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월 121호=정채경 기자)오랜 세월 무대에 올랐을 원로 연주자들. 이들이 평생 올린 공연 횟수만큼 쌓였을 무대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혹은 무대에서 느낀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이 음악으로 분해 관객들에 울림을 줬을 테니까. 그간의 시간이 존재하기에 나이가 들어 예전에 비해 힘에 부칠지언정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그 화력만큼은 세다.
이처럼 ‘연륜’으로 무장한 연주자들이 힘을 보태 ‘골드필오케스트라’(Gold Phil Orchestra)를 창단했다. ‘골드’라는 이름은 변치 않는 금처럼 한결같은 마음을 무대로 선사한다는 의미다.
지난 2010년 11월 창단해 올해 햇수로 3년째 무대를 선보여온 골드필오케스트라는 김농학 국립목포대 음악과 교수가 대표를, 이창훈 전 광주시향 악장이 음악감독 및 악장을, 김유정 전 광주시향 단원이 운영실장을 각각 맡고 있다.
김농학 대표는 골드필오케스트라에 대해 “경험이 풍부한 관현악 전공자들이 모여 공연 활동을 통해 서로 교류하고 화합하며 사회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게 목적”이라면서“연륜이 묻어나는 화음을 더해 관객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새로운 감성을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성원은 광주와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 저변을 위해 노력해온 50대 이상 관현악 전공자들로, 가장 나이가 많은 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70대다. 국공립교향악단에서 활동하다 퇴직한 이들이 대부분이며, 교단에서 교육을 통해 후학양성을 해왔거나 연주활동을 꾸준히 해온 전문 음악인들로 현재 국공립교향악단에 소속되지 않는 이들로 구성돼있다.
광주에서는 무지크바움유스오케스트라, CNS윈드오케스트라, 광주여성필하모니오케스트라, 광주챔버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있지만, 원로 음악인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골드필오케스트라가 처음이어서 이들의 창단이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다.
오케스트라 창단은 2021년 연말 광주음악협회가 주관한 ‘제32회 광주음악제’ 첫 순서로 기획된 원로 무대를 준비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사실 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의 퇴직이 늘면서 예전부터 퇴직 음악인들 사이에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는 나왔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원로 무대의 공연 일정이 잡혔고, 연습을 위해 오전에 모인 이들이 가족구성원으로서 집안일에 대한 의무감은 잠시 내려놓고 이 시간 만큼은 연주자로 돌아가 악기를 든 게 계기가 됐다.

골드필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습하는 모습

“10년 만에 악기를 잡아 손가락이 안돌아갈거야”, “오랜만에 오케스트라를 하려니 내가 좀 틀려도 이해해줘요”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여러 걱정을 뒤로 하고 이들은 몇 번 합을 맞추더니 이내 몸이 기억하는 음악을 완벽히 들려줬다고 한다. 연주가 끝나자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은퇴한 뒤 오케스트라처럼 많은 연주자들이 한꺼번에 연주하는 규모있는 무대에 오를 기회가 줄어든 시점에 광주음악제 공연이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셈이다.
김유정 운영실장은 “관현악 연주자에게 오케스트라는 특별하다. 혼자 연주하는 독주, 서너 명이 한 무대를 꾸리는 실내악 등도 물론 좋지만 여러 악기가 모여 화음을 내는 소리는 또 다른 영역이다”면서 “은퇴한 뒤 연주를 종종 하기는 하지만 점점 오케스트라를 통해 무대에 설 기회가 줄어들어서 이에 대한 갈증을 느낀 음악인들이 오케스트라 활동을 너무 즐거워한다”고 골드필오케스트라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렇게 창단하게 된 골드필오케스트라의 창단연주회는 코로나19 여파로 창단 이듬해인 2021년 처음으로 선보였다. 스트링오케스트라로 꾸민 창단연주회는 연륜이 깃든 음악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준 관객들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스승의 무대를 기다려온 이들의 제자들이자 현직 연주자들이 관객석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꼿꼿하게 앉아 연주하는 한 명 한 명의 연주가 하모니를 이룬 게 감동적이었던 모양인지 무대가 끝나자 힘찬 박수소리가 쏟아졌다는 전언이다.
2022년 2회 정기연주회 ‘골드클래식’에서는 54명이 무대에 올라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연주했다. 3회 정기연주회 ‘아름다운 동행’에서는 30명이 협연자들과 마스카니의 오페라 등 연말에 어울리는 무대를 펼쳤다.
이들은 후배들이 ‘나도 나이들어 은퇴하면 골드필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해야지’라는 생각이 들도록 본이 된다는 마음으로 무대를 올린다. 그래서인지 풍부한 해석력과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를 힘으로 노련한 연주를 선보여 관객들을 음악 속으로 빨아들인다.
“흥과 열정은 여느 젊은 연주자들 못지 않죠. 구성원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배려하며 화합의 선율로 하나가 됩니다. 골드필오케스트라가 소중한 이유죠. 이름처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까지라도 같은 자리에서 계속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골드필오케스트라의 무대 모습

골드필오케스트라는 올해 4회 정기연주회 무대를 앞두고 있다. 광주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으로 마련된 이번 무대는 ‘골드필과 영원한 동행’이라는 타이틀로 12일 오후 7시30분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다. 이번 무대는 베토벤의 곡들로 채워진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인류를 대표하는 변치않는 가치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대 작곡가들에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기준을 마련하면서 유네스코에 의해 타임캡슐에 실리기도 했다.
무대에서는 광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던 금노상 지휘자의 지휘 아래 55명이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작품번호 84와 교향곡 제5번 ‘운명’ 사단조 작품번호 67을 들려준다. 유형민 소프라노와 조재경 바리톤이 협연자로 나설 예정이다.
골드필오케스트라는 향후 음악을 매개로 서로 화합하고 교류하며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기연주회 외에도 초청공연과 음악나눔, 교육봉사, 축제 참여 등 활동을 넓혀가기로 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 음악을 나눌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자선음악회 등을 통해 문화소외지역에도 찾아가야죠. 골드필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오케스트라만의 매력을 전하고 싶고요. 지역예술계에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