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낙원 꿈꾸던 소년 ‘예술로 행복한 마을’ 일구다

김양균 얼쑤 대표
사회문화운동 ‘풍물’ 접해…무등산·임진각 공연도
1992년 ‘얼쑤’ 창단해 월급제·문화강습 최초 도입
광주 예술 창작 공장 꿈 꿔 "예술인 복지 개선도"

박세라 기자
2017년 12월 10일(일) 17:46
소년에겐 꿈이 있었다. 바다 너머로 펼쳐진 산을 보면서 그는 "재미있게 살만한 곳을 만들자"는 청사진을 그렸다. 산꼭대기 마을에는 큰 벚나무를 심어두고, 누구라도 찾아와 먹고 놀고 마시는 낙원을 꿈꿨다. 그리곤 막연히 사슴을 여러 마리 풀어두고 키우면서 살고 싶었다 한다.

지난날의 꿈 이야기를 듣는데, ‘이 사람 꿈을 이뤘구나’ 싶다. 그의 고향 완도 고금면은 아니지만 산꼭대기 벚나무도, 사슴도 한 마리 없지만 ‘지상 낙원’을 꿈꿨던 것 그것 하나만은 이뤄낸 것이 분명하다.
널찍한 공간에 하루가 멀다 하고 풍물소리가 울려 퍼지고, 매년 가을이면 전국 곳곳에서 ‘놀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사슴 대신 고양이와 개가 자유로이 날뛰고, 뒤편으로는 산과 들이 푸르르니, 이만하면 성공했다.

지난달 7일 광주 남구 포충로에 자리한 대촌전통커뮤니티센터에서 김양균 전통문화연구회 얼쑤 대표를 만났다. 단출한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언제나 그렇듯 즐거워 보였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얼른 가서 멋스러운 머플러 하나를 두르고 나온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여유와 한가로움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해진다. 단원들과 함께 일군 밭을 돌아보며 "좌우지간 흙을 밟으면 좋고, 땅을 파면 에너지가 난다"며 웃는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의 품에서 자랐던 탓이다.
그의 고향은 산 좋고 물 좋은 완도 고금면. 그저 자연이 좋아서 "대학교 안 간다. 시골서 살란다"고 선언한 날, 김 대표는 아버지에게 된통 혼이 났다. 생각을 고쳐먹고, 광주로 나와 보낸 대학 시절은 치열했다. 1980년대 사회가 그러했으므로.

완도에서 광주로 유학 온 그에게 가장 먼저 들려진 것은 꽹과리였다. 김 대표는 광주 가톨릭청년연합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각 성당에 풍물패를 조직해 나간다. 그가 처음 결성한 것은 놀이패 ‘흙’ 이었다. 당시 북치고 꽹과리 치는 일은 ‘데모’ 현장에서나 통용되는 것이었다. 사회변혁운동에 앞장섰던 가톨릭 청년들이 일종의 ‘문화운동’으로서 전통연희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는 풍물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 풍물치고 돌아다니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더라고요. 단순히 풍물만 두드린 게 아니고, 역사·문화·사회·경제 다방면을 공부했습니다. 사회변혁의 도구로서 풍물을 선택했던 것이죠."
무등산과 지리산 산행을 다니며 풍물을 두드리고, 임진각에서 마당을 깔기도 했다. 당시 풍물은 집회의 한 방법이자 사회문화 운동의 선봉장이었던 셈이다.

타악 퍼포먼스 ‘인수화풍’

그렇다면 왜 ‘풍물’이었을까 묻자, ‘풍물의 힘’에 대해 역설한다.
"풍물은 역사적으로 일종의 시그널이기도 해요. 징의 울림이라든가, 펄럭이는 깃발은 사람을 한데 집중시키는 신호였죠.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풍물소리를 들으면 흥분이 돼요. 특히 암울한 시대, 울분이 많았던 때 북을 두드린다는 것은 단합의 호령처럼 느껴졌죠. 실제 풍물은 공동체적인 삶의 결집체에요. 개별적인 놀음이 아니거든요."
풍물은 화해와 단합 그리고 재충전의 장 역할을 했다. 풍물패가 지나가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도 행렬에 끼어서 놀곤 했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그리고 독재 정권에서 그리 없애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모이면 일이 생기니까".

