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제69호) 전남 영광의 한 해안가. 갯바위에 선 두 남녀가 라이브 연주를 시작한다. 통통 튀는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고, 이내 청량함과 감미로운 남녀의 보컬이 어우러진다. 그 뒤로는 새파란 바다가 비트를 타듯 일렁인다.
‘파란 파도 위에서 넘실거리는/이 작은 돛단배에 몸을 싣는다/하얀 구름을 타고 저 하늘위로 돛을 세워라/초록빛 파도 넘실 넘실 콧노랠 불러 룰루랄라/다 같이 춤을 덩실 덩실 즐겁게 노랠 룰루랄라’ 듀오 밴드 ‘윈디캣’의 ‘PARAN’ 앨범에 실린 곡 ‘파란’이다.
‘룰루랄라’ 부분에선 도저히 몸을 가만 두기 어려운 흥이 솟아오른다. 이들의 노래는 아예 모르면 몰랐어도, 한 번 들으면 그 매력에 폭 빠질 수밖에 없다. 요즘 노래들이야 거기서 거기. 어디서 들어본 듯 비슷하지만 ‘윈디캣’의 음악은 그렇지 않다. 독특하니까, 질리지 않고 늘 새롭다.
이들이 20여년 꾸준히 노래할 수 있는 이유다.
광주 인디밴드 ‘윈디캣’은 2001년 결성된 팀이다. 기나긴 시간 줄곧 광주씬에서 활동했다. 함께 노래하던 선배들과 후배들이 부푼 꿈을 안고 상경, 홍대로 떠나갔어도 이들은 광주를 지켜왔다.
현재는 윈디캣을 결성, 지금까지 이끌어 온 리더 오영석씨와 김혜림씨가 함께 한다. 지금껏 발표한 앨범만 11장을 넘어섰고, 곡은 50여곡이다. 이들 곡 모두 자신들의 진심이 담긴 자작곡들이다. 이 중 대표곡을 꼽아주라는 요청에 오영석씨는 난감해 한다. 한 곡 한 곡에 듬뿍 담긴 애정 탓일 게다.
"윈디캣 노래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2010년도에 발표했던 ‘아무도 모른다’일 거예요. 그해 EBS 신인 인디뮤지션 선발 프로그램 ‘공감’의 헬로루키로 선정되면서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죠. 가사가 너무 좋은 ‘별의 노래’, 세월호의 아픔을 노래한 ‘4분 16초’, 쌍둥이 남매를 위한 헌정곡 ‘Be Twin’까지. 매번 곡을 새로이 낼 때 마다 대표곡들이 바뀌는 것 같아요."
‘Be Twin’은 오씨의 자녀 쌍둥이 남매 첫 돌에 탄생한 곡이다. 더 없이 소중한 이들에게 평생토록 남을 특별함을 선물하고 싶었던 아빠의 마음이 담겼다.
이처럼 ‘윈디캣’ 이름을 달고 나온 곡들은 저마다 스토리들이 담겨 있다. 그 중 ‘4분16초’는 세월호의 아픔이 있은 후 2년이 지난 어느 날 나왔다. 당시 아팠던 만큼 추모곡들이 많이 발표됐었는데, 윈디캣은 차라리 침묵하면서 견디었다. 그러다 샤워를 하다 문득 "곡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어느 날처럼 샤워를 하면서 머리를 감는데, 두려움이 밀려왔어요. 물이 흘러내리니까 숨을 못 쉬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때 세월호 사고에 희생된 아이들이 생각났죠. 일종의 트라우마 상처로 남아있었던 거예요. 가슴 한편에요. 세월호의 슬픔을 음악으로 해소해야겠다, 풀어주어야겠다 싶었죠."
곡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윈디캣이지만, 아직 다루지 못한 이야기도 남아있다. 바로 광주의 5월이다. 광주에서 오래 활동해 온 팀인 만큼 팬들의 기대도 있었지만 이들은 ‘아직 때가 아니다’고 말한다.
