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지승공예’ 개척 전파 "묵묵히 제 갈길 가겠다" [남도명인]한경희 광주공예명장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18년 05월 01일(화) 1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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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이 필자가 말하고 싶은 본론은 아니다. 이곳이 명소는 아니지만 명장으로 지정받은 3명이 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공방마다 그에 못지 않은 예능인들이 하루 하루 터전 삼아 광주공예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전 태권도 관장이라는 독특한 이력의 도자 분야 명장인 손동진씨를 취재하기 위해 빛고을공예창작촌에 들른 적이 있다. 그리고 공예명장을 만나기 위해 다시 이곳을 찾았다. 그리 낯설지 않아 좋았다. 창작촌 옆에는 풍물놀이를 발전시키고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놀이패 ‘얼쑤’가 자리하고 있어 따분하지 않다. 폐교를 활용해 얼쑤가 자리잡은데 이어 운동장 한켠에 창작촌이 들어선 것이다.
이곳에 또 다른 명장을 만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조형연구소 226호라는 명패가 달려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40여년 동안 한지를 손에서 놓지 않고 외길을 걸어온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광주 지승 분야의 독보적 존재로 평가받고 있는 한경희(59·대한민국지승보존회 회장) 광주공예명장이 그다. 2014년 광주시 명장으로 지정받은 그는 애초 공예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시절 교육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어느 공모전을 구경간 것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1980년 숙명여대 3학년에 재학하던 무렵 공예분야 최고 공모전이었던 동아공예대전 공모전을 구경갔다. 거기서 종이로 끈을 꼬아 그릇을 만드는 지승공예를 처음 접했다. 그것이 계기가 돼 그는 동아일보 문화센터에서 최초로 개설돼 운영중이던 지승공예 강좌를 듣게 된다. ‘노역개’로도 불리는 지승공예를 처음으로 익힌 것이다. 한지섬유디자인과 연관된 섬유디자인학이 개설, 운영 중이던 조선대 디자인대학원에 진학해 제도권 공부까지 마저 섭렵했다. 한지의 이론적 근거와 실기를 겸비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그는 이미 동아공예대전에서 입선 특선 동상 금상 대상과 광주전남디자인대전 전국공모전 대상 등 다수 수상하면서 두각을 보여왔다. 이것들은 오랜 시간 한지와 함께 해온 그의 공예인으로서의 이력을 엿볼 수 있는 증거들이다.
그의 한지공예에 대한 생각의 행간을 쫓아가 보면 40여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지를 떠나지 않고 살아올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만의 종이가 한지잖아요. 그 한지로 실을 꼬는 것으로부터 지승공예가 시작되는데 저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데 대해 동감합니다. 외국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것이 한지공예잖아요."
한지공예는 지호(紙戶) 지승(紙繩) 지화(紙畵) 지화(紙花) 후지(厚紙) 지장(紙裝) 색지(色紙) 등 여러 기법으로 분류된다. 종이(닥종이)를 잘게 찢어 죽을 만들어 골격을 만든 뒤 조금씩 붙여가며 하는 지호분야에는 오석심 광주시명장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중 한 명장의 주종목은 지승이다. 지승분야 명장으로 지정받은 뒤 광주디자인센터를 통해 지원을 받거나 디자인페어 또는 핸드메이드페어에 더 쉽게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작품 판매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지승공예로 한길을 가다보니 그에게서 지승공예를 배워간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전남대 평생교육원에서 17년간 강의를 했다, 수많은 제자들이 그의 손을 거쳐간 셈이다. 그래서 그의 보람은 광주지승공예를 개척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는데서 보람을 찾는다.
오늘날 지승분야 하면 공예계에서는 한 명장으로 통하지만 그에게 거대한 산같은 존재가 있다. 그분은 바로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충남무형문화재 2호 지승제조’라는 타이틀로 지승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최영준 명장이다. 그도 스승처럼 문화재로 지정받는 것이 꿈이다. 그가 스승과 인연을 맺게 된데는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한지공예 공모전이 전주에서 열렸는데 지승작품을 출품해 금상을 수상했다. 이때 최 명장이 젊은 사람이 지승을 한다고 해서 관심을 표명한 뒤 스승과 제자로 묶이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연을 그는 지금도 소중하게 여긴다.
지승을 하면서 틈틈이 인물작업을 시도할 계획이다. 닥종이 인형이 그것으로 양림동 인물을 지속적으로 작업할 생각이다. 다형 김현승 시인의 얼굴 작업은 마쳤다. 그의 공방 한켠에 놓여져 있다. 양림동 다형다방에 놓으려 했으나 그곳이 없어지면서 불가능해졌다. 차후 이강하 화가 등이 그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양림동 인물에 주목한데는 일전 양림미술관에서 열린 ‘양림’을 테마로 한 단체전에 참가하면서 인물이 새삼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또 그는 지승의 명맥을 잇는데 온힘을 기울일 각오다. 지승공예인들이 주축이 돼 ‘예지회’라는 이름으로 8년째 전시를 열어왔다. 2년마다 한차례씩 전시를 열어 왔으니까 벌써 전시를 시작한 지 16년째다. 해마다 지승공예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공예가 12명 안팎이 참여한다. 이 전시가 중요한 것은 지승공예의 주요 소비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지승공예 거래는 전시회 때 소장가나 애호가가 매입하는 방식이 많아요. 어쩌다 하나씩 팔리니까 작품 판매를 해서는 도저히 생활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데 말이죠. 그래서 지승공예의 상품화를 위해 고민하고 있는데 우선 브러치나 목걸이를 만들까 해요."
그는 지승공예가 더 활성화되고 생활방편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력이 덜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량생산을 통해 단가를 낮추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제품을 만들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반응이다.
"지승은 주로 배우는 층이 주부나 대학전공자들로 대학에서 섬유를 전공하거나 박물관학, 또 디자인 전공자들이 지승공예를 배우기 위해 찾아옵니다. 별도의 큰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집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전통보존을 한다는 측면은 좋은데 상품화가 미진한 것이 아쉽죠."
아울러 한지의 강점에 대해 잊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분명해 각 계절을 거치니까 닥이 강할 수 밖에 없어요. 동남아시아 닥은 한 계절밖에 안 거치니까 단단하지가 않죠. 펄프가 섞인 한지로는 종이를 접을 수 없습니다. 말면서 끊어져 버리죠. 우리 한지는 굉장히 강해요. 지승은 펄프가 섞인 것은 쓸 수가 없다고 보면 됩니다. 습기가 최대의 적이죠. 한지는 습하면 물기를 빨아들였다 건조하면 뱉어냅니다. 한지는 탄력이 있는데 작품적으로 무궁무진한 주제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년 제3회 지승공예 개인전을 예정하고 있다는 한경희 명장. 앞의 행간에서 문화재가 되고 싶은 꿈을 언급했는데 그것에 대해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지금보다 더 시간이 흐른 뒤 문화재로 지정받고 싶죠. 하지만 지금의 작업에 만족해요. 저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갈 겁니다. 더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는 게 지승공예이니까 문화재를 의식하지 않고 공예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할 거예요."

2026.10.24 (토) 11: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