그러던 그가 ‘얼쑤’란 단체를 조직하게 된 데는 그가 가진 철학과 관련이 깊다. 소위 운동권에 있으면서 김 대표는 느낀 바가 많다. 왜 사회운동을 하면, 왜 예술을 하면, 가난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늘 가난을 굴레처럼 덧씌우는 게 싫었다.
또 사회운동과 예술이 같이 가는, 말하자면 시민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문화운동의 장을 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렇게 1992년 "멋지게 잘 놀아보자"는 네 명의 청년들이 뜻을 모았다. 250만원씩 모아서 주월동 선명학교 지하실에 둥지를 텄다. 당시 얼쑤의 기치는 ‘전통문화의 대중화’였다.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정말 초보적인 단계였죠. 풍물을 사회운동의 한 방편으로서 먼저 접했으니, 기본도 잘 몰랐던 때입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습니다. 당시 전남도립국악단이 2년 전 생겼고, 우리가 만들어졌으니까 시스템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죠. 그래도 참 열심히 했어요. 2주는 ‘노가대’로 죽어라 돈을 벌고, 또 2주간은 풍물을 치고 놀았죠."

그러다 처음 시작한 것이 문화강습이었다. 2000년 초, 하남 그리고 오치 사회복지관에 ‘사물놀이반’, ‘장구반’을 개설, 시민들을 맞아들였다. 전통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주부·노년층들이 몰려들었다. 지금에야 문화강습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노가대 현장으로, 강습으로 바쁜 와중에 그는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얼쑤 창단 이전부터 연을 맺어온 정득채 광주시무형문화재 제8호 광산농악 기능보유자에게 가르침을 받아왔다. 지금은 전수조교가 됐다.

김 대표의 빠질 수 없는 자랑거리 중 하나는 바로 단원 월급제이다. "예술가는 배고파야 한다"는 말에 반대를 외쳤던 그는 곧바로 월급제를 시행한다. 공연·강습·자녀 수당 등도 빼먹지 않고 챙겨줬다. 배가 두둑해야 예술도 잘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예술에 집중할 수 있어요. 배고프면 ‘빵’ 생각만 날 것 아닙니까? 작지만 꼬박 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얼쑤가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돼 준 것은 사실이에요. 또 오래 함께하는 단원들이 생기면서 얼쑤만의 예술 색도 짙어졌으니까요. 윈-윈 한 셈이죠."

전통문화연구회 ‘얼쑤’의 ‘질주’공연 모습

김 대표는 예술에서 "안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두들기면 물이 뿜어져 나오는 드럼과 불이 발사되는 악기들은 바로 이 같은 그의 고집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무대 위에서 성공, 관객들의 박수를 받기까지 별의 별 시도를 다 해본 결과다. 그는 요즘은 뿜어져 나오는 물에 어떻게 색을 입힐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그는 ‘웰 메이드’ 상품을 선보이는 것을 예술의 본업으로 본다. 김 대표는 예술작품을 상품으로, 관객들을 고객으로 보는 ‘쿨’ 한 예술인이다. 예술도 노동의 가치로 보자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의견이다.
"누가 보면 욕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예술이란 게 고상하게 만들어서 장롱 속에 두고 혼자 볼 거 아니잖아요? 변화한 시대에서 사람들이 어떤 것을 보고 싶어 할까. 끝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시대는 저만치 앞서 가는데, 머물러 있어선 안돼요. 늘 예민하게 반응하고, 시대의 요구에 발맞춰 가야 합니다."

줄곧 광주에서 활동해 온 그는 지역 문화 판에 아쉬운 점도 많다. 격동의 현대사부터 지금까지 광주의 역사·문화와 함께 해 온 예술단체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게 그의 오랜 생각이다. 그들이 걸어온 길이 곧 광주의 역사문화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여전히 지하실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도 세심히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다.

그의 또 다른 꿈은 ‘광주 예술 창작 공장’을 세우는 일이다. ‘광주의 모든 예술작품은 어디서 나오는가’에 답을 주는 공간이다. 광주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작품을 구상하고, 공연도 올리는 게 그의 청사진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예술인으로 역할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전인종수 후인승량(前人種樹 後人乘凉)’이란 말로 대신한다. ‘앞서 누군가가 심은 나무가 자라고 커져 후세 사람들이 그 나무 그늘 밑에서 더위를 식힌다’는 의미다.
"김양균이 심어 놓은 나무 그늘에서 후배 예술인들이 마음껏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마당이 되길 바라죠. 예술을 하는 것이 더 이상 배고픈 길이 아닌 것. 그래서 더 좋은 작품들로 시민들을 만나고, 나아가 진짜 예향을 일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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