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되고 꿋꿋하게 열심히 하는 작가로 기억해줬으면"

남도예술인(‘맨드라미 화가’ 박동신)
‘맨드라미’ 그림 20여년 동안 지속…화가 자신의 삶 투영
7년전 오른손 마비 1년 동안 각고의 노력 왼손 그림 활동
"새 계획보다 몸 허락하는 한 좋은 그림 많이 그리고 싶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9월 28일(화) 16:53
(2021년 10월호 제101호=글 고선주 기자·사진 최옥수 대동문화 국장)

그는 광주화단에서 최단신(1m35㎝) 화가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럴 뿐 당당한 화가로서 자기 자리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다. 편견은 때로 진실을 가린다. 그림 작업에서 키는 그에게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그냥 보통 화가들처럼 전업의 자리에서 꾸준하게 작업을 펼친다. 15년전 미술행사장에 가면 제법 보이던 그의 모습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주 볼 수 없어 아쉽다. 건강이 그렇게 좋지 못해서다. 방문한 날 역시 어렵게 일정이 잡혀 가능했지만 막상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 대면한 그는 다소 불편한 이동을 감수하며 대화석상으로 옮겨와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작업실에는 온통 맨드라미 그림들이 널려 있었다. ‘맨드라미 화가’로 널리 알려진 전남 영암 출생 서양화가 박동신씨 이야기다. 그의 화실은 풍향동 금성맨션 앞 골목 단독주택 1층에 자리하고 있다. 2층 건물로 1층은 자신의 작업실로 사용하고, 2층은 보금자리로 쓰고 있다. 그가 이 작업실을 마련한데는 아파트를 활용했던 이전의 작업실이 너무 불편해서다. 2014년 매입해 이사온 지 벌써 7년째에 접어들었다. 2014년은 그에게 행복과 불행이 교차한 해로 기억된다. 오른손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오른손 잡이 화가가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됐으니 얼마나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을까 안봐도 직감이 된다. 그로부터 1년 동안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마등처럼 흘러간 시간들이지만 그는 왼손잡이로 변신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셈이다. 이런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던데는 아내와 딸이 큰 힘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집사람은 건강해요. 제가 집사람 때문에 살고 있는 겁니다. 집사람만 생각하면 하느님이 제게 보답을 해준 것 같다고 생각해요. 딸 아이는 춤추는 것을 좋아해요. 딸이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그리게 할 것입니다. 관심은 없는데 그림에 소질은 있어요."
잠시 집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작업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작업실에는 왼손으로 그렸을 맨드라미 화폭 4∼5점이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완성한 지 얼마되지 않아 보였다. 색감이 바싹 마르지 않아 보여서다. 화가들의 성격에 따라 작업실의 풍경이 바뀐다. 작가는 이미 수술받았던 오른발 무릎 고관절이 다시 고장나는 바람에 이동이 불편해 보였다. 바퀴달린 의자에 몸을 싣고 이동을 한다. 작업실에는 맨드라미 작품 외에 남포등과 풍로, 물레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런 물건들을 통해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듯 보였다. 그와 마주 앉아 작업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맨드라미를 빼놓고는 그를 이야기할 수 없기에 계속 맨드라미 대화를 이어나갔다. 사실 그를 ‘맨드라미 화가’로 부르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맨드라미 작업을 해온지 20여년이나 됐기 때문이다.



2008년 전시 때 밝힌 작가의 말을 잠시 근거로 삼아 소개하자면 이렇다. 그는 맨드라미를 애인으로 표현한다. 20년 동안 일관되게 작업의 모티브가 돼 주어서다. 그가 말한 맨드라미는 열정과 욕망의 화신, 생명의 꽃, 그리고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력이라는 것이다. 이 생명력이야말로 자신의 분신이자 정신적 지주라는 설명이다. 신비롭고 오묘한 형태, 환상적이고 장식적인 색채의 교향악적 울림과 새 색시처럼 황홀함이 은은하게 풍긴다. 정열과 황홀감, 색채의 매직이 맨드라미를 미치도록 그리게 만든다.
그러면서 자신의 회화를 규정한 대목이 나온다. 세월의 인고 속 붓끝에 피어나는 열정의 화신 맨드라미는 모든 인간의 감정에 다양한 향기를 넣기 위해 새로운 기법으로, 채색의 독특한 색감을 살리는 것이 자신의 회화라고 밝히고 있다. 아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과는 거리가 먼 맨드라미가 여름철 무더위 속에도 불구하고 점점 화려해지고 서리가 올 때까지 오랫동안 꿋꿋하게 열정을 꽃피우는 특성이 작가 스스에게 덧씌워진 한계를 극복하고 화가로서 자신의 독창적 세계를 끌어가는 것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맨드라미의 적임자 같은 생각이 인다.
현재 맨드라미는 작가를 표상하는 언어와 같은 존재다. 그렇다면 그에게 맨드라미는 어떻게 인연이 시작됐던 것일까. 보통 인연으로 치부하기에는 그의 화면 전부를 차지하고 있어서다. 화가들 누구나 자신이 소재로 선택한 물상에 대해 각별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있는 화가는 없을 터다. 그도 마찬가지다. 아예 삶의 진한 사연 한 토막이 투영돼 나온다.
맨드라미와의 인연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친 회갑 때 화단에 피어있던 맨드라미를 본 이후로 기억한다. 자기 것이 되려고 했는지 맨드라미를 본 순간 "몸에 전율이 일었다"고 한다. 느낌이 와서다. 풍경이나 정물, 안 그려본 게 없을 정도의 그이지만 평생의 주제가 찾아온 셈이다. 그러고 나서 맨드라미 작업은 20여년을 맞은 것이다.
그의 맨드라미에는 그저 화려한 꽃만이 다가 아니다. 그가 그려놓은 맨드라미에는 어머니와 아내, 딸이 내면에 숨겨져 있다. 몸이 불편한 아들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정화수를 떠놓고 달을 향해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고, 사랑스런 아내와 딸을 표상한 나비가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열정의 꽃말을 지닌 붉은 색채는 그의 내면을 반추한다.

작가에게 그림은 다른 화가들에 비해 좀더 운명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림은 제 삶이자 영혼이에요. 건강한 화가들에 비해 힘들고 한 것이 없겠는가마는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들과 똑같이 작업을 하는데 집중했죠. 행여 제가 나태해질까봐 그런 마음가짐과 자세로 임했어요. 그리고 다른 분야에 도전하기 보다는 아직도 맨드라미로 할 것이 많아 계속 맨드라미 작업을 해 나갈 겁니다. 아울러 다른 사람들이 저를 진실되고 꿋꿋하게 열심히 하는 작가로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처음 미술에 입문했다. 부모님은 미대보다는 약대 같은 곳에 진학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몸이 안좋으니 약사가 되면 몸 아픈데 맞는, 좋은 약을 제때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아울러 장남이어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도 그의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느덧 34회 개인전을 열었을 만큼 중견화가가 됐다. 미술은 좋아서 하는 것이라 지금 화가로서의 삶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좋은 그림을 언급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새로운 계획보다는 몸이 허락하는 한 좋은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몸이 더 아플까 봐 그림을 그만 그리라고 합니다. 신간 편하게 살라구요. 하지만 저는 계속 그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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