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억압 헤쳐나가는 첩경은 후세대를 교육하는 길 뿐이다

[인물탐구] 유은학원 설립자 최선진 선생
광주사립호남보통학교 설립·민족 자본 육성 노력
광주·전남 최초 여객회사 설립·민중계몽운동 참여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12월 27일(월) 17:02
(2021년 12월호 제103호=김인수 기자)"일제의 억압을 하루속히 헤쳐나가기 위한 첩경은 후세대를 교육하는 길 뿐이다."
1919년 3·1 운동의 만세 소리는 만주와 연해주에도 울려 퍼졌고, 국권 회복에 대한 민족의 뜨거운 독립 의지는 황해를 건너 중국 본토까지 전해졌다. 1920년 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전 국민에게 독립전쟁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일본제국은 조선에 대한 산미 증식 계획을 실시하며 더욱 가혹하게 탄압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전후로 유은 최선진 선생(1891년 5월 26일~1945년 12월 17일)은 민중계몽운동, 문화예술사업, 양민구제사업, 교육사업 등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며 금융, 운수, 유통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특히 "일제의 억압을 하루속히 헤쳐나가기 위한 첩경은 후세대를 교육하는 길 뿐이다"고 천명하며, ‘가난한 조선 아동의 전도(前途, 앞으로 나아갈 길)를 위해 이지(理智, 이성과 지혜)의 첫눈을 뜨게 할 결심’으로 교육사업에 매진해 오늘에 이르렀다.
1921년 후세대 교육에 대한 유은 최선진 선생의 뜻이 국권을 상실한 암담한 이 땅에서 100년 거목으로 자라났다. 학교법인 유은학원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설립자 유은 최선진 선생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광주 조선인 최초 영화전용상영관 ‘광주극장’ 운영
올해 학교법인 유은학원 창립 100주년 기념관 개관

광주사립호남보통학교 설립
조선 아동 이지(理智)의 첫 눈 뜨게할 결심
1910년대 식민지 조선은 학교의 부족과 가난으로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식민지 조선의 아동의 수는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였으며, 배움에 목말라 울부짖는 비참한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1921년 4월 1일 유은 선생은 국권을 상실한 조국과 겨레에게 교육만이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빛이란 신념으로, 선생의 나이 서른 살이 되는 해에 전답 16만 평, 대지 6778평, 목조 교실 9개 교사를 기부하
고, 동지들과 함께 현 광주세무서 자리에 광주사립호남보통학교를 세웠다.
일제의 탄압과 감시도 학교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학비를 낼 수 없는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교육을 해야 했기에 매년 학교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매일신보(1922년 4월 6일)나 당시의 신문 기사에 ‘입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3만원을 기부했고 무상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보도하고 있으며, ‘길거리에서 방황할 아동들이 다수에 달할 것을 예측하고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학급을 증설하고 교실을 확장해 교원을 증가하기로 노력하고 있다’(매일신보 1932년 3월 2일)고 전하고 있다.

민족 자본 육성을 위한 노력
순수 민족계 ‘호남은행’ 설립에 동참
유은 최선진 선생은 호남의 갑부인 현준호, 목포의 거상 김상섭 등과 함께 광주와 목포를 중심으로 한 지주자본과 상업자본을 규합해 1920년 10월 2일 순수한 민족계 은행인 호남은행을 설립했다. 이러한 결의는 1908년 8월에 창립된 광주농공은행이 1918년에 조선식산은행(일본금융)에 흡수, 합병되는 것을 기로 이뤄졌다.
이후 유은 선생은 호은총회에서 감사역으로 선출됐고, 호남은행총회에서 신임취체역(이사)으로 선임되면서 민족 자본 육성을 위해 노력했다. 1929년에 건립된 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현 목포문화원)은 2002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 당시 건축물의 양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며 슬픈 식민지의 민족사를 오롯이 품고 있다.
광주사립보통학교 직원 일동

