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마음 녹이는 역할 "안정을 주며 열린 공간 되길"

[문화현장 사람] 광주바로병원 바로문화원 대표 정유진
전대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버클리음대서 음악치료 전공
2018년 문 연 병원 내 문화원서 공연·전시 등 5년째 선봬
예술 장르 망라 치유·소통 주목…‘문화예술 전파’에 집중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11월 06일(일) 14:31
(2022년 9월 112호=정채경 기자)바이올린 선율, 나아가 음악 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 장르를 망라해 ‘문화예술’을 널리 알리는 이가 있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 치유 전문가인 그는 병원 로비를 전시와 공연으로 채워 삭막하다 여길 수 있는 공간을 문화예술로 물들이고 있다. 광주 북구 첨단연신로 소재 광주바로병원 내 바로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유진 대표가 주인공이다.
제주도 출신인 그는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부모로부터 늘 음악이 행복을 가져줄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의 부친은 광주 조선대를 졸업한 약사로 서귀포에서 약국을 운영했는데, 약국 위에 음악학원이 있어 종종 거기서 들려오는 멜로디에 귀 기울이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 정 대표는 다섯 살 때 처음으로 바이올린 활을 손에 쥐었다.
당시에는 흔하게 배울 수 있는 악기가 아니었는데 마침 그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어 자연스럽게 그리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때부터 쭉 바이올린 연주자를 꿈꿨다. 자신의 연주로 사람들에게 엄청난 행복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게 선한 영향력이 돼 점점 더 세상을 밝혀주리라 믿었다. 그렇게 그는 전남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면서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그는 연주에만 매달렸다. 아침이 밝기 전 연습실에 들어가 깊은 밤 별을 보며 나올 만큼 연습에 매진했다. 그만큼 그에게 음악은 절실했다. 바이올린 선율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길 바라는 스스로와의 약속 때문이다. 이후 그는 견문을 넓히기 위해 이화여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연습실을 향해 걸어가는 길, 매일 지나던 길 한 쪽에 자리잡은 아동상담센터가 달리 보였다.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가 바이올린 연주자라고 소개한 뒤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기증받은 바이올린 10대를 가지고 센터에 오는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악기를 가르쳐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어루만지는 일에 발을 들였다. 연주자이기에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셈이다.
"처음 아동상담센터에 간 날, 한 아이가 제 옷깃을 붙들고 사탕 하나만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게는 사탕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다시 와서 주겠다고 약속했죠. 그렇게 쭉 1년 반 동안 그곳을 드나들었어요."
매주 아이들과 만나면서 그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고 한다. 물론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면서 책임감을 키우고 성취감 등을 느낄 수 있지만, 학대받은 아이들의 삶이 단지 바이올린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에 다가서기 힘들다는 생각에서다. 긍정적인 교류를 하려면 꽁꽁 얼어붙은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악기를 배우는 과정과 이 과정을 통해 울려 퍼지는 선율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이들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도록 하거나 마음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때부터 그는 음악이 학대받은 아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주목했다. 이것이 그가 음악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

그는 그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말을 안해도 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악기를 마구 두드려보거나 미친듯이 소리를 쳐보기도 하는 수업이었다. 다함께 울기도 하고, 서로 끌어안아 주기도 하면서 앞으로 아이들이 사는 동안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음악 치료로 영역을 넓힌 게 악보가 중요한 클래식 음악에서 즉흥 연주와 작곡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클래식은 악보를 보며 연주하죠. 악보가 중심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바이올린 연주자로 악보를 보고만 켜는 연주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음악 치료는 연주자로서 제 한계에 대한 도전이자 저를 성장시키는 매개죠. 그래서 미국유학을 결정했어요."
그즈음 그는 세계 최대 사립음악대학인 미국 버클리음대에 음악 치료(Music Terapy) 전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국내에서와 달리 음악치료학 연구가 심층적으로 이뤄지고 대체 의학 장르로 자리 잡은 곳에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를 연주해 버클리에 입학한 그는 전학기 장학금을 받게 됐다. 음악 치료를 전공하기 위해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안고 본 오디션에서 그는 ‘소양강 처녀’를 편곡해 연주했다. 한국의 고유 정서 중 빼놓을 수 없는 한(恨)을 담아 연주한 덕분에 공감대를 이끌어내 음악 치료를 전공하게 되면서 그는 그곳에서 미국 음악치료협회에서 승인한 임상 인턴십을 이수, 음악 치료사로서 자격을 갖췄다.
정 대표는 유학시절 내내 ‘이렇게 행복하게 음악한 적이 있었나’ 생각하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유학 생활 기간 인턴십을 위해 간 널싱홈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음악치료사의 일상을 함께 했어요. 음악 치료가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을 밝게 웃을 수 있도록, 나이가 많아걷지 못하는 할머니가 그 사실을 잊고 일어나려고 할 만큼 흥분하게도, 행복하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되게 놀라웠달까요. 음악의 힘을 경험한 거죠."
또 그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프로젝트의 하나로 ‘The Story of North and South’라는 타이틀의 영상을 제작, 유튜브로 선보여 이슈화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에 대해 모르는 재미교포 2~3세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뿌리와 한반도에 대해 일깨우던 수업을 진행한 데서 비롯했다. 반으로 절단한 바이올린은 소리를 내지 못하기에 이어 붙이고 줄을 새로 끼운 뒤 활을 들어 다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반도가 직면한 상황과 우리가 통일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 이를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 등을 바이올린에 빗대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음악을 시각화하는 작업, 예술장르를 융합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됐고, 잘린 바이올린으로 대한민국을 지키려 한 사람들의 간절함을 나타낸 그림 ‘두 개로 잘라진 바이올린, 분단의 한반도 지도’로 제23회 통일문화제 통일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귀국해서는 음악치료가 필요한 곳을 찾아다녔다. 서울재즈아카데미 음악심리상담실 ‘안단테’를 운영했고 서울대학병원 해바라기센터에서 성폭력 친족 피해자들을 위해 음악 치료 세션을 진행했다. 광주영어방송에서 ‘Music Therapy’ 코너를 운영하며 음악 치료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현재 운영 중인 정형외과·신경외과 전문병원인 광주바로병원은 2018년 문을 열었다. 그의 남편인 이영관씨가 대표원장을 맡고 있다. 병원 로비인 4층에서 그와 피아니스트 강상수, 콘트라베이시스트 권웅씨와 ‘송년음악회’를 열며 바로문화원의 본격 시작을 알렸다.
"광주바로병원은 정형외과·신경외과 전문병원이죠. 전시장과 공연장은 일하시는 분들이 바쁜 일정으로 인해 문화공간을 자주 방문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왔다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로비에서 바로문화원을 하고 있죠. 딱딱하고 삭막하다 여길 수 있는 병원에서 환자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싶어요."
햇수로 5년차, 그간 이곳을 거쳐 간 문화예술인은 음악과 미술을 망라, 20여 명이다. 예술인을 발굴, 이들의 작품을 펼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은 정 대표가 혼자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 출신 골퍼에서 시각예술로 전향한 백유 작가의 전시 ‘병원극장’을 선보였다.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사가운과 각종 도구들, 신체를 구성하는 뼈 등을 소재로 삼아 콜라주, 설치작품, 영상 등을 전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바람을 들려줬다.
"한국이 자살률 1위 국가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현대인들은 다양한 정신질환을 갖고 있기도 하구요. 누구에게나 한가지쯤 행복해지는 치유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문화예술로 사람들의 언 마음을 녹이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바로문화원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할 수 있도록 안정을 주며, 열린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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