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흙이 주는 ‘자연울림’…"한옥서 듣는 클래식의 묘미죠"

문화공간 탐구(공연장 ‘디엠홀’)
1960년 중반 지어진 가옥 두 채, 공연장으로 새 단장
고층 건물에 폭 안겨있는 구조로 도심 속 ‘이색 공간’
100석 공연장·예술인 쉼터 마련…"작은 음악회 열 것"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9월 06일(월) 17:35

(2021년 9월호 제100호=글 박세라 기자)

"여긴가? 이 길이 맞나?" 걸음을 떼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주저한다. 이곳에 공연장이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어서다. 광주세무서 뒤쪽 좁다란 골목을 따라 걷다가, 커다란 주차타워를 끼고 돌아가면, 생경해서 더욱 반가운 한옥공연장 ‘디엠홀’을 마주할 수 있다.
한옥 대문을 지나 들어가면 초록초록 잔디가 심어진 작은 마당이 있고, 그 옆으로 소담스러운 한옥이 반듯하게 서 있다. 고층 건물들 사이에 폭 안겨있는 구조로, ‘디엠홀’로 들어서면 도시 소음마저도 숨을 죽인 듯 한적하기만 하다.
이곳의 주인장은 (사)빛소리오페라단 최덕식 단장과 그의 평생 짝인 광주대 박미애 교수다. 최 단장은 이곳을 ‘내 자식 같다’고 표현할 만큼 애정이 깊다. 공연장 이름도 부부의 이니셜을 사이좋게 하나씩 따와 지었다.
2019년 연말 문을 연 이곳은 1960년 중반에 지어진 한옥 두 채를 리모델링, 그 이름만도 낭만적인 한옥 공연장으로 단장했다. 한옥이니까 왠지 흥겨운 전통 가락이 들려올 것만 같지만, 이곳은 클래식 공연장이다. 이보란 듯 무대 중앙엔 그랜드 피아노가 떡하니 자리했다. 예스런 한옥 마루위에 반짝이는 피아노가 이채로워서 더욱 매력적이다.
애초 이곳은 빛소리오페라단의 창고로 쓰일 것이었다. 소공연장 격인 ‘광주아트홀’을 운영하다보니, 무대 의상이나 소품·세트 등을 정리해둘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서였다. 가까이에 있는 몇몇 곳을 둘러보다 이 한옥을 발견했다. 그런데 보고 또 봐도 창고로 쓰기엔 너무나 고상해,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생각을 바꿔 먹고, 모닥모닥 둘러 앉아 편안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한옥공연장으로 탈바꿈을 시작했다.
어떤 콘셉트로 꾸몄느냐고 묻자, "있는 그대로, 살리자!"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한옥의 틀은 고스란히 두고 마당과 본채 간 높이 조절만 했다. 높았던 대청을 걷어내면서 평평하게 새 마루로 깔았다. 바닥과 벽면은 하얀색으로 칠해 본래의 서까래 나무색과 하얀색이 조화를 이뤄, 요즘 유행하는 ‘우드 앤 화이트’ 분위기가 물씬 난다.
공연장은 30평 규모로 아담하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좌석은 최대 100석까지 수용 가능하고, 무대 뒤편으로 빙 둘러 공간을 마련, 출연자 대기실도 꾸며뒀다. 따로 공간을 분리해서 마련했다면 정돈된 느낌이 덜했을 터인데, 무대 양 옆과 뒤를 트는 방식으로 구성해 깔끔함을 더했다.


한옥과 클래식. 언뜻 보면 꽤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공연장으로서는 합이 찰떡이다. 무엇보다 클래식 공연에서는 소리의 울림 ‘공명’을 컨트롤하는 게 중요한데, 한옥이 소리를 자연스럽게 울려 퍼지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좋은 소리의 울림을 위해 각 공연장에서는 고가의 첨단 음향 장치들을 마련해둔다. 소리가 너무 울리면 천을 덧대어 불필요한 공명을 잡거나, 혹은 좌석마저도 나무로 만들어 패브릭이 소리를 과하게 빨아드리는 현상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최 단장은 "한옥은 나무로 된 마루, 서까래, 황토 등 자연 유래의 재료들로 이뤄져 있어, 자연스러운 울림 즉 ‘자연공명’이 가능하다"며 "나무로 된 공연장이라도 ‘새것’은 또 오래된 것만 못하다. 세월 따라 마르고, 또 닳은 나무가 좋은 소리를 빚어내는데 이곳은 지어진 지 60여 년 된 곳이라 더욱 알맞다"고 설명한다.
소담스런 한옥 공연장에서 즐기는 클래식은 그만의 매력이 있다. 대극장에서 대작을 보는 것도 좋지만, 오히려 예술인들의 생생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소규모 공연도 추천한다. 이곳은 무대의 ‘단’을 따로 두지 않았다. 그저 외딴 방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앞쪽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무대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는 ‘디엠홀’ 개관기념공연으로 바리톤 김대수 초청 독창회, 한소리회 정기공연, 앙상블 ‘온’ 콘서트, 브니엘 작은 음악회, 정세화&이담이 피아노 듀오 연주회 등을 비롯해 지난 7월 마지막 날에는 17년여 만에 열리는 최덕식 단장 독창회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공연장의 한 벽면은 문을 접으면 전면이 개방되는 ‘폴딩도어’로 설치됐다. 날 좋은 가을에는 문을 활짝 열고 잔디밭 마당까지 활용할 수 있어 딱이다. 한옥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음악을 즐기는 소규모 야외공연장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공연장 뒷문으로 나오면 잘 꾸며진 화단과 가정집처럼 정겨운 한옥 한 채 하나가 더 있다. 가지런히 신을 벗어두고 입장하면, 커다란 테이블과 안락한 소파 등이 ‘어서 머물다 가라’ 한다. 이곳은 예술인들이 복닥복닥 앉아 담소를 나누고 다과를 즐기는 휴식 공간으로 마련해뒀다.
훤히 드러난 황토벽 덕에, 괜히 내쉬는 숨에 ‘건강함’이 더해졌을 것만 같다. 창문틀도, 유리문도 그래도 뒀다. 전통 창살이 멋스러운 창호문은 떼다가 벽면에 일렬로 걸어뒀다. 특별히 품이 든 게 아닌데, 그저 둔 것만으로 인테리어 효과가 크다.
햇살이 쏟아지는 쪽으로는 소파를 뒀고, 맞은편으로는 최 단장이 어렸을 때부터 사용했던 피아노를 배치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이탈리아에서 공수해 왔다는 장식장이다. 와인잔이 주르륵 걸려있는 장은 한옥과 묘하게 어울려 공간의 멋을 더한다.
최 단장은 앞으로 ‘디엠홀’에 걸맞는 미니 오페라, 소규모 연주회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공연장 문을 열 때 코로나19가 엄중한 상황이라,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이지 못했는데, 바꿔 생각해보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연주회나 공연장 형태가 ‘디엠홀’의 지향점과 맞아떨어진다. 소소하지만 질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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