광주·전남 최초 여객회사 설립
세계 변화에 주목…남다른 관심과 투자
유은 선생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과 세계의 변화에 주목했고 사업가로서 선도적이며 과감한 결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일반화됐으나 20세기 초에는 원동기의 동력을 이용해 사람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기계인 자동차는 최신 교통수단으로서 편리성과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업에 대한 수익성에 대해 우려했지만, 유은 선생은 광주·전남 최초로 광주자동차여객회사를 1920년 1월 1일 설립, 운영했다. 여객회사 부지는 지금의 광주 충장파출소 뒤편 제일극장 입구였고, 버스 차량은 8인승으로 3대를 구입했다.
버스의 지붕은 포장을 씌운 형태였다고 한다. 노선은 광주~송정 간, 송정~영광 간 두 개였고, 차비는 편도 3원이었는데, 중간 3리(약1.2㎞)마다 정류장을 설치했다. 여객 운수사업은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사업 시작 후 일주일 만에 1개월 후의 버스표가 매진되는 등 성공을 거뒀다.
광주자동차여객회사는 이후 차량이 3대에서 8대로 늘어날 정도로 이용객이 많았으며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7년 후 광주사립호남보통학교의 재정난으로 운영의 어려움을 겪게 됐고, 학교 운영비 마련을 위해 유은 선생은 헐값으로 당시 일본인이 운영하던 여객회사 ‘상마’에 이를 처분하고 학교를 단독 경영했다.

민중계몽운동에 참여
민족의 문제는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해야
구락부(俱樂部)라는 말은 클럽(club)의 일본식 발음을 한자로 옮겨 놓은 말이다. 광주지역의 지식 청년이었던 최원순(1891~1936)은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조선인 YMCA에서 고학으로 와세다대학에 진학했다. 1918년 11월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의 문제는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했을 때 도쿄 한복판에서 유학생 신분인 최원순은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해
낭독했다. 이 소식은 국내 3·1운동에 영향을 줬다.
또 최원순은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논박하는 글을 유학 중에 발표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며 일제의 폭정에 항의하는 기사를 게재했고, 이에 따른 고문과 감옥살이로 얻은 폐결핵이 악화돼 광주로 귀향했다. 광주로 돌아온 최원순은 계유년(1933년)에 최흥종 목사와 함께 ‘계유구락부’를 결성해 민중계몽운동을 하게 됐는데, 이때 유은 선생도 이 모임의 회원으로 참여해 활동했다. 도산 안창호와 월남 이상재 등을 광주로 초청해 청년들에게 민족의식과 근대화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었고, 광주천 직강 공사로 강제 철거된 천변의 많은 영세민들을 위한 구제사업을 펼쳤다.
설립자 동상

양민구제사업
소외되고 가난한 계층을 돕기 위한 일에 앞장
유은 선생은 계유구락부 회원들과 함께 소외받는 계층을 돕기 위한 구제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뢰병(나병)예방협회 설립을 위해 일만원을, 고아원 수용소 건립을 위해 4000원을, 가련한 노인과 유아들을 위해 4000원을 기부했다.(1930년대 쌀 한 가마(80kg), 당시 13원)
유은 선생의 양민구제사업과 관련된 당시의 신문 기사는 이외에도 많지만, 도탄에 빠진 우리 민족을 위한 구제 방안을 밝힌 좌담회의 내용을 담은 동아일보 기사(1932년 7월 13일) 일부를 현대어로 옮긴다.
"옛날부터 가난 구제는 국가에서도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식료품과 일상생활의 필수품에는 전배 제도를 실시해 생산자나 소비자가 다 같이 생활에 안정을 얻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둘째, 종래에 농민에게 있는 부채를 모두 탕감하거나, 적어도 십 년 이상 그 지불을 유예하고 동시에 농촌에는 저리자금을 융통해 농산물의 생산 비례로 경감해야 합니다. 셋째, 농촌이나 도시를 가리지 않고 그 지방의 환경과 특색에 맞는 공업을 일으키어 일반 가난한 국민이 언제든지 임금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실시한다고 할지라도 현 제도에서는 재벌의 무제한의 탐욕 때문에 그 완벽을 얻기는 어려우나 그래도 상당한 효과를 있을 줄 믿습니다."
유은학원 전경

