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최선 다해 글을 쓴 작가로 기억됐으면"

광주작가 신예 문학평론가 백애송
이성부 시 단일 주제 연구 1호 박사… 山詩에 매료
지난해 계간 ‘시와시학’ 평론·‘시와문화’ 시로 등단
"어떻게 하면 나은 글과 발전 가능한 글 쓸지 고민"

고선주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admin@jldin.co.kr
2017년 08월 31일(목) 16:59
광주는 몇년째 신예 작가의 출현에 목말라 있다. 광주 출신이지만 출향해 활동하는 작가 중 쓸만한 재목은 제법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옛부터 ‘문향’으로 일컬어지는 광주에 머물며 광주를 호흡하고, 척박한 문단 풍토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문학의 길을 걷고 있는 신세대 젊은 작가들이 있다.
아직 사십줄에도 들지 않은 이들 작가들은 어려운 창작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기꺼이 광주탈출이라는 기행을 삼가하고, 스스로 만국공통어로 생각하는 문학인의 길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연습을 벌이고 있다. 아장아장 한발 한발 발을 떼고 있는 셈이다. 유년시절부터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기어이 글쓰는 사람이 됐다.
그런데 글밭이 잘 닦여진 길이 될지, 가시밭길이 될지는 자신은 아직 모른다. 창작하고, 발표하는 수순을 남들처럼 밟아나갈 뿐이다.
지난해 박사학위 논문 한권이 주목을 받았다. 여름 언저리에서 받아본 논문이었는데 ‘봄’의 시인인 광주출신 이성부의 시세계를 분석한 논문이었다. 논문제목은 ‘이성부 시에 나타난 공간 인식’으로, 이성부 시인을 단일 주제로 연구한 1호 논문이었다. 주인공은 백애송씨였다. 광주대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까지 공부한 백씨와 이성부 시인의 직접적 인연은 없었다. 학부시절 이성부 시인이 대학을 방문해 강연을 할 때 먼 발치에서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학문이라는 것이 직접적 접촉도 중요하겠지만 지적 호기심을 잘 가다듬어 심층적인 연구와 분석을 만들어내고, 정확한 근거들을 학문적으로 검증하며 이를 잘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듯 백씨 역시 이성부 시인의 시에 나타난 공간들을 주도면밀하게 인내력을 가지고 정리한 것이다.
백씨에게 2016년은 개인적으로 아체쏘(acceso·붙타오르듯이) 같은 해가 아니었을까. 그의 인생향방에서 가장 굵직한 방점을 찍은 해로 기억되는 듯하다. 그해 2월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시와시학’ 여름호에 평론으로 등단한 데 이어 ‘시와문화’ 가을호에 시로 등단한다. 얼추 시를 쓰다가 평론을 쓰고, 평론을 쓰다가 시를 쓰는 형국이 아닌, 시와 평론 모두 제대로 절차를 밟아 등단한 것이다. 그는 애초 시를 써왔다. 2006년 대학원 재학 때 한 지역신문의 신춘문예에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상한 뒤 10년만에 계간문예지를 통해 재등단했다.
이런 그가 이성부 시를 논문으로 선택한데는 시인이 생전 발표했던 민중시와 생활시가 좋았지만 그보다 발표했던 산시(山詩)들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논문을 쓸때 시인의 부인과 딸과 통화를 했다고 한다. 생존 당시 뵙지 못한 것을 두고 두고 아쉬워했다.
평론가로 인식하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는 꾸준하게 시 창작에도 열심이다.
욕심 같아서는 시와 평론 두 장르를 다 하고 싶지만 주변에서는 하나만 잘 하라는 말들을 잊지 않는다고 전한다.
등단 전후의 생각에 대해 가감없이 들려줬다.
"자라면서 많이 읽고 그러지는 못했는데 글 쓰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됐습니다. 고등학교 문학소녀일 때 학교문집을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다 추억이 됐지만 등단 전후를 떠올려보면 무엇인가 제 글에 대한 책임감이 분명 생긴 것 같아요. 그동안은 습작했던 거구요. 지금은 지면에 실리니까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등단 이력만 놓고 보면 삼십대 중반이지만 그는 문단에서 풋풋한 새내기나 마찬가지나. 15년 전후의 습작기가 뒷받침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의 창작 모토는 다름 아니라 ‘나은 글’의 갈증이 가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나은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좀더 발전 가능한 글을 쓸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중진이나 원로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서툴 수는 있으나 논문과 시, 평론 쓰기를 오가며 창작여정을 보내고 있다. 다만 부단한 일상으로부터 파생되는 문학적 게으름은 그가 늘 경계하는 대목이다.
"강의를 하느라 책을 잡았다가 책을 놓았다가 하는 것이 반복되고 있죠. 꾸준하게 책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어요. 이것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예요. 제가 단단히 게으른 것이죠."
그는 단편적이고도 획일적인 글쓰기를 단호히 경계한다. 그것의 하나로 자신의 글쓰기 역시 메이저 출판의 것들만 우러러보거나 쫓을까봐 우려한다. 아직은 글재주라고 감히 말하기 어려우나 자신의 글쓰기가 온전히 너른 평야를 고르게 비추는 햇빛같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글쓰기의 방향에 대해 잊지 않았다. 메이저에서 나온 시집들은 자기들 자리가 보장되지만 거기 밖이나 지역에서 나오는 시집은 자리를 보장받기도 힘든 만큼 이런 시집들을 도외시하기 보다는 진중하게 바라보면서 조명하는 평론에 천착해볼 요량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선호하는 책들에 대한 견해도 한 토막 언급했다. 유명한 철학사상을 배경으로 한 글 보다는 사람의 마음으로 읽히게 되는, 품이 제법 넓은 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시보다도 시해설이 더 어려운 글들이 제법 있는데 이런 것을 지양하고 마음에 가닿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렇게 쓰게 되면 틀림없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될 것이라고 밝힌다.
"한 줄을 읽고도 그 사람의 마음이 읽혀지는 글을 써보고 싶어요. 진심이 느껴지는 글 말이죠."
1980년대생으로 문학보다 훨씬 더 호감이 가고, 관심이 가는 것이 많을텐데 문학을 선택했다고 하자 ‘아픔’을 꺼냈다. 아주 비참하고 비극적인 아픔이 아니라 세대의 아픔을 말했다.

"문학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어려움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공부와 생업을 병행하다 보니 어렵더군요. 기성 세대들도 저마다 아픔이 있듯 저희 세대도 일일이 다 말은 못해도 아픔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젊은 세대로서 예술의 침체가 깊은데 미래가 불안하지 않느냐 물었다. 그는 이에 대해 늘 불안하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그러나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극복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불안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사망의 과정은 전 세대에 걸쳐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문득 엄습해오는 불안을 극복하는 것은 의지이자 숙제로 받아들인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성부의 산시처럼 감각적 인시편들을 좋아한다. 이 시편들을 보면 나름대로 삶이 묻어있는 리얼리즘 시도 얼마든지 있는 듯 하다는 인식이다. 그렇다고 정해놓고 편식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식지 않고 따뜻한 글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제가 이제 출발점에 선 것이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참으로 따뜻한 글을 썼던 작가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마음으로 제 글을 읽고 평가를 해줬구나 하고 느끼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지금 입장에서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글을 쓴 작가로 기억되고, 기록되기를 바라죠."

고선주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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