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언어 ‘춤’ 철학과 연결짓다

[예술인플러스] 이숙영 조선대 공연예술무용과 교수
한춤·발레로 무용 입문 현대무용 본고장 미국서 유학
서양 테크닉 익혀…전국무용제 대통령상 등 다수 수상
‘생각하는 힘’ 강조…제자들에 "유연한 사고" 주문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03월 06일(일) 18:04
(2022년 3월호 제106호=정채경 기자) 지난해 광주의 한 인문학 강좌에서는 우리나라 최초 무용스타였던 최승희의 춤의 특징에 대해 조명했다. 고전 무용의 현대화를 이끌어 전통무용의 발전에 힘을 쏟아온 그의 생애 뿐만 아니라 민족성과 현대성으로 귀결되는 춤의 특징을 짚었다. 한 춤의 스타일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과 시대 상황을 거쳤는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이를 짚은 강좌는 단편적으로 춤을 바라봐온 사람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이 강연을 주도한 것은 현대무용 철학과 현대무용 교육 연구에 매진해온 이숙영 교수(조선대 공연예술학과)다.
그는 사실 현대무용을 전공한 춤꾼이다.
현대무용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활동한 그는 어릴 적에는 무용에 썩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간 교습소에서 한춤이라는 우리 춤을 처음 접하면서 발놀림을 배웠고, 이후에는 여름방학에 사촌언니를 따라간 전남여고에서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종남 선생님으로부터 발레의 기본 동작을 접했다.
광주여고에 진학한 뒤 거기서 김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발레를 시작하게 된다. 전남무용학원에 등록해 1년여 간 매진했다. 그러다 한 학년 올라 같은 반이 된 친구의 춤에 매료돼 무작정 전공을 바꾸게 됐다.
"한 반이던 미옥이가 현대무용 특기생이었어요. 대회에서 미옥이가 춤을 추는 것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전공을 급전환하게 됐죠."
이 교수는 현대무용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했다고 한다. 그렇게 1987년 조선대에 진학해 대학교 1학년 때 주역으로 첫 무대를 치렀다.
"제가 신체조건이나 끼를 타고 난 게 아니어서 오로지 연습과 노력에 기댈 수 밖에 없었어요. 두각을 드러내지도 못했구요. 그러던 차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지 않아 공연의 주역을 맡게 됐죠. 그때부터 조금씩 빛을 보게 됐던 것 같아요."
그는 사람들이 가져준 그의 춤에 대한 기대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연습에 임했다. 그 무대를 계기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졸업을 하던 1991년 임지형 교수가 광주현대무용단을 창단하면서 창단멤버로 참여, ‘꿈꾸는 도시’의 안무자로 데뷔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대한민국 춤의 해’가 선포되면서 많은 공연이 이뤄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수도권 중심의 경연제에 반해 전국 무용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전국무용제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이때 광주현대무용단도 참가, 그는 ‘다시래기’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미국 연수를 틈틈이 다니며 막연히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임 교수가 용기를 북돋아 준 덕분에 유학을 결심,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 유학은 흔치 않아서 집안의 반대가 있었지만, 현대무용가라는 그의 꿈을 꺾지는 못했다. 미국에서는 유명 댄스스쿨인 뉴욕 페리댄스를 비롯, 여러 스튜디오에서 수학, 1998년 사라로렌스 대학교 석사과정에 다니게 된다.
이때 그는 미국의 현대무용 테크닉을 많이, 빨리 배워서 한국에 돌아가야 된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한다.
"제 춤을 유심히 보던 바이올라 파버 교수님이 "너는 무슨 춤을 추려고 하니. 나는 너의 춤이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언어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얘기를 듣자 부끄러움이 몰려왔어요. 이제까지 무엇을 한 것인지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죠."
그러다 ‘나 만의 춤’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나고 자란 곳, 나만이 갖는 고유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풀어낸 졸업 무대에서는 서양의 문화 대신, 홍신자 선생이 젊은 시절 가야금 명인인 고 황병기 선생과 함께 한 ‘미궁’의 곡에 맞춰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을 올렸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어릴 때부터 무용을 시작하는 데, 그곳에서는 무용에 관심을 갖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어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2003년 선보인 ‘물밑·꽃잎’(왼쪽) 2020년 공연한 ‘왜! 여기 서있는가’(오른쪽 위, 아래)

귀국해서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여러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전남대와 목포대에서 무용철학과 교육학으로 각각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어떤 사상적 흐름에 따라 현대무용이 탄생됐고,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현대무용의 교수법 등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했다.
1996년 미국을 오가며 선보인 ‘아라리오’로 제5회 전국무용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3년 ‘물밑·꽃잎’으로 연기상을 수상했다. 주로 가부장적 사회 속 여성의 모습에 주목하는 작품이었다. 2004년에는 광주예술문화상을, 2005년에는 광주무용제 대상 및 안무상과 전국무용제에서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2015년 광주무용협회로부터 무용인상을, 2016년 박금자무용상 등을 받았다.
2018년에는 아시안포럼 우수논문상도 받았다.
무대보다는 연구실에서 시간을 더 보내게 된 그는 2020년 코로나 시국 물음을 던지는 ‘왜! 여기 서있는가’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스포츠와 무용은 신체를 사용한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몸을 이용해 무엇을 하는가가 다른 점이에요. 오랜만의 무대여서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체득한 몸짓이 나와줘 다행이었죠."
춤을 추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이지만, 그는 무용을 신체훈련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교감에 집중한다.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몸을 열게 할 수 있는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용수들간 협업과 교감이 바탕이 돼야 관객들에 감동의 하모니를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어 이 교수는 과거와 현재 현대무용의 흐름을 언급했다.
"포스트모더니즘, 후기 포스트모더니즘 현대무용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고, 인간의 내면을 중시했죠. 요즘 현대무용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것이 중요해요."
과거, 작품에는 기승전결이 있고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이야기 전달식이었다면 현재는 흥미 역시 중요하고 작품의 이해와 받아들여지는 지점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춤은 특별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철학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데 도움을 준 만큼, 순간 순간 일상을 무용을 통해 생각하려고 노력한다는 설명이다. 후학을 양성하면 할수록 제자들에 무슨 내용으로 우리의 무용을 어떻게, 잘 가르칠 지 고민이 깊다. 여러 교수법으로 제자들이 즐겁게 무용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변화시키는 한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무용의 역할에 주목해 연구를 펼칠 계획이다.
"앞으로 무용의 사회적, 예술적 측면 중에서도 교육적 기능에 주목해 연구할 생각입니다. 예술로서의 현대무용보다는 사회 속에 흡수돼 사람들이 변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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