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단순함이 ‘무기’…"인생사 희로애락 담죠"

화제의 인물(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보유자 된 박시양)
1980년 고법 입문해 올해 문화재로 이름 올려
소리꾼 감정 주목…담백함·강약 조절 힘 ‘강점’
제자 양성 주력 ‘전라도 말’ 주제 책 발간계획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9월 28일(화) 16:47
(2021년 10월호 제101호=글 박세라 기자)

"북은 참 단순 무식해요. 생긴 것도 연주기법도요."
40여 년 함께 해온 동반자에게 ‘단순 무식’이란 표현에도 서슴없다. 그의 호탕한 설명에 웃어버리자, 북을 매만지며 이야기를 잇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오히려 단순하기 때문에 그 안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단순한 악기라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고, 악기의 주법이 복잡해질수록 표현이 규정될 수 밖에 없다고. 오랜 시간 북을 연주했지만, 여전히 "참 어렵고, 참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지난 7월23일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보유자로 이름을 올린, 박시양씨 이야기다. 20대 청년 시절 북채를 쥐고, 국가무형문화재란 최고 영예에 오르기까지 40여년이 흘렀다. 문화재 지정 발표 날, 전화로나마 소감을 전한 그는 "덤덤하다"며 웃었다. 그 네 음절 사이 사이에는 그간의 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음은 당연한 일일 터다.
그가 고법(鼓法), 그러니까 북을 치는 연주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80년의 일이다. 지금도 대중들에겐 ‘고법’이란 게 익숙지 않은데, 당시엔 더욱 그랬다. 그저 국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노래하는 친구들의 반주를 맞춰주는 게 그의 특기였다. 장단을 맛깔나게 맞추니, 주변에서 권유도 잇따랐다. 그렇게 맺은 북과의 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제가 뭔가를 하면 정말 열심히 합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하는 타협점이 없다고 할까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기술적인 한계를 두고 보지 않아요. 당시엔 저도 아마추어 고수였겠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북을 쳤죠. 연주로 ‘밥벌이’를 하는 프로가 된 이후에도 변함없이 한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고법을 배운 것은 전남도립국악단에 입단, 1989년 김성래 전 보유자를 만나면서부터다. 2001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 전승교육사로 이름을 올리고, 전통 고법 전수에 힘을 쏟았다. 자신의 위치에서 늘 열정을 다 했던 그 걸음걸음이 모여 예인들의 최고 영예인 문화재로의 길에 당도한 것이다.
그의 장단은 담백함이 특징으로 꼽힌다. 기술보다는 잔가락을 쓰지 않으면서 ‘강약’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판소리 감정의 폭을 또렷하게 받쳐주는 방식이다. 고법의 역할로 ‘색깔 덧 씌우기’라고 말하는 그의 철학이 엿보이는 연주다.
"박자를 짚어주는 것은 고법의 기본 중의 기본 이론이죠. 소리꾼의 감정선을 확대시켜서 도드라지도록 만들어주는 게 좋은 북 장단입니다. 굳이 가락을 쓰지 않아도, 소리꾼과 하나 되는 강약 조절만 잘한다면 고수의 역할은 다한 것이죠. 절절한 슬픔을 노래하는 곳이거나, 적벽가에서처럼 강력한 힘을 자랑해야 하는 그런 곳 역시 북으로 연주하기엔 까다롭고 힘들지만 정말 재미있습니다. 소리는 단순하지만, 인생사 희로애락을 모두 담죠."
그는 절제를 고수의 중요한 자질이라 본다. 소리꾼의 소리에 함께 흥분해, 화려하게 장단을 치고 내려온 무대에서 그는 늘 후회를 했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다짐은 북채를 쥐면서 늘 아로새긴 말이다.
"북이라는 예술이 사실 잘 단련된 기술이라고 봅니다. 기술이기 때문에 한편으론 다 같은 것이지요. 북 장단이라는 기술보다는 소리를 더 깊이있게 이해해 한 호흡으로 가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기에 어찌 보면 무미건조한 기술일 수도 있겠죠. 판소리의 밀고, 달고, 맺고, 푸는 기술들을 정확히 짚어내 소리꾼의 소리를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게 제 역할이라 믿어요."
그가 추임새를 잘 넣지 않는 것도 이와 결이 같다. 많은 고수들은 소리꾼이 열창할 때 ‘얼씨구’, ‘좋다~!’ ‘잘한다’와 같은 말로 흥을 돋운다. 소리꾼에게 "잘하고 있다"는 응원의 말이기도 하고, 소리판의 흥을 한껏 끌어올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허나 박씨는 추임새가 적다는 지적을 받기도 할 만큼 자제한다. 한 번은 일산 김명환 선생에게 추임새 넣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야 이놈아! 추임새도 배운다냐"라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스승님이 ‘소리 잘해봐라. 추임새 안 나오는가’ 하시더라고요. 무대를 거듭할수록 그 말씀을 이해하게 됐죠. 고수가 북을 치면서 ‘직업적’으로 추임새를 하는 것보다 소리를 깊이있게 공유하면서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추임새가 나오는 것이더라고요."
그가 계획하고 있는 것 중 재미난 일이 있다. 바로 북 장단과 전라도 말의 연관성을 분석한 책을 내는 일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의 방향은 대개 장단의 구성 내용·이론에 집중돼 있다. 박씨는 일상에서 쓰는 어투와 장단의 흐름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본다. 이에 일상의 언어인 전라도 사투리와 북의 박자라는 것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장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일상의 언어와 견줘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어요. 장단을 어려운 말로 ‘고법’이라고 하는데 사실, 북을 치는 법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도록 재미있고 쉽게 쓸 생각이죠."
이와 함께 문화재에 오른 만큼 고법의 전승과 계승에 주력한다. 특히 대중에 사랑받는 고법, 또 판소리를 빛내주는 북 장단으로의 발전을 위해 문화재로서의 업과 의무에 충실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그는 고법이란 테크닉을 가르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정갈한 마음 자세를 함께 배워나가고 싶다.
"기술은 끝없는 연습과 공연 활동으로 늘 수 있지만 생활의 규범들은 배우고 가르치는 영역을 벗어난 것들입니다. 좋은 마음 자세를 가져야만, 바르고 좋은 연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저 역시도 함께 갈고 닦아나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현재 고향 함평에서 20여 년간 기획해온 꿈들을 펼쳐 나가고 있다. 2014년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악장을 끝으로 물러나,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통문화체험센터 ‘돌머리굿판’을 운영하고 있다.
‘돌머리굿판’은 폐교된 학교를 리모델링,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음악, 공연, 탈춤, 천연염색 등 우리의 귀한 전통문화를 몸소 배우고, 체험해볼 수 있는 교육의 장이다.
"어렸을 때 어떤 문화를 접하느냐가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 접한 것들은 평생 기억에 남거든요. 광주·전남의 여러 학교에서 직업 진로선택 프로그램이나 방과 후 활동 등으로 교육 요청이 많이 왔었죠.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는 잠시 쉬어가는 중이고요. 아이들에게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장으로서 더욱 커 나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꿈을 물었다. 단정한 모습으로 사는 게 바람이라는 소박한 답이다.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하면서 살았어요. 마음이란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채찍질을 해줘야만 올곧게 붙잡고 갈 수 있습니다. 여생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북과 함께 단정한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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