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주목…진정성 있는 작가로 기억되길"

남도예술인(서양화가 정정하)
전업주부로 지내다 7∼8년만에 화단 복귀 창작활동 활발
페인트 주재료…유리 시험관에 담아 에너지 기록 ‘독특’
"페인트 가게서 일, 밤에 주로 작업"…앞으로 비상 기대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8월 09일(월) 15:50
(2021년 8월호 제99호=글 고선주 기자)

그는 대기만성형 작가일까. 그의 작품을 근래 처음으로 접한 것은 지난해 2월13일부터 3월11일까지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유·스퀘어 청년작가 전시공모’ 선정작가로 마련된 개인전에서다. 그가 눈에 딱 들어왔던 것은 당시 출품된 몇몇의 작품들 때문이다. 매우 독창적 재료와 독특한 주제의식의 발현 및 그로부터 파생되는 미학적 자유로움 등이 이유이지 싶다. 그는 일반적 시각으로 보면 한때 경력단절을 겪었다.
IMF 이후 어려워진 것이 이유가 돼 바로 입학하지 못하고 동료들보다 늦게 대학에 입학했다. 조선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쳐온 것이 아니라 결혼과 육아, 가사 등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7∼8년 동안 창작을 떠나 있어야 했다. 창작적 나이를 더 뒤로 후퇴시킨 이유들로 보였다. 그에게 7∼8년의 휴지기는 오히려 창적적 자신감을 떨어뜨린 시간으로 작용했다. 그만큼 동료들보다 뒤쳐져 있다는 생각에 가장 친숙한 재료와 주제를 모색했다. 그런 덕분이었던지 분주한 활동이 이어졌고, 서서히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더욱이 잃었던 창작적 자신감까지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 그렇게 경력단절을 뚫고 나온 이후 2019년 갤러리 리채에서 늦깎이로 첫 개인전을 열면서 작가집단으로의 복귀 신호탄을 쐈다. 광주출생 서양화가 정정하(43)씨의 이야기다. 그를 만나기 위해 7월9일 오후 광주 남구 대남대로에 있는 페인트가게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작업실이 아닌, 노루표 페인트가게로 오라 해서 의아했지만 그 궁금증이 풀린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의 직장이 그곳이었다. 규모가 상당한 매장에서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은 실장이었다. 그런데 본인 부친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의 주요 재료 중 하나는 페인트다. 그는 여기서 돈을 벌어 재료를 구입하는 셈이다. 부친 가게에서 필요한 작업 재료를 얻는 관계로 그에게는 적합한 장소다. 그의 작업실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페인트가게에서 일을 하며 연구하고 재료를 쉽게 취할 수 잇는 장점이 있어 그에게 이곳만큼 좋은 입지는 없을 듯 싶다. 주재료가 페인트여서다. 그는 페인트로 기록이라고 하는 자신의 작품 주제를 구현한다.
앞서 몇몇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고 표현 했는데 ‘Light pixel’이나 ‘아름다운 두려움’을 두고 한 말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이 아니면서 주재료로 페인트를 가지고 하는 작가로는 거의 손에 꼽을 만큼 지역에서는 흔치 않다. 그에게 작품이 매우 독창적이고 색채들이 빚어내는 조형적 공간 미학까지 두드러진다고 하자 하얀색을 기본으로 놓고 색소를 넣어 수만가지 색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가 창출한 색상들은 유리 시험관(텍스트 튜브)에 담겨지게 되고, 그 각각의 유리 시험관에는 온갖 사람들이 가지는 에너지에 대한 기록작업으로 이해된다.
"부친이 10여년 전 개업한 페인트 가게에서 7∼8년 전부터 근무하며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 동기들로부터 자극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이들과 벌어진 간격을 좁히기 위해, 따라 잡기 위해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했어요. 근데 제가 페인트가게에서 일해 왔잖아요. 페인트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것만 익숙한 것은 없었어요. 페인트를 재료로 선택해야겠다 결심이 섰죠. 그래서 페인트를 선택해 작업을 벌이게 된 겁니다."



