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의 힘’ 관람객 반응 예사롭지 않다

[아트트렌드] ‘이건희 기증품 특별전’ 관람기
韓근현대회화·전통미술·도자 등…대가 작품 ‘한 자리’
스토리 넘쳐나…자대·디지털 모니터·포토존 재미 배가
‘인왕제색도’ 의자 설치 아늑한 분위기…관람객 줄 생경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03월 08일(수) 18:06
(2022 11월 114호=고선주 기자)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30점을 출품한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50점과 대구미술관 7점, 전남도립미술관 6점 등 이건희 컬렉션 93점 및 아카이브 20여 점을, 광주박물관에서는 국보·보물 등 16건 31점의 국가지정문화재와 함께 총 170건 271점을 각각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0월6일 찾은 전시장에는 국보와 보물, 그리고 국내 내로라하는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총망라돼 선보이고 있었다. 광주에서 이처럼 매머드급 전시는 다시 열리지 않을 수 있어 시민 및 관람객들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두 곳 전시 모두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마련한 자리이자 첫 선을 보이는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은 광주를 스타트로 2024년까지 순회전이, 국립광주박물관의 이건희 기증품들은 광주전 이후 타 지역 전시가 예정돼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관념산수에서 실경산수로 넘어가는 경향이 뚜렷한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진화가이자 북종화의 전통을 잇는 한국 현대화단의 유일한 채색화가로 평가받는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산수도 10곡병’(전남도립미술관 소장)을 시작으로 전통한지를 활용해 입체 회화를 구현한 전광영(1944∼ )의 ‘집합’(국립현대미술관 소장)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조형성과 스토리를 갖는 작품은 드물었다.
3전시장은 일제시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회화를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서양화 2세대인 구본웅(1906∼1953)의 ‘인물’(국립현대미술관 소장)과 이인성(1912∼1950)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대구미술관 소장) 등은 교과서 수록작들로 넓은 교감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지난 10월6일 둘러본 이건희 컬렉션 작품들은 서양미술이 국내에 들어와 어떻게 한국미술의 변화 지점을 확보했는가를 알 수 있는 유익한 기회였다. 전시가 예술상품으로서 히트 조짐이 보여 더욱 그 기대가 높아졌다.
이처럼 전시장에서 만난 출품작들은 한결같이 조형미학은 물론이고 스토리가 넘쳐났다. 작품 감상을 하면서 스토리가 이렇게 넘쳐나는 전시를 얼마 만에 만나보는가 했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인 1979년 중앙미술대전 때 대상을 수상해 두각을 보여 관심을 두게 됐다는 박대성(1945∼ )의 ‘서귀포’(전남도립미술관 소장)와 끝까지 진품 유무를 알 수 없어 애를 태웠으나 저작권자가 진위를 판단하지 못해 결국 소장처인 국립현대미술관이 자료 조사를 벌여 증빙자료를 제공, 진품임을 입증한 천경자(1924∼2015)의 ‘사이공’은 작품 그 자체가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어 더 유심히 들여다봐야 했다. 이중 박대성과 관련, 경주솔거미술관에 작품들을 기증했으나 청도 출생으로 타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박대성미술관으로 명칭 변경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더해져 흥미로웠다.
또 박수근(1914∼1965)의 작품은 미술을 꾸준하게 접해온 사람들이라면 그 독창적 화풍으로 인해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세 여인’과 ‘노인’, ‘노인들’ 등 출품된 세 점은 갈색과 흰색 흑색 검정에 두터운 마티에르를 특징적으로 살려내고 있었다. 마치 조각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재 탄생 100주년을 맞은 조각가 권진규(1922∼1973, 8.2∼10.23 1·2전시장)의 작품 ‘여인흉상’ 등 세 점 또한 출품돼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추후 관람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광주시립미술관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 중 하나는 이중섭(1916∼1956)의 은지화들이다. 이번 전시에는 광주시립미술관이 소장 중인 은지화 4점과 엽서화 4점 및 국립현대미술관의 은지화 1점 등 5점이 출품됐다. 은지화는 담배 안에 싸는 종이로, 그것을 누르면서 잉크를 일부 추가하는 등의 방식으로 작업을 펼쳤다. 근현대 매우 보기 힘든 소재로 이해하면 된다. 지난해 열린 광주시립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전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은지화하면 이중섭이 떠오를 정도가 됐다.
이어 국립광주박물관의 이건희 회장 기증 특별전은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타이틀로 진행 중이다. 타이틀은 국립중앙박물관 때 열렸던 전시의 타이틀을 그대로 승계했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조선 중기 궁중에서 열린 불교행사를 담은 조선 16세기 중엽의 ‘궁중승불도’의 원본 옆에 모니터 영상을 별도로 설치해 터치, 확대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작품 안을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김홍도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조선 후기의 화가 이명기(생몰년대 미상)의 ‘조항진 초상’은 초본과 원본을 동시에 설치, 국내 전시에서 보기 드문 설치로 꼽힌다.