문화예술사업
"광주극장은 광주 조선인 최초 영화 전용 상영관
유은 선생은 차별없이 조선인들이 입장해 우리 고유의 전통 공연과 영화를 마음껏 만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1935년 광주읍이 광주부(현재의 市)로 승격하는 10월 1일 1년 간의 공사 기간과 총건축비 8만여 원을 들여 일제의 힘을 빌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조선인의 공간을 개관했다.
당시 동아일보(1935년 10월 1일)는 조선 최대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 2층으로 지어진 400평 건평에, 입장 정원이 1200명이라고 보도했고, 조선중앙일보(1935년 9월 28일)는 광주극장을 ‘조선에서 제일을 자랑할 정도’라고 보도했다.
개관 85돌을 맞은 광주극장은 "광주 조선인 최초의 영화 전용 상영관이며 단관 형태를 유지하면서 85년째 극장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영화관"이라며 "해방 전에는 창극단, 판소리 공연 등을 통해 국민의 애환을 달래주었고 민족혼을 불러일으켰고, 해방 직후엔 전남건준 결성식(8월)과 해방 축하 국악공연(9월)이 열어 해방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그리고 현재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예술영화와 거장들의 회고전, 감독·배우와 관객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개최해 시민들의 삶 속에 문화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른 나이 타계(他界)
교육발전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 추서
유은 선생은 1928년부터 학교를 단독 경영하다가 경영난으로 1944년 폐교에 이르게 됐으나 1945년 11월, 보통학교를 6년제 광주상업중학교로 개편 설립했다. 그러나 유은 선생은 그해 12월 17일 54세의 이른 나이로 타계했다.
유은 선생의 아들 고 최동복 선생은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1947년 1월 재단법인 유은학원을 설립했고, 광주동성고등학교(전 광주상업고등학교),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 광주동성중학교, 광주동성여자중학교를 통해 현재 약 13만2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93년 2월 정부는 사립 중고를 설립해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 처음으로 유은 최선진 선생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했다.
유은학원 최용선 이사장

학교법인 유은학원 창립 100주년 기념관 개관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 새겨
학교법인 유은학원은 지난 5월 26일 창립 100주년을 맞아 광주동성고 가촌당(강당)에서 기념행사 및 100주년 기념관 개관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유은학원 최용선 이사장과 총동문회 최영태 회장, 광주동성여중 교장이기도 한 조영선 유은학원 창립 100주년 추진위원장, 퇴임 교직원 모임 ‘교우회’ 이상선 회장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유은학원 100년 역사’를 정리한 기념 영상 및 이용섭 시장, 장휘국 시교육감을 비롯한 각계 졸업 동문의 축하 영상 시청 후 장기근속 교직원 10명에 대한 표창을 실시했다. 이어 총동문회가 광주동성고·광주여상·광주동성중·광주동성여중 등 유은학원 소속 4개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전달했고, 전교생에게 기념품을 증정했다.
유은학원은 ‘유은인상’ 수상자로 (재)유은학원총동문회장학재단 박석남 이사장(동성고 10회), 박미희 흥국생명 배구감독(광주여상 20회), 양현종 텍사스 레인저스 투수(동성고 56회) 등 14명을 선정했다. ‘유은인상’은 100주년을 기념해 모교와 동문사회의 위상을 드높이고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최용선 이사장은 "유은학원은 지난 100년 동안 자주성 확립, 도의성 함양, 창조력 계발을 기치로 쉼 없이 달려와 오늘의 금자탑을 쌓았고, 유은 선생의 교육적 사명을 바탕으로 수많은 교직원의 노력, 유은동문의 애교심, 후배 사랑 덕분에 인류 공영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13만2000여 명의 동문을 배출했다"며 "유은학원은 교육풍토 조성, 단란한 협동 정신 강화, 아늑한 복지시설 확충을 통해 청소년들의 희망과 꿈이 자라는 새로운 100년의 꿈을 향해 나아가자"고 말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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