하며 사는 자네(허유)가 어찌해 그런 제안을 받았느냐’고 일갈하며 교만을 암시한 탓에 요 임금이 그런 제안을 한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교만하지 않았으면 그런 제안 따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소부는 허유가 더러운 귀를 씻은 물을 자신의 소에게 먹일 수 없다며 그 보다 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물을 먹였다고 한다.
오늘날 부귀영화를 마다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 허유와 소부의 이야기는 심신 수양을 통해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암시한다.
이들이 자신들의 배만 채우기 위해 간사한 길을 걸었다면 오늘날 위정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전라도인’ 창간 7주년을 맞아 허유와 소부의 삶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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