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서각의 재미에 빠지다

[남도명인]장국신 인장 명장
1973년부터 인장집 ‘대성사’ 운영 50년째 서각 외길
각고의 노력 광주시 명장·한국고서화협 초대작가 반열
“재미지고 재미져서 지금도 하루 17시간 작업 중이야”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4년 01월 31일(수) 17:07
(2023 12월 127호=글 여균수 기자) 시내에서 도장을 파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컴퓨터에 입력된 활자를 기계가 파내는 시대, 50년 째 제자리에서 이름 석자를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파고 있는 인장명장 장국신(80)씨.
인장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그의 이야기를 공방 겸 가게 ‘대성사’에서 들을 수 있었다.
대성사는 광주서림초등학교와 옛 전남방직공장 사이에 위치해 있다. 대수롭게 보지 않으면 그냥 스쳐지나갈 법한 오래된 간판 하나가 이곳이 도장집인 것을 알려주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진열장에 빼곡히 정렬된 전각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진열장 위로는 장 명장이 그동안 받아온 상장들이 즐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인생 성과들을 알려주는 증명서들이다.
장 명장의 첫인상은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 같다. 머리는 하얗지만 얼굴은 젊은이 부럽지 않은 혈색과 매끈함을 유지하고 있다. 비결을 물었더니 “재밌게 살기 때문”이란다.
인터뷰 내내 장 명장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재밌다”이다. 인장과 전각에 매진한 지 50년이건만 서각작업이 여전히 재밌기만 하다. 그래서 지금도 하루 17시간을 서각으로 보낸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장 명장은 29세이던 1973년에 대성사를 열었다. 장 명장은 학창시절 서예와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질풍노도의 20대를 보내던 장 명장은 “뭘 해야 먹고 살지”를 고민하다가 조각과 서각에 능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도장을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장 작업이 자신의 성격과 너무 잘 맞았다.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자신에게 인장을 가르처줄 스승이나 학원이 없었다. 완전 독학이 시작된 것이다.장 명장은 먼저 책을 통해 글씨체를 익혔다. 흔히 보는 ‘해서’와 달리 도장에는 ‘전서’가 많이 쓰인다. 소전, 인전 등 여러 글씨체를 찾고 직접 적어가며 손에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각에 대한 국내 서책이 거의 없어 중국이나 일본의 책을 구해 연구해야 했다.
그는 책장에서 고서를 꺼내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조지겸, 중국 청나라 말기 때 전각 분야에서 업적이 탁월했던 오창석(1844~1927), 오양지(1799~1870), 서삼경(1826~1890) 등 전각가들의 다양한 서체를 소개했다. 장 명장은 이 서체들을 종이에 써내려가며 ‘가인고’(인장을 만들 예상 글씨체)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먼저 이름의 의미를 고민해 몇 자를 새길지를 정한다. 여기에는 이름의 한자 총 획수에 따라 길흉이 달라진다는 성명학의 수리론을 적용한다.
글자가 정해지면 나무, 옥, 돌 등에서 도장의 주 재료를 선택하고, 도장 면의 크기에 따라 어떤 모양으로 글자를 새길지 종이에 여러번 글씨를 써본다.
인장에 새길 글자의 모양과 의미에 어울리는 도안이 완성되면 인면 전체에 주홍색 먹을 칠하고, 그 위에 먹으로 글씨를 새기는 ‘포자(인면에 좌서하기)’ 작업에 들어간다.

50년 동안 칼을 잡았지만, 이때만큼은 그도 온 신경이 곤두선다. 글자의 생김새가 인장의 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조각도로 새길 때는 정신통일을 해야 해.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거든. 옆에서 잡음이 들리거나 누가 말을 시키면 지금도 한 번씩 헛칼질을 해. 힘 조절 잘못해 칼이 빗나갈 수도 있고.”
글을 새길 때 크기에 따라 8개 조각칼을 사용한다. 조각칼은 삼면에 날이 세워져 파고, 밀고, 새길 수 있다. 칼을 쥐는 모양에 따라 오지집도, 결필식집도, 장악식집도법을 사용한다. 보통 돌을 깎는 전각에는 ‘중봉’, ‘편봉’ 등 다른 조각칼을 쓴다. 가지런히 새기는 도장과 달리 전각은 거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글씨 주변을 두드리는 ‘탁변’을 하기도 한다. 음식에 불맛을 더하듯 전각에 칼맛을 집어 넣는 것이다.
장 명장이 서각에 넣고 싶은 예술은 고졸미(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데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 “50년을 한 우물 팠더니, 이제야 좀 서각을 알겠다. 할수록 어려운것이 서각이더라.”
그렇게 만든 도장 앞면(측관)에는 손님의 생년월일과 사자성어. 좌우명을 따로 새겨 넣어준다. 그는 측관으로 인감도장의 위변조를 방지할 수 있다면서 인감도장을 사용 시에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면 위변조를 철저하게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같은 이름을 가졌어도 한 번도 같은 글씨체를 사용한 적이 없다. 도장에 글을 새기는 기술은 처음엔 다른 사람의 자세와 칼을 쓰는 모습을 훔쳐보며 배웠지만 끊임없는 자기개발로 결국 자신만의 서각을 완성했다. 그의 서각 특징은 상응하는 글자에 맞춰 서각을 달리하고 공간을 많이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장 명인의 전각작품은 한 눈에 봐도 시원하다.
장 명장은 인장을 만들 때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과 인장 옆에 글귀를 새기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고의 재료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 즉 벽조목이다.벽조목은 예로부터 잡귀를 물리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벽조목으로 만든 인장을 호주머니에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면 액운을 물리친다고 한다.
옥석 중의 최고로 치는 계혈석(닭 피가 배인 것 같은 붉은 무늬석)은 보석 값보다도 비싸다. 과거 상아도 많이 쓰였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다. 일반인들에게 도장나무로 알려진 회양목은 파는 재미가 쏠쏠해 지금도 장 명장이 좋아하는 목 재료이다.

인장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싶은 욕심이 났다. 미술대전에 공모하기 시작한 것. 광주미술대전 서예부문 등에서 수차례 특선·입선(전각분야는 대상이 없다고 함) 등의 성과를 내 마침내 2016년 한국고서화협회의 초대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국가1급인장기능사’ 자격증 소지자인 장 명장은 2016년엔 인장분야 광주명장에도 선정돼 장인으로서, 예술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80세면 시력도 저하되고 손 떨림 때문에라도 서각 작업이 힘들건만 장 명장의 작업은 여전히 청춘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까지나 서각 작업을 하고 싶다. 다시 태어나도 인장을 업으로 삼겠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반세기 동안 해왔으면 질릴 법도 한데 하면 할수록 재미있으니 그럴 수밖에.
이 좋은 솜씨를 후대에 전해야 하는데,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어 늘 아쉽다고 한다. 자신의 두 딸들도 서각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후학 양성으로 인장예술을 전하고 싶다. “참 재밌는데, 참 멋진 작업인데…”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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