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에서 피워낸 고려인 삶…기억하고 기려야죠"

(이사람)김병학 광주고려인문화관 ‘결’ 관장
카자흐스탄서 한글학교 교사로 가 25년 체류해
유물 1만여 점 모아 지난 5월 문화관 ‘결’ 개관
"항일·문화예술자료 전시·교육의 장 역할 할 것"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9월 28일(화) 16:43
(2021년 10월호 제101호=글 박세라 기자)

지금껏 일궈온 삶의 터전을 잃고, 낯선 곳에 떨궈졌을 때 그들이 느꼈을 절망감을 감히 헤아려본다. 생을 통째로 박탈당한 듯 했을 분노와 좌절은 모든 것을 놓아버렸을 것만도 같다. 허나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다시 그곳에서 논밭을 일궜고, 펜을 들었으며 문화예술의 꽃도 피워냈다.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의 최전선에서 맞서 싸웠다. 이런 고려인의 면면을 ‘바로’ 알리기 위해 애써 온 이가 있다. 고마움과 부채감, 같은 한민족으로서 최소한의 면목을 찾을 요량으로 주력해 온 일이다. 지난 5월 문을 연 광주고려인문화관 ‘결’ 관장 김병학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7일 아침 일찍 문화관에 들어서자, 단체 관람객을 맞고 있는 김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연신 "찾아줘 고맙고, 고려인에 관심을 가져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 틈을 타 문화관을 둘러봤다. 이곳은 김병학 관장이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25년여 간 체류하면서 모은 고려인 관련 역사문화자료를 한데 모아놓은 문화관이다. 고려인들의 삶과 문화, 또 항일운동 자료들이 섹션 별로 나뉘어 소개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기념 특별전을 마련해 화제를 모으기도 한 곳이다.
전시 소개를 마치고 돌아온 김 관장과 마주앉았다. 그에게 왜 지금, 우리가 고려인을 기억해야 하느냐 물었다. 김씨는 기다렸다는 듯 고려인들의 역사적 삶에 대해 술술 풀어갔다.
"오늘날, 고려인에 대한 인식은 대개 이주노동자로 여겨지고 있어요. 그로 인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이 당연히 존재하죠. 하지만 고려인들은 우리 민족 그 자체입니다. 오래전부터 이념적·지리적으로 멀리에 있어 사실 잊혀져 있었지만, 고려인들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오롯이 공유하고 있는 우리 민족이죠. 일제강점기, 조국을 지키기 위한 독립 무장투쟁, 만세운동, 계몽운동 등을 알게 되면 고려인들이 새로이, 다시 보일 겁니다."
실제 고려인들은 1920년대 즈음 46개 항일무장투쟁부대를 만들어 치열하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1만명의 고려인이 전투에 참여해 싸웠고, 그 중 2000여명은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민간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이다. 생의 불모지와 같은 땅에서도 고려인들은 항일 부대에게 전투물자·의복·식량 등 독립군들이 힘껏 싸울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왔다. 지난 2019년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가 독립군의 후손들이다"고 한 것도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 나온 말이다.
이와 함께 김 관장이 동경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고려인들이 꽃피워낸 문화예술의 열매들이다. 전쟁통 같은 삶 속에서도 이들은 모국어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한글로 문학작품을 썼고, 무대예술로 풀어냈으며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 한민족 최초의 모국어극장인 ‘고려극장’이 문을 열었고, 고려인들과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와 내년이면 설립 90주년을 맞는다.
"그 시절 극장이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활용됐었습니다. 고려인들 또한 생존을 위해 이념적인 연극작품을 올리기도 했죠. 허나 이와 함께 춘향전, 심청전, 수궁전 등 여러 창작품을 줄기차게 올렸고, 집성촌으로 순회 공연을 다니면서 고려인들의 문화를 수준 높게 이끌어왔습니다. 이들에게 문화예술은 강제 이주의 설움과 고단함을 잊기 위한 수단이었고, 모국어를 잊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죠."
김 관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튀어나와 놀라웠다. 그간 무심토록 고려인에 대해 몰랐구나 싶은 마음에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김 관장 역시 처음부터 고려인에 대한 동경과 소명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서서히 알아가게 되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고려인과 깊게 연을 맺은 것이다.


"알면 알수록, 바로 알려야겠다는 생각뿐이더라고요. 1992년 한글학교의 교사로 카자흐스탄에 첫발을 내디뎠고, 그곳에서 25년을 살다 왔습니다. 고려일보에서 일하면서는 더욱 깊이 있게 이들의 역사를 볼 수 있었죠. 신문사라는 게 정보들이 한 데 모이는 곳이잖아요. 이들 삶이 알려진 바 처럼 참 간단치가 않더군요. 이들의 역사적 흔적들을 제대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그대로 소멸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현지 곳곳에 남아있던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 문화관 ‘결’에 전시된 1만2000여점의 유물들이 그것들이다. 이주부터 정착까지. 고려인 150여 년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사진과 문서, 문화예술 자료 등이 전시돼있다. 고려인의 지리적·민족적 특성상 한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구하기 힘든 유일한 것들이다. 그가 아니었으면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귀한 유물들이다. 그중에서도 고려인 모국어 문화예술기록물은 지난해 1월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등재될 만큼 그 가치가 높다. 지정 기록물로는 고려인 1∼2세대 한글문학 작가의 육필원고 19권과 고려인 구전 가요를 수록한 창가집 원고 2권, 고려극장의 활동을 알 수 있는 사진첩 2권 등 23권이다. 특히 한진 작가의 희곡 작품 ‘폭발’은 고려인 집성촌에 다니며 순회공연을 올린 것으로, 문학 작품 중 유일하게 5·18을 다뤄 광주에도 큰 의의가 있는 것으로 꼽힌다.
김 관장은 이 같은 고려인들의 문화예술 기록들을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 시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어 주목된다.
"고려극장 설립 9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이곳 ‘결’에서 고려인이 남긴 문화예술을 이 시대에 걸맞는 문화예술콘텐츠로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희곡, 고려 가요, 무대 미술 등 고려인문화의 종합판인 것이죠. 또 현재는 인물들을 단편적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나아가서는 인물에 대한 ‘토크쇼’, 영상콘텐츠 상영회, 음악회 등 다양한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고려인의 숨결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벌여야 할 일은 많지만, 여건은 녹록잖은 게 사실이다. 더욱이 고려인들은 인류학적으로 소멸과정에 돌입, 멀지 않은 미래에는 역사적 기술로서만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더욱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시로서, 또 구호로서만 끝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고려인을 바로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고려인들을 위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 볼 때입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만 화려하게 하고 끝날 게 아니라 고려인들의 체류 여건이나, 후손들이 이곳에 뿌리내리고 싶다면 기꺼이 도와주는 등 실질적인 지원들도 이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이번 홍범도장군 특별전을 진행하면서, 문화관 ‘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 번 바로 세울 수 있었다.
"이곳에 방문한 많은 관람객들이 감사 인사를 전해줬죠. ‘고려인에 대해 참 몰랐다.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다른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어요. 그간의 세월이 값지구나 할 만큼 보람찬 순간이었죠. 고려인문화관 ‘결’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려인들이 우리 한민족이란 사실을 알리는 것, 자랑스러운 역사와 숨결을 제대로 전하는 것. ‘결’이 참된 역사 교육의 장, 기록의 장으로 제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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