김홍도(1745~1806년경)의 ‘화훼도’는 구부러진 소나무나 시든 연꽃을 형상화한 희귀 작품으로, 단원이 아니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구현됐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작품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이 작품은 광주박물관에서 선보인 후 상당 기간 다시 관람객을 만날 수 없을 수도 있다. 조도의 영향을 따져야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빛에 노출되는 데 있어 그 기준을 초과해서는 안되는 연유로 1년 휴지기를 가져야 한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꼭 봐야 할 작품 중 하나다.
조선후기 문인화가 홍세섭(1832~1884)의 10폭 ‘화조도’는 이제 볼 수 없는 새를 등장시키고 있으며, 18C 이색 화풍이 반영된 작품으로 총 10폭 병풍 중 2폭은 액자로 전시되는 특징이 있다.
중국 스님이 참선하고 있는 화폭으로 매화 표현이 독특하게 처리, 단원의 필력이 돋보이는 김홍도의 ‘혜능상매도’와 신윤복(1758~1814년경)의 ‘기녀출행도’ 그리고 파격적이어서 향후 연구가치가 높은 ‘혜원화첩’ 등도 눈길을 붙잡았다. ‘혜원화첩’은 진위여부 파악이 완료됐다기보다는 추정이 되는 작품이라는 설명을 듣고 보니 고미술품의 진위를 가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 공력이 필요한가를 여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광주박물관의 이번 전시 압권은 국보로 널리 알려진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다. 일흔이 넘은 겸재가 자신의 터전인 인왕산을 자신감이 넘치는 필치로 담아낸 ‘인왕제색도’는 작품 설치가 이채롭다. 이건희 회장이 거실에 작품을 놓아두고 편안하게 작품을 바라봤을 것이라는 상상 아래 두개의 소파를 놓아 관람객들이 앉아서 볼 수 있도록 해서다. 먹으로 구현한 화풍에 아늑한 분위기까지 구축해 작품의 진수를 느끼면서 전시 서두이지만 인기가 높아 포토존(뷰포인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왕제색도’는 김홍도의 마지막 기념작인 ‘추성부도’(秋聲賦圖)와 함께 각각 4주간 선보이는 만큼 서둘러 관람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인왕제색도가 전시장에서 내려지면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전라남도 강진 유배 시절에 쓴 ‘정효자전’(鄭孝子傳)과 ‘정부인전’(鄭婦人傳)이 그 자리에 채워지는 모양이다,
‘청자상감 모란무늬 발우와 접시’ 중 접시 밑 원(圓) 표시가 돼 있는데 이는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제작이라는 표현 징표라고 해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어 백자 달항아리가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달항아리를 선호하는 민족의 특질이 그대로 노정되는 듯했다. 광주시립미술관의 김환기 작품인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해 전시하고 있는 만큼 이 두 공간을 연계해보면 작품 재미가 배가될 수 있겠다 싶었다.
박물관 기증 이후 처음 공개되는 조선전기 노비화가 이상좌(생몰년대 미상)의 ‘이상좌 불화첩’, 교과서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전통유산으로 불경의 내용을 한글로 풀어쓴언해본 ‘월인석보’(月印釋譜), 염라대왕 앞에서 살아온 세월을 성찰하게 하기 위한 취지로 명부에 있다는, 중생의 업을 환히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달린 ‘업경대’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큐레이팅이 미술관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높아 편안한 가운데 둘러볼 수 있었다.
이에 앞서 ‘백자 청화 산수무늬병’ 역시 디지털 화면으로 무늬병 속 산수를 영상에 담아 한껏 운치를 더해 자칫 딱딱하기 쉬운 고미술품 관람의 단조로움을 덜어줬다.
디테일한 작품을 상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작품 자대를 설치하거나 디지털 모니터를 설치해 터치, 작품을 확대해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신경 씀씀이가 역력해 보였다.
광주시립미술관의 경우 작품 자대는 이중섭의 은지화 작품을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너무 작은 크기에 그려진 이중섭의 은지화 작품을 세세하게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섬세한 큐레이팅이 느껴졌다. 엽서화를 구현한 자대 앞에는 큰 화면을 설치해 미세한 작품 속을 확대해 볼 수 있도록 해놓았으며, 이 공간에 포토존을 마련, 관람 재미를 더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작품을 살리기 위해 벽 색깔을 바꾸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연 소재와 한국적 설화를 결합한 소재의 구상회화를 제작하는데서 나아가 추상에 몰입했던 이봉상(1916∼1970)의 ‘화병과 고양이’(국립현대미술관 소장)는 애초 하늘색으로 칠했다가 작품을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핑크로 바꿨다고 하니 그 고심이 느껴졌다.
국립광주박물관의 이번 특별전은 오전 10시 관람을 시작하는데 입소문을 듣고 방문한 관람객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늘 텅 비어 있던 때가 많던 박물관 앞 주차장은 차량들로 가득 차 생경했다. 이번 전시에 거는 관람객들의 기대를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여기다 광주시립미술관 역시 전시 초반이지만 단체 관람객들까지 잇따라 방문하고 있어 어느 규모로 관람객들이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을 지 궁금해진다.
이건희 컬렉션은 관람객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보증수표와 같은 전시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전통화와 도자를 비롯해 미술품에 관한한 ‘이건희라 쓰고, 명작이라 읽는다’라고 하는 명제에의 믿음이 이번에도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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