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얼을 짓다…"한복은 내 운명"

남도명인(정인순 아리랑 주단 대표)
아홉 살 때 바느질 입문해 반 백 년 한 길
대한민국명장 올라…전통의복 재현 ‘주력’
"기술·스토리 이어 사랑받는 옷 만들 것"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1월 28일(목) 17:10
(2021년 2월호 제93호=글 박세라 기자. 사진 최기남 기자)

바늘과 실을 쥔 세월이 반백년이다. 500년 전 선조들의 의복을 고스란히 재현해 세상에 내놓았고, 그 옷들에서 찾은 지혜들은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 한복에 새겨 넣었다. 그의 바늘이 지나간 자리는 오색 실로 꿰어진 꽃도 되고, 나무도 됐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마음을 쏟아 옷을 짓고 나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꽉 찬 행복감을 느꼈다. 한복은 평생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라고 하는 정인순 ‘아리랑주단’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월7일 동구 한복의 거리에 자리한 ‘아리랑주단’을 찾았다. 쪽빛의 고운 한복을 차려 입은 정 명인이 반갑게 맞아준다. 한복의 고운 자태에 오래 시선을 두자, "옷 색이 너무 어두운가요?"라면서 묻는다. 남색 저고리·치마에 색새기 자수가 놓아져 기품이 느껴진다. "너무 아름답다"고 하자 한복보다 더 고운 웃음으로 화답한다.
정 명인은 2019년 대한민국 명장에 이름을 올린 한복명인이다. 그의 어머니는 집안 어르신들의 두루마기, 솜옷, 모시옷 등 손이 많이 가는 옷들을 지어 드릴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그런 어머니의 바느질을 어깨너머로 동경하던 정씨는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직접 바늘을 잡았다. 옷장에서 몰래 옷감을 꺼내와 만든 것이 속옷이었다. 그의 바느질 인생에 첫 작품인 셈인데, 가족들은 물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놀랄 정도였다.
잘하는 일을 찾은 그는 일찍이 진로를 정했다. 재능이 탁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1970년 광주시 가내공업센터에서 개최한 ‘공예품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업계에 주목을 받았다. 이어 ‘양귀비 한복’ 오성남 선생 아래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한복 짓는 일을 배웠다. 오 선생은 그가 바늘 잡는 ‘폼’을 보자마자 "어, 너는 하겄다" 했다. 그렇게 2년여 기초를 다진 정 명인은 김량근 선생이 운영하던 충장로 ‘대흥 한복’에서 10여년 일을 했다. 대흥 한복은 당시 광주에서 손꼽히는 한복집으로, 지역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옷을 도맡는 곳이었다. 정씨 말고도 직원들이 여럿 있었는데 콕 찝어 정 명인의 옷을 해 입기를 기다리는 단골들이 많았다. 그때 정씨 나이가 20대 중반이었다.
정 명인은 "처음에는 젊은 처자가 한복을 짓는다고 하니, 못 미덥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물을 받아보고선, 이후에 꼭 다시 나를 찾아왔었다"고 기억했다.
특히 그가 유명세를 탄 일이 있었는데, 바로 ‘벨벳 한복’을 만들어서다. 당시 독일산 벨벳 원단은 귀한 것으로, 부잣집의 안방마님들만이 한 두 벌 가질 수 있었다. 이 벨벳으로 한복을 짓는 일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벨벳 원단은 털이 길어서 재봉틀 작업을 했을 때, 천이 울기 십상이었다. 내공 깊은 선배 기술자들도 기피하는 원단이었다. 잘못했다가는 귀한 벨벳 값을 되레 물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정 명인은 벨벳을 잡고 한참 씨름을 했다. 어떻게 하면 바느질을 할 때 밀리지 않을 수 있을까 연구하다가 방법을 찾아냈다. 그가 멋스러운 벨벳 한복을 내놓자, 벨벳 저고리를 해 입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급기야 웃돈을 주고서 ‘대기’를 걸어두기까지 했다.
정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 옷을 해 입으시는 단골들이 계신다. 3대에 걸쳐서 오시는 분들도 있다"며 "지금까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공부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기품있는 한복의 테에다가 저만의 감각을 넣은 디자인으로 꼭 만족스러운 옷을 지어드리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그의 한복은 이 세상에 딱 ‘한 벌’ 뿐인 맞춤복이다. 입는 사람의 체형은 물론이고, 분위기나 이미지를 반영해서 정 명인이 손수 디자인을 넣어준다. 그는 "옷을 짓기 전에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면서 입는 분의 색깔을 살려내려고 한다. 자신과 ‘결’을 함께한 옷을 받았을 때 행복해 하시는 걸 보면 너무나 보람차다"고 말했다.