"시도는 많이 해봤어요. 그런데 아직 내어놓을 만한 작품이 나오진 않았죠. 확실한 것은 언젠가는 나올 거예요. 억지로, 어떻게든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윈디캣의 이름으로 광주의 오월, 그리고 느낀 바를 담담히 노래로 풀어내는 때를 기다리는 단계이죠."
이들은 스스로의 음악을 얼터너티브(Alternative)라고 소개한다. ‘대안’이 되는 음악을 한다는 뜻이다. 늘 새로움을 선사하는 게 이들의 꿈이다. 펑크록, 일렉트로닉 록, 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것도 장기다. 딱히 장르를 구분 짓기 보다는 "이런 음악을 하고 싶다"하면, 곧 도전하는 게 윈디캣이다.
이들은 광주 인디씬의 터줏대감이다. 많은 동료 팀들의 흥망성쇠를 목격 해 온 지역 인디씬의 산증인이라 할 수있다. 함께 무대에 섰던 이들이 광주를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아쉬움이나 조바심 혹은 박탈감 따위의 감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터다. 이들은 그럴 때 마다 ‘홍대도 별거 아니다’란 생각으로 더 크게 노래했다.
"광주에서 활동하다가 홍대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수 많은 감정들이 밀려왔죠. 광주에서 나온 음악들을 가지고 굳이 홍대로 가야할까. 가서 잘 되면 좋은데, 확률이 아주낮은 게임이거든요. 갈 땐 큰 포부를 안고 가지만 실패했을 땐 다시 돌아와서는 음악과 담을 쌓고 지내는 후배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게 가장 안타까웠어요. 홍대가 꼭 대한민국 음악의 ‘종점’ 같잖아요. 저기서 안 되면 그만둬야 하는 건가 싶고요."
오씨는 광주 인디씬의 경쟁력을 믿는다. 누군가는 광주 인디씬의 위기를 말하기도 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이상 그 생명력은 오래 오래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
"광주에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해 온 어린 친구들이 많을뿐더러, 광주만의 음악 색깔이 나쁘지 않아요. 친구들의 음악에서 장기적인 안목들도 속속 보이고요. 한방에 ‘빵’ 떠야겠다는 욕심 보다는 평생 ‘업’으로서 음악을 하겠다는 뮤지션들이 남는다면 광주 인디씬은 이전의 활기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윈디캣은 열심히 곡 작업 중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맞춰 ‘Low christmas’를 발표했고 2월 말에는 2008년 앨범에 수록된 ‘별의 노래’를 재편곡해 발표할 계획이다. 윈디캣만의 이야기를 담은 곡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3~4년 이내 100곡의 음원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
척박하다는 지역 인디씬에서 100곡의 노래를 발표했을 때 윈디캣을 봐주는 시선들을 확인하고 싶다 한다.
"우리는 좋은 음악 한방이 터지면 팔자를 고친다 하는, 이야기들을 안 믿는 편이예요. 저희식대로 열심히, 꾸준히, 올곧게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죠. 저희만의 방식대로 신나게 즐기면서 음악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아요. 그렇게 묵묵히 광주씬을 지켜나가다 보면, 결국 광주를 대표하는 밴드로 더 커 나가지 않을까요?."
윈디캣은 요즘 자신들의 팀명을 소개할 때 이렇게 의미 부여를 한다. 원래는 ‘Windy Cat’인데 ‘Win The Cat’으로 변화를 주었다. 고양이는 항상 이긴다는 뜻이다. 끝까지 오래도록 살아남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들의 바람을 담아보았다.
"한 곳에서 길게 음악을 하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함께해 온 팬들이 있어요. 20대이던 친구들이 벌써 30대가 훌쩍 넘었죠. 그들의 청춘과 윈디캣의 음악이 함께 성장해 온 시간입니다. 노랑. 파랑. 빨강머리로 멋을 내고 들었던 윈디캣의 음악이 그들의 인생에 오래 오래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저마다 가장 빛나던 청춘을 더 찬란하게 해주었던 추억으로, 기억으로 말예요. 그 시절을 함께 추억하는 음악이 된다면 20년의 세월이 더없이 값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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