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제76호=글·고선주 기자) 미술가들의 이력은 알고 보면 다채롭기 이를 데 없다. 예술가로 활동을 펼치면서 카페를 운영하는가 하면, 미술작품을 위한 것이었지만 아예 인테리어와 병행하는 경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최근 만난 화가에게서 전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장르를 병행하고 있는 신예작가를 호기심 어리게 만날 수 있었다. 그냥 동네에서 하는 취미 정도로 보기에는 그가하는 활동 영역이 너무 커 ‘어떻게 두 영역을 끌고 가는 것일까’ 궁금했다. 주인공은 예술가로서 틈틈이 창작을 전개하면서 전시에 출품하는 등 분주한 창작
일정 속에서도 ‘2019광주FINA세계마스터즈 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 선수급의 수영실력을 뽐낸 바 있는 젊은 작가 나수빈(35)씨다. 그의 작업실은 용봉동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건물 한층을 전부 작업실로 쓰고 있다. 8월2일 아침부터 푹푹 찌던 날씨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도 여전했다. 그로부터 안내를 받아 한쭉 귀퉁이에 다다르자 작업 공간이 나타났다. 덥지만 또 한 작가를 안다는 것은 한 우주를 깨치는 일이기에 의욕적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그는 유치원 시절부터 미술학원에 다녔지만 이때는 미술을 알지 못하던 때였다. 우연하게 중학교 1학년 당시 지인의 소개로 미술학원에 갔는데 이때 처음으로 미술을 접한 셈이다. 그렇게 중학교를 보내고 나서 동신여고에 진학했다.
여고에 진학한 뒤 본격적으로 미술에 입문해 공부를 시작했다. 학창시절 꿈많은 소녀였다. 미술을 하고 있었지만 관심은 주로 인테리어쪽으로 기울었다. 미술이 입시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인테리어로 완전하게 넘어가지 않는데는 자신의 생각을 푸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한계로 인해 미술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테리어 카드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그가 대학원에 진학해 실내환경 디자인을 전공한 이면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어서다. 대학 재학 시절 서양화와 실내 디자인을 복수전공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여러 갈래로 쪼개져 있던 취향들을 하나로 묶어 배가시킬 방법들을 꾸준하게 모색해온 듯 보였다.
"제 작업은 실내 디자인과 미술, 그리고 수영을 하나로 연계해 여기서 모티브를 추출해 진행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화면상 공간 표현과 계단이라고 하는
건축요소도 공간 구성이죠. 3D 프린트로 출력해 평면에서 3차원의 조형 작업을 펼치고 있어요. 실크벽지를 활용하고 있구요. 이것들이 모두 회화와 실내 디자인, 인테리어를 융복합해 했기에 더 수월하게 이뤄졌죠."
그에게도 젊은 작가들의 패턴이 읽혔다. 작업실이 없으면 학교 등의 공간을 활용하거나 레지던시에 꾸준하게 도전하는 것 말이다. 그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광주시립미술관 청년예술인 지원센터 입주작가로 활동을 펼쳤다. 그전에는 조선대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대다수 젊은 작가들이 거쳐가는 과정을 비껴서지는 않았다. 서른 다
섯의 젊은 나이지만 그도 몇차례에 걸쳐 작품의 변화를 거쳤다. 대학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오일페인팅으로 건물과 골목에 집중했다. 건물을 단순화시키는 것을 졸업작품으로 제출한 이유다.
"제가 주로 관심있게 접하면서 유심히 조망한 게 건물이었어요. 더욱이 실내디자인을 공부해서 그런지 건물에 관심이 많았고, 관심이 많다보니 그것에 대한 내용 또한 자연스럽게 더 많이 가지게 된 것이구요."
물론 그는 늘 붓을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로 대학원을 진학하다보니 본의아니게 유학생활을 해야 했다. 요가와 수영을 하느라 5년 동안 붓을 놓는, 휴지기를 거쳐야 했다. 이때 그는 실내디자인에 몰두했다. 그가 다시 붓을 잡고 화가의 삶으로 돌아온 것은 2014년이었다. 그후부터 또 하나의 회화세계를 구축한다. 계단을 가지고 공간을 이어주는 주제로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공간과 공간을 이으려는 시도였다. ‘왜 그랬냐고’고 물었다.
"성격적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했어요. 굉장히 내성적이었죠. 제가 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그림에서는 모두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공간을 잇는 구상을 했습니다. 속의 것, 내면의 것을 작품으로 다 표출하려 노력했어요. 실내디자인이 그림보다 더 안맞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구요."

나수빈 作‘우아한 공간’

그는 공간과 공간의 연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호와 현상까지 연결하고 기호를 패턴화시켰으며 정적으로, 틀에 짜여진 형상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작업을 전개했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은 다양성의 문제들로 파악됐다.
"붓으로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하니까 분명 단조롭죠. 작업 자체는 오리고, 붙이고, 혼합을 해야 해서 번거롭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더 재미있다는 느낌
이 들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있는 작업은 다양성 때문에 지금 더 선호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계단과 계단을 연결하는 단계에 있죠. 계단은 상징적으로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제게는 이어준다는 의미가 더 끌려요."
그는 이런 변화를 겪는 동안 세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모두 근래 이뤄진 것들이었다. 2018년 전남대 치과병원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올 4월에 유스퀘어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두번째 개인전을, 7월에 세번째 개인전을 일곡도서관 갤러리에서 각각 진행했다. 첫 개인전에서는 부조 형식의 현재 작품보다는 두께감과 부피감이 없는 평면을 주로 출품했고, 두번째 개인전에서는 기존 작품과 비슷한 유형을 선보였지만 서정성을 부여한 탄생화에 방점을 찍었다. 세번째 개인전 때는 색채적으로 통일감을 안겨주는 탄생화만 가지고
전시를 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늦게 화단으로 돌아왔기에 서울에서의 5년 휴지기 때를 잘 활용해 작업을 했더라면 더 좋은 작품을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늘 남아있다.
결과론적으로 실내디자인을 버리지 못한 탓이지만 회화와 건축을 접목, 융복합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니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전언이다. 그의 바람은 장르나 분야 등 경계를 짓지 않는 멀티미디어 작가로 성장하는 것이다. 계단 이후의 작업을 물었다.
"무언가를 벗어나 작업을 하는 것을 잘못하지만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지난 8월18일 분주한 창작일정에도 불구하고 ‘2019광주FINA세계마스터즈 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 출전했을 정도로 수영이 생활화돼 있다.
광주 화단에서 흔치 않은 경우이기도 하다. 수영을 통해 작가로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활력을 찾으면서 페르시안 블루나 보라 등 색감적으로도 얻는 것이 작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는 앞으로도 회화와 수영을 넘나들 작정이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