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35호=김다경 기자)
전남대 출신으로 2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오스나브뤼크 시립극장 ‘최초의 동양인 카펠마이스터(상임지휘자)’로 발탁되며 클래식의 본 고장인 독일 음악계에서 유의미한 발자취를 새기고 있는 지휘자가 있어 눈길을 끈다.지난달 18일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오티움 콘서트Ⅲ’를 통해 광주시립교향악단과 첫 협연을 선보인 송안훈 지휘자다. 이날 무대는 드보르작과 생상스, 그리그, 브람스 등 낭만주의 시대 대표곡들로 꾸며졌다. 송 지휘자가 직접 해설까지 들려주며 공연을 이끌었다.
그에게 주목할 점은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정석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북 군산 열대자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풍족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제대로 된 개인 레슨 한번 받아본 적 없이 동네 교습소를 다니며 피아노를 배웠다. 군산 중앙고등학교 재학시절 남들보다 늦게 입시 준비를 시작해 전남대 예술대학 음악학과에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다.
오스나브뤼크 극장 카펠마이스터 자리는 1년마다 계약을 연장하는데, 10년 이상 연임하는 경우 자체가 흔치 않다. 동양인인 그가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은 2012년부터 13년간 자리를 지켜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1년에는 ‘독일 젊은 지휘자 협회’로부터 차세대 클래식계를 이끌 ‘미래의 거장’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타고난 재능이 남달랐으리라 추측할 수 있지만 그는 스스로를 “천재가 아닌 노력파”라고 강조한다. 그는 “지휘가 악기들과 다른 점은 천재가 없다는 점”이라면서 “하나의 학문이기 때문에 얼마나 더 공부를 많이 하고 노력하느냐의 차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에게 균일하고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송 지휘자는 남들보다 늦었던 만큼 쉬지 않고 연습에 몰두하며 피나는 노력을 쏟았다. 오로지 성실함과 노력만으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해낸 케이스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진로에 대한 막막한 고민에 빠진 그는 고향 군산으로 돌아와 지역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봉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동네 PC방에서 ‘유학’을 검색했고, 독일의 무상 교육 시스템을 알게 된다. 인터넷을 뒤져 독일의 한인교회 사이트에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고, 목사님의 도움으로 데트몰트 음대에 원서를 접수했다. 약 한 달 후, 대학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그는 유학을 결심했다. 부모님의 허락을 얻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의 의지는 이미 확고했다. 결국 단돈 150만원을 들고 난생 처음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게 꿈을 향한 시작이 됐다.
“비행기 티켓을 왕복이 아닌 편도로 끊고 출발했어요. 독일어 한마디 못할 때였지만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패기가 있었죠.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어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독일어를 할 줄 알아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아침부터 새벽까지 공부에 열중하며 지내다 보니 3개월 만에 귀가 트이기 시작했죠.”
그는 그렇게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음대에 입학해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이후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지휘과에 합격해 수석졸업하고, 동양인 최초로 ‘마이스터클라스’ 지휘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해 수석으로 끝마쳤다. 이후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역시 최초의 동양인 지휘과 강사로 발탁되며 이슈를 모아 독일 다큐멘터리 방송에도 출연했다.현재는 오스나브뤼크 극장의 카펠마이스터로 매년 60회 이상의 연주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명문 함부르크 국립음대 지휘과와 오스나브뤼크 음대강사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도움을 준 이가 많았다. 고3 시절, MBC의 청소년 예능 프로그램 ‘1318 힘을 내’에 출연해 피아노를 연주하며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모습이 전국 방송을 탔고, 이를 계기로 출판사 시공사의 이학종 이사가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해줬다. 또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의 빈트푸어 교수는 첫 제자인 그를 끝까지 믿어주고 마음을 다해 지도하며 이끌어준 은사다.
그가 거주하는 오스나브뤼크 도시 규모는 광주의 1/5에 불과하지만 문화예술 인프라와 수준은 훨씬 높다고 한다. 오스나브뤼크 극장은 대극장·중극장·소극장으로 이뤄지며 대극장은 2000여석 규모다. 1년이면 약 300회 공연을 하는데 매진율이 80%에 달한다. 심포니 연주와 오페라, 연극, 무용, 어린이를 위한 공연 등을 극장 규모에 맞춰 선보인다. 서쪽으로 약 100㎞만 더 가면 네덜란드인데, 그곳에서 음악회를 보기 위해 버스를 대절해 온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제가 있는 동네는 독일의 서쪽 방향으로 오페라 극장이 있는 마지막 지역입니다. 독일 내 타 지역 뿐 아니라 네덜란드에서도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단체로 오기도 하죠. 독일에 살면서 느낀 것은 음악이 사람들의 삶에 들어와 있다는 거예요. 일상에서 쉽고 편하게 질 좋은 공연을 볼 수 있죠. 광주 역시 클래식 등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데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무대에 서며 느꼈습니다.”
그의 광주 공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는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콘서트 오페라 사랑의 묘약’ 공연에서 카메라타전남과 협연을 맞췄다. 3회차의 공연이 전석 매진되며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오는 10월 25~26일에는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릴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제17회 정기공연 ‘라 트라비아타’에서 다시 지휘봉을 잡는다. 카메라타전남, 광주시립합창단, 시립발레단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그는 “광주는 지휘자의 꿈을 꿀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도시”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전남대학교 재학시절 공연을 보러 다니며 지휘자의 꿈을 키웠기에 문화예술적 고향을 광주라고 생각합니다. 광주가 다른 도시보다 앞서가며 새로운 ‘클래식 리그’를 형성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죠. 또 독일에서 20여년간 활동하며 직접 몸으로 익힌 선진화된 클래식 문화 시스템을 한국에 알리고, 지휘의 꿈을 꾸는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꿈이 있다면 용기를 갖고 도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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