정씨는 옛 전통복식을 재현하는 일에 애정을 쏟아왔다. 선조들의 옛 옷을 보면 그 지혜에 탄복할 정도다. 색 배합, 구성, 실용성 등 굉장히 편리하면서도 선이 아름다운 의복들은 ‘과학적인 것 보다 더 과학적’이라 한다.
그는 "조선시대 남성 의복의 뒷면에는 ‘삼각무’를 달아놓아 옆자락이 트이도록 해뒀다. 움직임을 편하게 하고, 찢어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다"며 "저고리의 겨드랑이 부분에도 바탕색과 배색이 되도록 덧댄 ‘곁마기’를 만들어둬 장식적인 요소 뿐 아니라 ‘품’을 좁아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주어 더 날씬해 보이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그는 400년 전의 의복을 오늘 당장 입어도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다만 오늘날의 생활 구조가 서구화된 만큼, 전통 의복에 깃든 지혜들을 기반으로, 디자인들을 현대화 시킨다면 세계적인 의복의 탄생도 먼 일이 아니라고 꼽았다.
1999년에는 광주대 안명숙 교수와 공동으로 김덕령 장군의 옷과 그의 질부인 장흥임씨의 출토복식을 재현하는 작업을 벌였다. 충장사에서 전시돼 있는 옷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바느질을 했기에, 이다지도 정교할까’ 선망했었는데 결국 이를 복원할 기회를 가진 것이었다. 그 결과물로 그는 ‘제10회 평화예술대전’에서 공예부문 대상인 예술상(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전통복식에 대한 열정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2009년에는 건국대 디자인대학원으로 공부를 하러 다녔다. 새벽부터 바지런을 떨어, 첫차를 타고 오가는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너무 기뻤다"고 했다. 정씨는 침선을 이으며 "옛 여인들은 이 옷을 만들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을까"를 들여다봤다. 이런 그의 끝없는 도전과 열정, 배움에 대한 열망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지난해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반 백년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그의 인생을 위한 포상이었으리라.
여전히 정씨는 한복 만드는 것이 재미있다. 바늘을 잡을라치면, 벌써 마음이 정갈해진다. 몸에 습관이 배겨서다.
그는 "복잡한 마음을 가지면, 바늘이 먼저 안다. 아무리 반듯하게 실을 꿴다고 하지만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며 "근심이 있을지라도, 다 떨쳐내고 집중해야만 좋은 옷이 나올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한복을 찾는 이들도, 또 이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도 줄었지만, 정씨는 묵묵히 한 길을 가려 한다. 그간의 결실들을 모아 전시공간을 마련, 시민 누구나 둘러볼 수 있도록 꾸미는 것도 그의 또 다른 꿈이자 목표다.
정씨는 "한복은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의복이다. 한복이 가진 기술적 요소와 스토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내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옷으로 내보이고 싶다"며 "한복은 내 평생 친구이자, 내 운명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바늘을 놓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
회사소개회사연혁회원약관개인정보보호정책제휴문의고충처리인광고문의기사제보
광남일보 등록번호 : 광주 가-00052 등록일 : 2011. 5. 2.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광주 아-00193 등록일 : 2015. 2. 2. | 대표 ·발행인 : 전용준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254 (중흥동 695-5)제보 및 문의 : 062)370-7000(代) 팩스 : 062)370-7005 문의메일 : design@gwangnam.co.kr

본사이트에 게재된 모든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 의 사전 허가없이는 기사와 사진을 무단전재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