이제 페인트는 정 작가를 상징하는 미술재료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지금은 페인트를 재료로 활용하는 그의 작업방식이 어느정도 화단에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지만 그는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을 소재로 해 유화를 재료로 해 평면인 인물형상화를 했다. 인체 형상화를 하던 무렵의 주제의식 역시 ‘기록’이 화두였다. 기록이 표현되는 방식은 빛이었다. 그는 페인트를 재료로 활용하는 작업방식으로 대폭 변화를 추구했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변하지 않았다. 지금의 작업 역시 일기처럼 만났던 사람들의 에너지를 채집해 기록하는 작업이니까 기록을 해나간다는 측면은 변하지 않고 일관되게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중이다. 조금 전 수만가지를 만들 수 있는 페인트 색상이라고 했으나 그는 컬러의 색채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밝힌다. 각기 다른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컬러가 중요하지 않죠. 각자 컬러를 선택한 사람들의 기억이 중요해요. 유리 시험관에 색채로 표현된 에너지를 담아낸 것으로 접근하면 됩니다. 시험관은 한 줄이 50개인데 그게 옆으로, 위로 늘어날 수 있는 구조예요."
실제 그는 8월15일까지 무안오승미술관에서 진행중인 초대전에 출품한 작품 ‘Light pixel’에서는 1250개 정도를 활용했다. 1250명의 에너지를 표현한 것이다. 하나의 시험관에 하나의 에너지가 담겨져 있는 구조다. 이것 전체가 하나의 세트라고 한다. 작업은 2년이 소요돼 결실을 맺게 됐다.
지난 7월24일 개막, 오는 11월28일까지 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릴 ‘빛’전에는 2000여개의 시험관을 활용했다고 귀띔했다.
유리관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듯하다. 금호갤러리 전시에서는 800여개의 시험관이 활용됐으나 무안오승우미술관에서는 1250여개로 늘었고, 다시 2000여개로 늘릴 생각을 하고 있어서다. 시험관 위 아래로 배열되고, 형형색색의 유리 시험관이 배열돼 매우 규칙적인 공간 구획까지 구현되고 있는 이면을 엿볼 수 있다. 바탕에는 건축용 합판으로 구현했지만 앞으로는 아크릴판으로 변화를 가하고 무난한 나무 색깔로 제작을 할 구상을 내비쳤다. 그가 말하는 합판은 다행히 친척이 목재상을 해서 거기서 인도네시아산이나 중국산 등을 가져다 쓴다고 한다. 표면이 거칠고 재료마다 다 컨디션이 다르다고 전한다. 조립식으로 8장 정도 사용을 했는데 현재는 14장 정도로 더 커졌다는 설명이다. 보통 한 장의 크기는 세로 177㎝×가로 112㎝라고 일러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 이해해서는 작품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이처럼 작품의 영역을 완전하게 변화시키고 확장해낸 작가에게 인체 형상화가 생각나지 않느냐 했더니 미련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변화를 잘 해낸 작가로 읽혔다. 그러나 그에게 변화를 잘 이뤄내 안착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업실이 너무 협소해 어렵긴 하죠. 낮에는 페인트 가게에서 일을 하고, 밤에 주로 작업을 하는 패턴이에요. 재료가 무거운 것도 어려운 점입니다. 페인트가 무겁잖아요, 하지만 반대로 페인트 가게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 역시 저는 작업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죠. 오히려 일하며 작업을 겸할 수 있는데다 (아버지에게는 죄송하지만)부친 모르게 무상으로 페인트를 활용할 수 있는 점 또한 좋은 것 같아요."
자신의 이런 변화에 대해 조선대 미술대학 은사들이 많이 도와주는 등 그들의 영향이 컸음을 인정했다. 현재 그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 대학원 과정에서 동료들은 모두 전문가였으나 자신만 아마추어에 머물고 있었다는 반성의 시간도 돼 줬기에 변화의 단초를 마련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는 공백이 길어 스트레스를 받아왔는데 그냥 흘러보내지 않고 스트레스를 작품 영역 안으로 끌어들여 ‘아름다운 두려움’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 역시 에폭시 레진으로 구현된, 뾰족한 끝에서 독창적이면서도 그의 스트레스가 엄청 예리했음을 조망할 수 있다. 앞으로 그의 비상이 기대되는 이유들로 꼽힌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작가로 평가됐으면 하는가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작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답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사람들이 진지하게 주목하는 작가이자 진정성 있는 작가로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이런 것들을 새기며 경건하게 작업을 해 나갈 겁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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