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3대 명촌…빛나는 2200년 전통

[문화공간탐구]영암 구림마을
영암군 군서면 소재…삼한시대부터 현존하는 마을
국사암·죽정서원 등 설화·장소 문화관광자원 ‘즐비’
과거·현재 공존…군립하정웅미술관·도기박물관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4년 01월 16일(화) 16:02
(2023 11월 126호=글 정채경 기자) 삼한시대에 취락이 형성돼 2200년의 역사를 지닌 곳. 월출산의 쌍룡이 감싸고 있다 알려진 마을. 영암군 군서면에 자리한 구림마을의 수식어다. 이림(爾林)이라 불렸던 이 마을은 나주 금안동, 정읍 원촌마을과 함께 호남 3대 명촌으로 알려졌다. 현대에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촬영지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시간이 축적된 오랜 역사 덕분에 마을이 배출한 인물과 여기에 얽힌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일본으로 건너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파하면서 아스카 시대를 여는데 기여한 백제 왕인박사, 풍수설의 대가인 신라말 도선국사가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이름이 비둘기 구(鳩), 수풀 림(林)자를 쓰게 된 것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를 보호한 비둘기 떼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고려의 건국 공신 중 하나인 최지몽 선생, 1593년 이순신을 도운 연주현, 조선 후기 실학의 새로운 싹을 틔운 박세채와 박태초, 국문학사에 영향을 미친 금성별곡의 오한 박성건, 삼당시인 고죽 최경창, 태호 조행립 등 셀 수 없는 인물들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3·1 독립운동 때 의기를 모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처럼 흥미진진한 설화와 걸출한 인물을 다수 배출한 구림마을을 찾았다. 내비게이션에 구림마을을 입력하자 구림전통마을과 구림마을, 이렇게 두 곳이 떴다. 구림전통마을을 선택해 차를 몰았다.
동구림리에 소재한 구림전통마을은 크게 왕인박사유적지와 그의 업적을 톺아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유적지에 들어서면 탁 트인 공원과 한 가운데 책을 피고 서 있는 왕인박사 동상이 맞아준다. 그의 일대기가 펼쳐지는 조형물을 뒤로 하고 공원을 돌아보며 왕인박사가 탄생한 생가의 초석, 그가 동료들과 함께 수학하고 담론을 공유하던 문산재 및 양산재, 조용히 공부하던 석굴 등 그대로 남아있는 유적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고대 국제 무역항이자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던 상대
포를 기억할 수 있는 상대포역사공원 등도 조성돼 그의 삶과 업적을 되새겼다.
구림마을 돌담길

이어 전통마을의 고즈넉함을 기대하며 동구림리에 자리한 구림마을로 차를 돌렸다. 마을 어귀에서는 440년간 이어져온 마을자치모임 대동계의 집회장소라는 회사정이 눈에 들어왔다. 황토를 발라 마무리한 낮은 기와 돌담길을 걷다 모퉁이를 돌자 담장 너머 심상치 않은 바위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도선국사의 출생 설화를 간직한 국사암이었다. 실제로 바위를 마주하고 시냇가에 갔다가 떠내려오는 오이를 건져먹고 도선국사를 낳았다는 낭주 최씨 집안 처녀의 이야기를 접하니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 옆길로 돌아가면 고려태사민휴공최선생유적비와 고려 최초의 천문학자이자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알려진 최지몽을 모신 낭주 최씨 사당 국암사를 둘러볼 수 있었다.
정겨운 골목길 속 남송정, 죽정서원, 육우당, 서호사(총취정), 동계사(삼락재) 등 많은 누정과 옛 모습을 간직한 전통가옥들을 차례로 돌아봤다. 전통한옥과 정자, 고목, 돌담 등이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했다. 그러다 구림천을 마주했다. 구림천을 따라 걷다 이순신 장군 어록비 약무호남 시무국가를 읽어보고 선비들을 교육했던 간죽정에 들렀다. 흐르는 구림천 쪽 뒤로 펼쳐진 월출산은 보슬보슬 내리던 비로 인해 구름에 걸린 절경을 선사했다.
이후 다다른 군립하정웅미술관 전시실에서는 2023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를 기념해 영암 출신 하정웅 선생의 컬렉션전 ‘선과 여백의 미학’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는 한국과 북한, 중국, 일본 작가들의 수묵화를 들여다보면서 수묵의 유무형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2층에서는 유리에 길게 비친 월출산 산세를 감상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마을을 돌아보고 옛 구림중학교에 들어선 영암도기박물관을 둘러보기 위해 다시 마을 어귀로 향했다. 이곳은 1200년 전 고화도 시유도기의 발원지로 사적 338호 구림도기가마터가 존재해 한국도기의 정통성을 공고히 확립하고 있다.
마당에는 구림 3·1운동독립만세 기념탑과 당산나무이기도 한 240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 전시관에서는 고대 토기부터 통일신라시대 구림도기, 조선시대 가마터 등 영암의 도자문화 발전사의 조망이 가능했다.
왕인박사유적지

또한 하정웅 영암군 명예홍보대사의 기증품 중 도자기를 모은 컬렉션 기념실과 도기유물을 기증한 김대환 문화재평론가의 기증유물전시실을 통해 역사성과 예술성이 깃든 지역의 도기를 만날 수 있었다. 이외에 로비 영암도기 명품판매장에서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영암 도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구림마을을 떠나기 위해 돌아 나오는 길, 마을 맞은편에서 구림한옥체험관을 발견했다. 전통마을을 둘러본 뒤 체험까지 해보면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듯하다.
영암군은 “구림마을 내에는 96개 민박집이 형성돼 있고, 왕인촌주민자치회가 구성돼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즐길수 있다”며 “문화예술의 길(군립하정웅미술관과 영암도기박물관, 왕인박사유적지), 문화유산의 길(상대포역사공원과 회사정, 국사암, 간죽정, 죽정서원, 도갑사) 코스 대로 구림마을을 돌아보거나, 매년 열리는 왕인 벚꽃축제와 왕인 국화축제를 통해서도 구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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